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으로 가능성 읽기, 존케이지: 4분 33초
존케이지: 4분 33초
존케이지(1922~1992)의 4분 33초를 처음 들었던 아주 오래전 음악시간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시절 느꼈던 이 곡의 황당함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할 만큼 강렬했습니다. 이 음악이 무슨 음악인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뒤샹의 변기 같은 그런 작품인 건가 추측만 했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변기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가 미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4분 33초간의 일상적 침묵이 음악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걸요.
그러나 여기서 뒤샹의 변기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얻어지는 침묵이 어떠한 소음의 가능성을 불러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4분 33초는 일상적 소재의 가치를 넘어 우연이라는 가능성을 더합니다.
일상적인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고, 이것이 우연성에 기초한다는 것은 음악사에 있어 대단한 발견이기도 합니다. 이후부터 음악의 재료가 굉장히 다양해졌으니까요. 도레미파솔라시의 7가지 팔레트에서 무한대로 가는 스펙트럼의 색을 쓸 수 있게 된 격이랄까요. 실제로 존케이지는 이후에 랜덤으로 주사위를 던져 연주하는 주사위 음악이라든지, 피아노에 지우개 같은 물건을 넣어 거친 소리를 내는 프리페어드 피아노 등 여러 음악적 실험을 하게 됩니다. 존케이지의 이 작품들 모두가 4분 33초와 같은 우연성에 기초한 작품이거든요.
그 음악사적 의미가 가능성이 가지는 의미와 맞닿아 있음을 생각하다 보면, 다시금 그의 4분 33초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4분 33초 동안 어떤 소리가 들어갈지 모르는, 쉼에서 오는 가능성이라는 것은 인생을 닮은 것 같기도 한데요.
음악대학에 다니면서 받았던 피아노 전공 수업 때, 가장 기억에 남은, 또 가장 많이 듣기도 한 말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쉼표도 음악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땐 "K-빨리빨리"의 영향 덕분인지, 쉼표가 그저 음악을 끝내는 장치, 마무리하는 '.'와 같은 의미가 없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쉼표를 쉽게 생각했던 게, 제 음악적 약점이었던 것 같아요. 쉼표를 만끽하지 못해서, 감정을 환기시키고 새롭게 나아가야 하는 부분에서도 이전 감정을 끌고 가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거든요.
인생에 쉼이 반드시 있어야 사유와 삶이 풍만해지는 것처럼, 음악에서 쉼표는 정말 중요합니다. 음악에서 쉼은 청자에게 사유의 틈을 줄 뿐만 아니라, 연주자에게는 감정의 정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합니다. 또한 쉼을 통하여 연주하는 공간의 울림과 페달의 잔향까지도 만끽하게 해주는 장치이기 때문에요. 쉼을 위해 어떤 연주 장소를 택하느냐, 어떠한 깊이로 페달을 밟느냐에 따라서 아주 다른 쉼의 음향이 생겨나요.
제가 쉬이 생각했던 쉼표는 삶에서나 음악에서나 단순 비어있음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4분 33초는 삶을, 소리와 음악 그리고 쉼으로 사고하게 하는 데, 시간을 지나며 여러 번 깨달음을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나이가 바뀌었을 때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것 또한 색다른 매력을 가지는 것 같아요. 가사가 있는 음악보다는 가사가 없는 음악일수록 무에서 오는 그 차이의 가능성이 극대화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쉼 Tacet 이라는 제목의 악장들로 구성된 4분 33초는 소리와 삶의 가능성을 극치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삶울림 lifecho____
삶 : 가능성 = 음악 : 우연성
ㅣ우연한 소리에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건, 결국 돌고 돌아서 나. 소리를 내고 생각하는 삶은, 그 자체의 소음만으로도 우연하고 무한한 삶의 가능성과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