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크라티온, 그 간단하지만 심오한 무술
우리가 “그리스” 하면 참 많은 키워드가 떠오르고는 합니다. 아크로폴리스 내지 아테네의 여러 유적과 유물들, 그리고 지중해의 예쁜 풍경 등의 긍정적인 키워드라던가, 최근 몇 년간 그리스에 있었던 경제적 불안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그리스 하면 떠올리는 키워드가 하나 있습니다.
“올림픽” 이란 단어를 말이지요. 그리스는 바로 이 “체육”이라는 것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제일 중요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고대 도시국가 체제의 그리스에 있어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고대 올림피아 제전” 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체육 대회” 이기도 했지만 “제전”이라는 이름답게 일종의 “종교적 의식” 이기도 했고, 각 도시국가의 “국력”을 가늠해 볼 수 있던 요소였습니다.
일단 아무래도 이런 올림피아 제전에서 제일 중요하게 다뤄졌던 종목들은 “힘을 쓰는 것” 과 “빨리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엔 도시국가들의 국력이 대충 ”전쟁 수행능력“ 으로 귀결되는 것이 고대 사회였다 보니, 지금 당장의 전쟁 상황에서 ”힘이 강한 사람이 많은 것“ 그리고 ”빠르고 민첩한 사람이 많은 것“ 은 중요했습니다.
(단 이때는 재밌게도 ‘멀리 가는 것’이 조금 덜 중요했습니다. 왜냐면… 고대 그리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채리엇, 즉 “전차”라는 것을 발명했던 문명 중 하나였기 때문에, 멀리 가는 것은 전차, 그리고 말을 타면 되었다는 것을 이미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개를 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격투기”였습니다. 몸이 빨라야 하고, 힘이 강해야 하는 것. 즉, 기존의 다른 올림피아 제전의 종목들이 단순히 “힘만 잘 쓰면 되는 종목“ 들인 원반 던지기, 창던지기, 멀리뛰기와 “빠르기만 하면 일단 되는” 달리기 (다양한 달리기가 행해졌습니다. 단거리, 장거리, 그리고 갑옷 포함 무거운 것을 장착하고 달리기 등 온갖 달리기 종목이 행해졌습니다.) 종목과 다르게 “종합적인 체육 능력” 이 요구되는 유일한 종목이 격투기였고, 그것은 “팡크라티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습니다.
팡크라티온(παγκράτιον), 어원적으로는 Pan + Kratos라는 의미로 “세상의 모든”을 의미하는 Pan과 “힘”을 의미하는 “Kratos” 가 합쳐진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써서 이기는 경기“라는 굉장히 간단한 의미의 경기였습니다. 룰은 간단했습니다. ”한쪽이 죽거나, 검지를 들어 항복을 표시할 때까지 싸운다” 가 끝이었고, 이 중에서 “물어뜯는 것과 눈을 찌르는 것“ 만 안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대 MMA에서는 파울로 취급하는 성기 타격 (로블로)와 성기 잡기 (파울컵 그립)가 허용이 되었던 굉장히 과격한 경기였고, 이것도 ”표준 올림피아 제전 룰“ 만 이랬고, 그래픽노블 ”300 “ 에서도 알려진 바와 같이 고대 스파르타 지역 룰에는 ”물어뜯기와 눈 찌르기도 허용“이라는 이게 과연 ”운동 경기“ 였는지도 모를 무언가였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뭔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리스인들 답게 “팡크라티온의 모든 동작들은 그림으로 남겨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팡크라티온에서 “손 타격기“ 만 따로 떼어져 복싱이 만들어졌고, ”그래플링 기술“ 만이 또 떼어져 원시 레슬링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부 그리스 학자들은 이 중 ”발차기“ 가 또 떼어져 프랑스의 무술인 사바테가 만들어졌다…라고 하는데, 이건 시쳇말로 ”그리스식 국뽕 논리“라는 의견이 강하므로 이 부분은 이런 의견이 있다 정도로 남기겠습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 도기 그림에 남겨진 것과 고대 문헌을 종합해서 복원해 본 결과, 그것은 굉장히 놀라운 결과로 드러났는데, “현대 MMA의 기술 체계에서 70% 정도가 유사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팡크라티온도 현대 MMA와 같지는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타격이 “직선”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즉, 고대 권투에서 “잽 - 스트레이트“ 는 있었지만 ”훅과 어퍼가 없는 것“, 그리고 킥이 무조건 프런트킥 계열이고 회전 공격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래플링의 서브미션에서 현대 유도나 주짓수에서 구사하는 역회전 꺾기 (대표적으로 기무라 같은 것) 내지는 복합 서브미션 (과거 브라질, 멕시코의 발리 투도나 루타리브레 선수들이 했던 2곳 이상을 조르거나 꺾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이 없다 정도이지, 그 외에는 현대 투기종목의 동작들과 거의 같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지요.
그리고 이게 현대 MMA 및 기타 투기종목과 제일 큰 차이점은 역시 “보호장비가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복싱과 레슬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것은 모조리 다 “맨손” 과 “나체” 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우승자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 경기가 치러졌지만, 부상 상황에 필요한 부상 치료 도구 (스포츠테이프, 바셀린, 지혈제, 드레싱본드, 스테이플 등) 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대 문헌 기록에는 “더운 때에 출혈이 난 상태에서 계속 경기를 하고 쉬던 도중에 피가 멈추지 않아서 기권을 했거나, 휴식 장소에서 갑자기 죽었다”라는 기록도 나옵니다. 골절은 “당연한 것”이었고, 더 심한 것은 “경기 도중에 죽은 사람”도 당연히 나왔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기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경기시간은 무제한“이었으니까요.
이러면서 다시 꺼내보는 것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문장 속의 함의입니다. 이 당시의 고대 그리스 사람들, 특히 올림피아 제전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각 도시국가에서 선발한 신체가 온전한 청년 남성” 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말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정말 “조롱조”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것이 됩니다. 게다가 정확하게 말하면 이 문장은 오히려 그리스보다는 후대의 고대 로마 시기에 유베날리스가 적은 말이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하던 올림피아 제전이 로마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오히려 “제우스 신에 대한 제례적”인 행사보다는 로마 제국의 프로파간다적인 행사가 되면서 당연히 올림피아 제전,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극한의 경기였던 판크라티온 선수에 대한 조롱도 극한에 다다릅니다. 왜였냐면, 로마 제국 시기로 넘어가면서 오히려 황제 숭배 사상을 내세우면서 제우스 신에게 올리는 제례가 축소되거나 아예 안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네로 황제 시기 때 와서는 대놓고 “지방 출전 선수를 제한시킨다거나” 혹은 네로 황제가 심판을 매수해서 특정 선수들을 토너먼트로 올려버리는 ‘승부 조작’도 벌어진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제례보다는 올림피아 제전이 열리는 경기장 근처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더 늘어만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기독교인들의 승리“ 라 하는 기독교 공인 직후였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 이후에는 “이교도의 전통을 폐한다”라는 이유로 393년을 끝으로 대회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본 마당에서 “건강한 정신“이라는 것은 결국 ”건강한 육체” 즉, 각종 전쟁과, 올림피아 제전에서 열리는 그 팡크라티온 / 복싱 / 레슬링에서 피가 흘려지고, 뼈가 부러지며, 그리고 의식을 잃어가는 마당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은 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었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건강한 정신은 “올림피아 경기 도중 죽어버리면” 끝이었고, 그것이 더 확장되어서 행여 올림피아 제전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전쟁터에 나갔다가 “화살 맞아서 죽어버리면” 끝이었던 무언가였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 여러 문제 때문에, 결국 그리스와 로마 시기까지 이어진 “팡크라티온” 은 그저 고문서만을 남긴 채 사람들에게 잊힙니다. 그리고 점점 로마 제국 이후의 유럽은 “무기와 병기의 발전“ 으로 인해, 더더욱 사람이 몸을 써서 싸워야 할 이유는 줄어듭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몸을 써서 싸워야 하는 이유”를 일부러 만들어 나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알렉산더가 죽기 직전에 정복했다던 지역의 동쪽, 페르시아와 인도대륙, 그리고 그런 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아시아 극동 쪽 지역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