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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ia May 18. 2022

옛 황제의 문, 정양문 正阳门 (3부)

전문 밖 4대 상업거리 中 선어구와 서타마창가




정양문 3부작 시리즈의 그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

(1부) 중축선과 천안문광장

(2부) 전문 밖 4대상업거리 - 서하연, 대책란

(3부) 전문 밖 4대상업거리 – 선어구, 서타마창가


“전문(정양문) 밖에는 예로부터 4대 상업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전문대가 중심으로 서쪽에는 서하연(西河沿/시허얜)과 대책란(大栅栏/따자란)이, 동쪽에는 선어구(鲜鱼口/셴위커우)과 서타마창가(西打磨厂街/시따모창제)가 위치하였다.”









상업 지구 세 번째, 선어구


선어구 (鲜鱼口/션위커우)는 정양문 밖에 위치하며, 길이는 225m로 서쪽으로 전문대가를 사이에 두고 대책란 거리와 마주하고 있다. 명나라에 시장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수백 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에 운하가 이곳을 지났기에 선어구는 조운부두가 되었으며, 생선을 팔던 곳이었기에, 선어항(鲜鱼巷)으로 불리다가, 점차 유명한 상업거리로 발전하였다.

생선 시장으로 흥했던 선어구의 과거는 이제 벽화로 남아있다


전문대가를 중심축으로 하여 대책란과 마주보고 있는 또 하나의 상업거리인 선어구. 그러나 과거의 명성과 달리 지금 이 지역은 대책란에 비해 상권이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과거 분위기를 재현한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리모델링 중인 넓은 지역이긴 한데, 코로나 사태 이후 개발과 공사가 그대로 멈춰버린 모습이라 현재 크게 볼거리는 없다. 과거 생선 시장으로 번성했던 지역임을 강조하듯이 물고기 그림을 보도블럭과 하수구 뚜껑 곳곳에 새겨넣은 것이 그나마 포토 스팟일 정도.

당시 생선 거래하던 모습


선어구를 걷다보면 몇몇 역사적 건물들이 남아있고 보존되어 있다. 옛 목욕탕이었던 흥화원 (兴华园浴池/싱화웬)이 그 중 하나이다. 이 목욕탕은 민국시절에 건축되었으며 원래는 "천유신포점(天有信布店/천을 파는 곳)"이었다. 1940년 전후로 목욕탕이 되었다가, 잠시 금은방으로 되었다가, 건국 후에 다시 목욕탕으로 되어, 명칭을 흥화(兴华/싱화)로 하여 정식 영업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치 로마시대 목욕탕 분위기?!


한 군데 더 발견했다. 천락원 극장 옛터 (天乐园/텐러웬) - 이 극장은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북경의 옛 극장으로서, 경극의 4대 배우(四大名旦)가 모두 이곳에서 공연을 하여 유명해졌다. 경극 공연의 중요한 무대 중 하나로서, 경극 백 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2012년 8월 18일, 재건축되어 26년만에 재개방 되었다고 한다.


선어구에서 서타마창가로 건너가는 길 끝 부분에 현재도 활발히 운영 중인 유명한 식당이 있다. 북경오리(베이징카오야)로 유명한 브랜드인 편의방 (便宜坊/피엔이팡)이 그것이다.


편의방도 역사 깊은 중국의 전통브랜드 노자호(中华老字号) 기업으로서, 명대 영락14년(1416年)에 설립되었다. 베이징카오야 즉, 북경오리구이는 굽는 방식에 따라 민로(焖炉.연기와 화로의 열에 의해 천천히 굽는 방식)와 괘로(挂炉. 불 위에 오리를 걸어 굽는 방식)로 양분된다. 편의방은 민로식의 대표로서, 그 특징은 불이 직접 닿지 않으며, 오리내부에 특제탕을 투입하고, 겉은 굽고 안은 익히는 방식이다. 따라서 화로속에 걸어서 굽는 괘로식 구이에 비해 겉에 그을음의 현상 등이 없고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안쪽은 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괘로식으로 유명한 식당은 전취덕(全聚德), 대동(大同) 등이 있다.




상업 지구 네 번째, 서타마창가

 

서타마창가(西打磨厂街/시따모창제)는 전문대가 앞 옛 상업거리의 하나로서, 명나라 시기부터 있었으며, 초기에 맷돌 석기 제작 장인들이 많아서 ‘타마창(打磨厂/갈고 윤을 내는 곳)’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후에 많은 가게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대장간, 동 그릇, 칼, 악기, 방앗간, 여관, 회관 등이 있었다. 현재 이 골목에는 청나라 및 민국시기 상업 옛 점포터와 회관 옛터가 남아 있다.


송문문(崇文门) 근처 동교민항후통(东交民巷)의 고건축군들이 잔뜩 모여있는 지역의 도보 투어 때도 그랬지만,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은 사전 조사부터 들뜨고 설렌다. 걷기 시작! 설레일 때면 찍어보는 소심한 나의 셀카.


선어구(鲜鱼口)에서 큰 길 하나 건너면 바로 만나는 서타마창가 골목 입구. 그 골목 바로 시작점에 ‘굉장히 멋스러운’ 메탈핸즈 (Metal Hands)가 있다. 1900년 화재로 소실된 유서 깊은 호텔을 1937년에 재건축한 민국풍 건물 내에 위치한 까페이다. 커피로 에너지 보충도 할 수 있고, 역사적 건물을 만날 수도 있는 완벽한 곳이다. 西打磨厂街228号.


삼산재정석 안경점(三山斋晶石眼镜店) – 西打磨厂街216号.

청나라 동치년간에 개업하였으며, 당시 이 가게는 매우 유행한 점포로서 전문적으로 수정석을 갈아서 안경을 만들었다. 당시 대군벌 오패부(吴佩孚), 단기서(段祺瑞)도 모두 이곳에서 안경을 사고, 대중들도 이를 뒤따랐다고 한다. 이후에 이 건물은 다세대 주택이 되었다.


대덕통은행 옛터 (大德通 旧地) - 西打磨厂街213号.

치아오(乔) 가문이 만든 대덕통 은행 옛터로서 20세기 초 건물이다. 북경 뿐 아니라 천진, 심양, 제남, 상해 등 여러 곳에서 은행 운영했으며, 1937년 북경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청나라 고관대작이었던 펑(冯) 가문의 저택 - 西打磨厂街211号.


천복점(天福店/티엔푸덴) - 西打磨厂街212号.

민국시기에 천복점(天福店)이라 불리던 여관이었다. 중국인민은행이 후에 이곳을 개조해서 초대소를 만들었으며, 재건축 때에도 옛 점포의 간판을 제거하지 않았고, 시멘트로 간판을 안쪽에도 붙였다고 한다. 이후 화폐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서화/루이화염료행 옛터(瑞华染料行 旧址) - 西打磨厂街210号.

대문 입구의 아치형 틀은 보존이 비교적 완전하며, 문 입구 양측의 ‘靛青颜料(짙은남색염료)' '零整批发(소량도매)' 등 글자도 여전히 선명하다. 문 앞의 독특해 보이는 원형석각은 원래 이화원에 있던 것으로, 팔국연합군 침공시에 도둑질 당해 이곳으로 옮겨져 왔다고 한다. 오늘날 디자인, 가페, 꽃집, 민숙 등의 다양한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임분회관 (临汾会馆/린펀회관) – 西打磨厂胡同105号.

산서성 임분현(山西省 临汾县)의 종이, 염료, 마른 과일, 담배, 잡화의 다섯 업종 상인들의 회관이었다. 중국 제일역사자료관(中国第一历史档案馆)에 의하면, 1906년 민정부 당안전종(民政部档案全宗)과 1947년 북평시정부사회국조사등기표(北平市政府社会局调查登记表)상에 회관이 등록되어 있으며, 회관은 명나라 초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산서 주민 건축 특색을 가진 오래된 회관으로, 명나라시기에 처음 지어지고, 청나라 시기에 재건축되었으며, 전문대가 지역에서 가장 먼저 번성한 상업회관 중 하나이다.  임분회관 내에는 아직도 명대, 청대 회관 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서타마창가는 정양문과 전문대가, 천안문광장이라는 북경의 중심부이자 핵심 관광지 근처에 위치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아직 닿지 않고 골목이 깨끗하여 걷기 매우 좋다. 그리 길지 않은 골목을 걸으며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옛 건물을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과 더불어, 중간에 간간히 있는 까페에서 한가롭게 쉬어가기도 좋다. 누구나 방문하는 인기있는 관광지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간 이 곳의 숨은 매력. 최고 인기 관광지들에 가려진 듯 하지만, 실은 너무 인기있는 곳이 되지 않고 호젓한 정취를 간직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그런 곳이다.




서타마창가 바로 아래 지역 또한 도심 한 복판의 오아시스 같은 매력을 지녔다.


삼리하공원 (三里河公园/산리허공위엔)은 북경 가장 오래된 수계 공원이자, ‘작은 강남’으로 일컬어진다. 1437년에 처음 형성되었다가, 청나라 말기에 매몰되었다. 리모델링 끝에 현재 100m에 이르는 개울과 공원의 모습을 되찾았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개발로 묻었던 물길을 다시 복개하여 시민들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역사적인 의미도 되찾았으며, 도심 속 공원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초록 한 가득, 물고기 풍성, 그리고 무엇보다 흑조!
깔끔하고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마음을 쏙 빼앗긴 공원이다




정양문 답사를 3부에 걸쳐서 썼다고 해서 북경 성문 내성 9곳 중 가장 애착하는 곳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의 개인취향과 별개로 의미와 의의가 가득한 지역임에 틀림없고다양한 매력이 많은 지역이다. 북경을 처음 방문하는 지인이 있다면 그가 티비에서만 보았던 천안문 (거대한 모택동 사진은 덤!)을 보여주고, 전통이 남아있는 전문대가에서 탕후루 하나 사서 쥐어주고 기념 사진 찍어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메탈핸즈의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삼리하공원을 거닐며 ‘아, 북경에도 이런 훌륭한 맛의 커피가 있구나. 이런 공원이 있구나.’ 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듯 하다.



그저 하루하루 살았을 뿐이다. 내 깜냥만큼, 내 능력만큼, 내 성격이 받쳐주는 딱 그만큼, 그게 나였다.

                                         - 손원평 <서른의 반격> 중



북경의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읽기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보고 싶은 곳을 저장하고 정리해두었으며, 외출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급적이면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을 다녀왔다. 지인과 약속이 생기면 이왕이면 그녀의 취향을 고려하여 처음 가보는 곳으로 외출 코스를 짜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이고 모여서, 성문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썼다.


아마 처음부터 거창하게 북경 성문에 대해 써보자고 작정했다면 결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6년 간 내 눈길과 발길이 닿은 곳의 기억, 기록, 추억, 사진, 메모 등이 자연스럽게 그런 '쓰기의 방향'을 가르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연=재미, 관심=계기, 기회=실행이라는 나의 모토는 향후 북경이 아닌 한국, 또는 다른 지역을 가더라도 유효한 공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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