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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07. 2021

난감한 첫 만남

나는뜬장에서모견으로 쓰인 보더콜리입니다 Ep. 01

바다는 고양시 불법 번식장의 모견으로 뜬장에서 나고 자란 보더콜리입니다. 지난 2020년 5월 동물자유연대(이하 동자연)에서 불법 번식장을 급습하여 40여 마리의 모견 중 26마리를 구조했습니다. 그중 바다는 고양-19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만났습니다. 나이는 2~3살 정도로 추정되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다를 진찰한 전문가의 소견으로는 아직 출산 경험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바다는 극단적으로 예민한 상태였습니다. 예민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겠지요. 뜬장에서 지낸 세월도 끔찍했을 텐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에 덜렁 떨어져 나와버렸으니까요. 구조된 줄도 모르고, 영문도 알 길 없이, 낯선 곳으로 떨어져 낯선 개들과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었을까요. 그 화는 그대로 처음 바다를 만나러 온 저의 반려견 겨울에게 미쳤습니다. 


겨울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어 마치 물어 죽일 듯 사납게 난동을 부렸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기쁨에 해맑은 미소로 바다에게 다가선 겨울이는 두려움에 떨며 오줌까지 지리고 말았죠.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저는 겨울을, 동자연 담당자는 바다를 꽉 부여잡고 간격을 넓혀 떨어트려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힐라치면 다시 사납게 달려들고 도망가기를 반복했죠. 십여 분을 그렇게 저와 겨울이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껴야 했습니다. 겨울인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두 귀는 완전히 뒤로 젖혀지고 꼬리를 말아 엉덩이 밑으로 깔고 앉은 채 구석으로 몰려 몸을 웅크리고 부들부들 떨었어요.


동자연 담당자는 바다의 리쉬를 더욱 단단히 잡아야 했고, 그럴수록 더욱 무섭게 날뛰는 바다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임에도 힘을 준 몸이 가끔 휘청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바다와 겨울이 합사가 어려울 것 같은 실망감에 저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담당자는 침착하게 조금 더 기다려보자며 저를 다독였지만 내심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습니다. 


차라리 순둥순둥한 다른 아이를 데려오는 게 낫지 않을까. 겨울에게도 말이 통하는 동족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게 지나친 내 욕심뿐인 걸까. 한편으로는 저렇게 예민하고 사나운 아이라면 대관절 누가 데려갈 수 있을까. 중 대형견을 키운 경험이 없는 다른 가족이 데려갔다가 감당하지 못해 파양 되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우리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치한 상태에서 그렇게 십여 분이 더 지났습니다. 바다가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자 겨울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냄새를 맡으러 관심을 보였습니다. 겨울이는 금세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바다와 장난을 치더라고요. 앉은자리 바로 옆에 좀 전에 지려놓은 오줌 자국이 아직 다 마르지도 않았건만. 


앞으로 이 두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을까. 괜찮을까. 하지만 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그건 제가 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말이죠. 


우리가 처음 만난 날 2020. 6. 1. 고양시 보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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