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동생이 이별을 고했다

by 이채경


10월 13일. 서른 살 막내가 갑작스러운 이별을 고했다.


나른한 오후 업무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려던 그때 카톡 알림이 울렸다.

우리 막내다.

고작 20분 거리에 따로 살고 있지만 연락은 서너 달에 한 번이나 했을까.

이 녀석의 갑작스러운 연락이 무척 반가웠다.


미안하다고 했다.

못난 동생 챙겨줘서 고맙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그냥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다 괜찮다고, 아무 일 아니라고.

하지만 묵묵부답이다.


떨리는 손으로 경찰 친구에게 전활 걸었다.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맞다. 이럴 땐 신고를 해야 하지.

막상 일이 닥치니 이성적인 판단이랄 게 없었다.

어쩔 줄을 몰라 절규에 가까운 소리만 질러댔던 것 같다.

본가에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집에 없었다.

친구들도, 여자친구도 전날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다.

내 인생엔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일 말이다.

동생 방으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살폈다.

놀랍도록 깨끗했다.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려고 PC를 켜니 역시나 깨끗했다.

그때까지도 내 불안한 직감이 억측이길 바랬다.


경찰은 한참이나 연락이 없었다.


1분, 1초가 피가 마르는 듯 했다.

경찰에 전화를 걸어 채근해서야 들을 수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동생이 자주 데이트하러 가던 지역이었다.



힘든 일 뒤로하고 편히 쉬고 싶다며 떠난 동생이었다.

정말 평안해졌을까.

알 길이 없는 가족들은 매일이 고통이다.


한평생 무교였던 가족들이 종교를 찾기 시작했다.

어떤 신이든 제발 우리 막내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

두 손을 모으고 절실하게 기도했다.

밤마다 동생이 좋아했던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의 영혼이 다녀가길 빌기도 했다.


때론 막내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굴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서 아직 귀가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막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귀여워하고, 웃고, 회상했다.

사소한 행동들과 습관까지 기억해 내며 하하 호호 웃기도 했다.


그러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면 서로 등을 돌린 채 누워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다.


용돈을 많이 주지 못했다. 참 인색했다.

마음을 돌보아주지 못했다. 그냥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하는거지 했다.


뭐라고 했어야 그날의 선택을 돌릴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이것 말곤 할 수 있는 생각이 없었다.


서른 살 그 꽃 같은 청춘이 안타까워 서러웠다.

남들보다 즐기지 못했던 삶이어서 애통하고 처절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 뼈저리게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동생이 가끔 꿈에라도 나오면 놀라 움찔거렸다.

너무 생생해서, 너무 반가워서.

말을 걸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엔 평소처럼 집에 들어오는 동생이 나타났다.

겨우 한다는 말이 '네가 왜 여기있어'였다.

분명 꿈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동생의 눈이 순간 너무 슬퍼보였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환생도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빈다. 바보처럼.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동생의 마지막 순간으로 가서 손을 잡아준다.

수십 번, 수백 번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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