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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HSonG May 09. 2024

아시아의 여러 “씨름”의 이야기

어느 한 문명권을 아우르는 공통된 코드, 씨름.

'실크로드의 재발견'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정수일-실크로드 문명기행)


개인적으로 저는 "무함마드 깐수"라고 알려진 정수일 선생님의 문명론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뭐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간첩'으로 한국에 오시게 된 그 기구한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 분이 말하시는 문명교류론이라던가 실크로드, 중동 역사 등에 관련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4대 문명"으로 나누는 문명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엔 "문명"이라는 것의 분류가 너무 한정적이게 된다는 이 분의 지적이 맞는 말로 느껴지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에서만 나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러 고고학적인 발견들로 인해 해외에서도 "강"을 기준으로 하는 문명 분류 말고도 추가적으로 "문명"이라는 것의 분류를 확장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견들이 왕왕 나오고 있고, 대표적으로 그리스-로마 문명은 이전까지만 해도 "이집트 나일강 문명의 방계"라고 취급했던 것에서 이제는 "지중해 문명"이라는 권역으로 재분류를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으로 바뀌어 가는 지점에서 정수일 박사님이 "실크로드 문명론"에서 내세우는 이른바 "히말라야 문명권"에 들어가는 지역, 즉 중앙아시아와 인도대륙, 그리고 몽골과 중국, 한국까지 포함하는 지역권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코드 하나가,

오늘 이야기할 주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화재청 유튜브 - 씨름 홍보영상


우리는 "씨름"이라고 부르는 이 투기종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외국에서는 이 씨름을 "Traditional Wrestling"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리스의 팡크라티온에서 분화된 일반적인 레슬링과는 "다른 분류"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서구권의 레슬링은 "Folk Wrestling" 혹은 "Folkstyle Wrestling"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것과는 다르게, 한국의 씨름은 "Korean Traditional Wrestling"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했고, 실제로 대한민국과 북한이 유네스코에 씨름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아예 "Ssirum/Ssireum : Korean Traditional Wrestling"라고 등재를 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이 확실해집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자료 - 쿠레스 (카자흐스탄 전통 씨름)
유튜브 채널 "Jade Factory" 다큐멘터리 자료 - 크슈테 (인도식 전통 레슬링)
유튜브 채널 "Jade Factory" 다큐멘터리 자료 - 칼라리파야트 (인도 전통 무술) 중 맨손격투 동작들
다큐멘터리 감독 David Adams의 이란의 코쉬티 체험 (https://youtu.be/tHATh63 xdh8)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자료 - 코쉬티 (페르시아식 전통 레슬링)와 주르카네 훈련법 (페르시안 밀이라 알려진 그것입니다.)
JTBC 톡파원 25시 중 "몽골 나담 축제" 영상

그런데 이런 "Traditional Wrestling"은 단지 "한국만 있는 것" 이 아닙니다. 카자흐스탄의 쿠레스 (Kuresi), 팔레비 왕조 이전까지의 이란에서 있었던 코쉬티 (Koshiti), 인도 전통 무술인 칼라리파야트(Kalaripayat)와 크슈테 (Kshuti) 그리고 몽골 전통 씨름인 부흐 (Бөх)와 중국 쿵후 종목 중 하나인 “솔각”(솔교라고도 합니다)까지, 이 "씨름"이라는 것 그리고 이 씨름과 유사한 형태의 투기종목은 우리가 "실크로드 권역"이라고 하는 이란-카자흐스탄(포함 중앙아시아 지역) - 파키스탄 / 인도 - 몽골 - 중국 (내몽골 지역 포함) - 한국 에 모두 존재하고 있고, 일본의 스모도 그 궤가 완전히 같다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아시아 권역까지 확장을 한다고 하면 이런 "Traditional Wrestling" 안에는 들어가므로 이 분류 안에서만 무려 묶을 수 있는 투기종목이 무려 8개나 됩니다. 이 쯤되면 이 부분에서 단순히 "강"을 기준으로 문명을 분류하는 기존의 문명 분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나옵니다. 분명 4대 문명은 "강"을 기준으로 나눈다 했을 때, 이란과 중앙아시아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문명" 권이었고, 인도(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포함) 대륙권은 "인더스-갠지스 문명" 그리고 몽골과 중국(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조금 궤가 다르긴 하지만 일단)은 "황하 문명" 권으로 나누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무려 3개의 권역에 "씨름"이라 부를 수 있는 전통식 레슬링 종목이 비슷한 양식으로 골고루 존재한다는 것은 겉으로는 납득이 안 가긴 하지만 소위 "히말라야-실크로드 문명권"이라는 산맥을 기준으로 한 최근의 문명 분류 이론으로 보면 (비슷한 것이 북아메리카의 로키산맥 문명권 이론과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문명권 이론입니다.) 꽤 납득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체로 이런 종목들에 비슷하게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경기 복장"입니다. 스모도 훈도시라는 복장이 있고, 우리나라 씨름도 바지와 샅바가 존재합니다. 부흐도 별도의 경기복이 있으며, 솔각도 쿵후의 한 종목인 이상 이쪽은 아예 도복이 따로 있고, 쿠레스도 경기복을 따로 입고하며, 크슈테나 칼라리파야트의 격투기 (무기술이 아닌 순수한 맨손격투) 부분도 최소의 바지는 입어야 한다고 하며, 이란의 코쉬티도 바지를 입고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최소 "바지" 이상의 옷을 입은 채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난번 팡크라티온 이야기에서 언급한 "나체와 맨손으로" 경기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종목들은 그리스-로마와는 다르게 "실용적인 목적" 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소위 "알타이-히말라야 민족"이라고 부르는 민족 (한국인 포함) 들은 고대에도 전쟁을 할 때 맨손으로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기"를 쓰는 것에 더 익숙한 민족이었습니다.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 지역은 애초에 전쟁도 말을 타고 하는 것이 기본이었던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갠지스 문명권도 고고학적 자료뿐만 아니라 성경, 바가바드 기타 등의 종교 경전에서도 대놓고 "사람이 무기와 도구를 만들었다"라고 써놓는 곳일 정도이고, 한국의 경우엔 대놓고 고구려 건국설화에서 "추모우(주몽)는 활을 잘 썼다"라는 문장이 나오는 곳이라는 점에서부터, 전쟁은 "무기"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몸을 써서 남과 겨루는" 것을 하는 것은 전쟁과는 다른 용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며, 보통 이것은 동양과 중앙아시아의 철학과 종교적인 측면, 즉 "수행"이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보통 이 말을 가장 대놓고 내세우는 것은 인도의 사람들입니다. 칼라리파야트는 원래 가르칠 때 "무기술"을 먼저 가르칩니다. 한 손 검술과 금강저(바즈라), 철편 (철로 된 채찍) 같은 근접무기 그리고 던지는 무기 (투석구, 투척검)를 가르치고 난 후에 맨손격투를 가르치고, 크슈테의 경우도 동작도 동작이지만, 이와 함께 요가를 같이 가르칩니다. 보통 이것은 "힌두교" 그리고 "시크교"의 문화에서 파생된 것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육체를 단련" 하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수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수행을 통해 정신을 고양하고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측면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몽골의 부흐도 나담 축제에서 많이 행해지는데, 나담 축제가 "몽골의 토속 무속 신앙 제례"의 측면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부흐를 수련하면서 "조상신의 힘을 우리 안에 내재함으로써 우리 부족과 마을에 복을 가져다준다"라는 함의를 몽골 사람들은 담고 있다는 점이 그런 부분에서 상통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또한 팔레비 왕조 이전의 (즉 이슬람교가 주류가 아니었던 시절의) 이란의 코쉬티, 그리고 그것을 훈련하는 방법인 주르카네도 겉으로는 힘을 단련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속으로는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였던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방법" 중 하나로 하는 수행의 의미를 담았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더더욱 분명해집니다.


특히 이 중에서 중국은 한술 더 떴습니다. 솔각 혹은 설교의 경우 알려진 역사적 기원을 따지면 몽골이 후에 중원을 장악하여 “원나라”가 된 이후에 몽골에 있던 부흐가 중국 본토까지 내려온 것이 유래인데 (물론 몇몇 학자들은 이미 중국 본토에도 전통 레슬링 종목이 있긴 했다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확실한 고고학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이미 중국에 있던 각종 철학들이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들어왔던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생긴 법가 사상이나 도가 사상이 더해지기 시작합니다. 법가 사상이 섞이면서 오로지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남았고, 도가 사상이 섞이면서 당초 몽골 제국에서 부흐를 수련할 때 담은 민간 신앙은 거기에 “음양오행” 과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 이 됩니다.


어쨌든, 아시아에 생긴 이런 여러 “씨름” 은 분명 이런 “수행” 의 목적으로 행해진 것들이 많았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개인”에게 돌아온 것들이 많았습니다. 당장 몽골의 경우도 부흐 실력을 인정받은 장사는 몽골 제국에서도 어느 정도 장수로 거둬서 썼다는 기록이 있고, 이것은 페르시아 제국 당시 이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도의 크슈테의 경우, 크슈테를 잘하는 사람들은 “하누만 신의 힘을 이어받는 자“ 라 하여 신분이 올라가는 기회가 많았다 합니다. (보통 크샤트리아 같은 군인이나 정치가 계급으로 많이 올라갔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각 국가들의(고구려, 신라, 백제 모두 다 씨름을 했고, 이 중 백제식 씨름이 일본으로 가서 스모의 원형이 되었다 합니다.) 씨름꾼들은 나라에서 상급을 줄 정도였으며, 이 것은 무려 구한말까지 이어집니다. 우리가 아는 그 리키도잔, 역도산도 원래는 한반도 이북지역에서 마을 씨름꾼을 했었고, 한국 프로레슬링의 사조라 할 수 있는 김일 선생도 전남 고흥의 마을 씨름꾼이셨다고 하며, 일본의 스모 리키시들의 경우 아예 덴노(천황) 도 쉽게 대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할 만큼 국가 신토의 한 부분이 되어, 스모의 챔피언이라 할 정도인 “요코즈나” 는 아예 나라에서 관직처럼 대접했습니다.


이렇게 아시아의 “씨름” 은 처음에는 그저 동네의 힘쓰는 사람들이 서로 누가 안 넘어지나 겨루는 것이었지만, 인류의 문명사는 이 “힘겨루기”를 “더 나은 사람을 만드는 방법” 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어쩌면 현대의 사람들도 몸을 쓰지는 않지만, 나름의 “씨름”을 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누군가와 경쟁하고, 아니면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 위한 몸부림을 하는 것은, 똑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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