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관 (건축가 이소진)
나라를 빼앗겼다. 그래서 더욱 서글픈 어느 가을날 밤,
한 사나이가 우물 앞에 서있다. 우두커니 섰다 사라지고,
다시 돌아가 우물 앞에 서길 반복한다.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가엽다.
그러다 미워져 돌아가고, 다시 가여워 그리워진다.
21살 청년 윤동주가 거기에 서있다.
윤동주는 1917년에 태어나 1945년 해방 6개월을 앞두고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세상을 등졌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뇌했다. 그가 남긴 시에는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에 대한 아픔과 가난이 깊이 저려있다.
자화상 (1939. 9)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가 우물 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쓴 시 자화상. 윤동주 문학관이 담아내는 윤동주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이 시를 먼저 만나봐야 한다.
물탱크 – 재생
부암동 도로변 고갯길,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맞닿은 작은 창고 건물이 있었다. 워낙 허름하고 보잘것없어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암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하루를 멀다 하고 그 앞을 오갔던 필자에게도 단순히 폐건물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이러한 건물을 종로구청에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구청에서도 이 건물의 제대로 된 설계도면을 갖고 있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차 설계 당시 밖으로 보이는 건물만 다시 설계하면서 시인의 언덕과 연결해 큰 옥상정원을 만들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반에 걸쳐 기본 설계가 끝난 2011년 7월. 불행히도 집중호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라는 말이 있듯 종로구청과 건축가는 축대에 대한 구조안전진단을 강화하자는 의견을 모으고 재차 현장 점검을 나섰다.
그때 물탱크가 발견됐다. 지금은 청운공원이 조성된 자리에 있었던 청운아파트. 본래 청운수도가압장 기계실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았던 곳에 물탱크 두 개가 이어져 있었다. 청와대 근처 군사지역인 관계로 청운아파트가 철거된 후 군 쪽에서 관리를 한 탓에 건물의 구조설계도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건물 뒤쪽으로 길가에 노출된 벽이 있었다. 처음엔 경사진 지면의 지반 붕괴를 막기 위한 옹벽인 줄만 알았지만 이게 바로 물탱크 벽이었던 것이다.
건물이 자리 잡은 지형은 매우 독특했다. 뒤 뜰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넓고 평평한 공간이 있었다. 건축가는 서울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훌륭한 입지조건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여담이지만 필자 또한 7살 때 서울 상경 후 처음 윤동주 문학관 쪽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을 보고 감탄했던 순간을 25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조사를 이어가다 그 평평한 공간 아래 스테인리스로 된 800 m2X1200 m2 정도의 철판이 덮여있었다. 청와대 근처 군사경계지역이기에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문을 열 수가 있었다. 60X60의 구멍으로 내려다보인 내부는 컴컴했다. 7m가 넘는 사다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밑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조심히 내려갔다. 물탱크 안을 들어간 건축가는 ‘이 물탱크를 재생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물탱크는 생각보다 깊었다. 관리자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던 사다리 흔적, 그 공간이 한 줄기 빛으로 매우 아름답게 내려왔다. 물이 찼다가 빠진 물자국이 그대로 남아 마치 고벽처럼 물 얼룩이 나아있었고 그 텍스쳐가 주는 세월의 흔적 또한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콘크리트 박스 공간 속 소리의 울림이 마음까지 울렸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재생’시키겠다 다짐했다. 발주처인 종로구청 관계자들이 건축가와 생각을 함께 하면서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 진행됐다. 재설계와 함께 예산도 2배가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종로구청장은 건축가 출신이었다. 사업의 규모는 작지만 공간이 담을 의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용역 사업은 3개월이다. 물탱크가 발견되면서 모든 게 2배 이상 소요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청과 건축가는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의견을 모아나갔다. ‘협업’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었다.
물탱크의 공간이 작았기에 처음에는 실내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물탱크 자체가 2/3 정도 흙에 묻혀있었기에 단열을 할 수가 없었다. 방음, 냉방 설비 등 전시공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물탱크 내부의 세월의 자국을 모두 덮어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방수도 안되고 내부가 너무 습해 하루 종일 가습기를 틀어놔야 하는 상황이었다. 즉 24시간 기계소리가 윙윙거려 물탱크 속의 웅장한 울림 은 사라져야 하는 비합리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물탱크는 두 개였다. 회의 끝에 하나는 뚜껑을 걷어내고 중정을 만들고 하나는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중정 속에 담기게 될 하늘과 별과 바람은 시인 윤동주를 품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결정되는 순간 모든 것이 다 풀리기 시작했다.
구조 설계가 시작되면서 건축가는 ‘윤동주 시인을 닮은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신중했다. 건물의 외관도 중요했지만. 내부 공간의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윤동주의 이야기 – 스토리텔링
윤동주의 삶, 그리고 이야기가 공간에 담겨야 했다. 종로구청도 건축가도 고민에 빠졌다. 건축물이 설계 계획에 들어갈 때는 윤동주에 관련된 전시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전시해야 하는지
기획이 전혀 없이 건물 설계가 시작되었다. 막막했다. 윤동주의 공간에 윤동주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방법. 스토리텔링을 위한 전문가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건축가에게 또 한 번의 행운이 왔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윤동주 시인의 유족대표로 있는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와 연결이 됐다. 윤동주 시인은 윤 교수의 큰아버지였다. 구청장에 이어 윤 교수 또한 건축가 출신이었다. 윤 교수는 윤동주 시인의 친필 원고를 모두 갖고 있었다. 당시 그것을 윤 시인의 모교 당시 연희전문대학교인 연세대학교에 기증하기로 되어 있었다. 기증이 성사되기 바로 직전, 종로구청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필 원고 하나만이라고 기증받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문학관 설립에 대한 설명과 취지를 전달할 이 기회가 왔다.
그런데 난관에 부딪혔다. 문학관 이야기를 들은 윤 교수의 표정을 이상하게 어두웠다. 그리고 이내 윤 교수는 문학관 설립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입을 뗐다. 당시까지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버젓한 시설물이 없었던 이유부터 시작했다. 윤동주 시인이 살아있었다면 그의 성품상 자신의 이름으로 문학관을 만드는 것을 굉장히 겸언쩍어 했을 거라 했다. 혹시나 상업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염려도 보탰다. 윤 교수는 윤동주 문학관보다는 종로구에 있는 많은 문인들을 위한 장소로 조성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구청과 건축가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그 말을 듣고 건축가는 직접 공간을 보여주며 설득해 보기로 했다. 윤동주 시인을 상품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공간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준비과정, 설계 이야기를 전했다. 결국 진심은 통했다. 윤 교수의 마음도 움직였다. 윤 교수는 전시 기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친필 원고의 영인본을 만드는 작업까지 함께 도왔다. 문학관의 전시품이 하나씩 완성되면서 공간도 함께 완성되었다. 여기에 스토리텔링 전문 업체의 힘이 더해지면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윤동주 문학관 프로젝트는 기적과 같았다. 겨우 200m 2밖에 안 되는 공간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완성됐다. 소규모 건물의 경우 리모델링이 신축보다 배의 공을 들여야 한다. 옛것을 남기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여건 어려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주처인 종로구청의 기획부터 건축가의 설계, 시공사의 헌신(건축주와 건축가부터 스토리텔링 장치까지 맞춰서 작업해주셨다), 스토리텔러의 고민, 유족들의 기증과 지원 등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협업과 열정으로 만들어졌다.
윤동주의 삶을 담아낸 공간
<제1전시실 : 시인채, 제2전시실 : 열린 우물, 제3전시실: 닫힌우물>
윤동주 문학관은 운동주를 닮아야 했다. 무엇보다 시인의 이미지와 맞아야 했다.
윤동주 시인의 꾸밈없는 모습과 닮은 건축물. 청운동 공원 입구 언덕에 위치한 문학관의 모습은 소박함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외벽은 하얗고 단순하게 계획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동선이나 연결고리 등도 단순하게 나타내려 노력했다. 문학관 안에는 윤동주를 닮은 3개의 공간이 있다. 순백의 공간-시인채, 자연광이 비치는 작은 뜰-열린 우물, 사색의 공간-닫힌 우물.
가압장에 만들어진 시인채에 접어들면 윤동주 시인의 영인본과 함께 다양한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윤동주를 닮은 공간에 들어가기 전, 그를 느끼고 그의 여정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실 한편에 우물 하나가 놓여있다. 문학관 전시장은 ‘우물’을 형상화한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중 우물을 내려다보며 쓴 시 ‘자화상’. 문학관은 물탱크를 재생시킨 공간으로 물과 관계가 깊은 공간이다. 무엇보다 물탱크 뚜껑을 걷어내 열린 우물을 형상화했다. 옥상 쪽으로 올라와 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꼭 우물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건축가가 물탱크 뚜껑을 걷어내고 열린 우물의 공간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있다. 바로 건물 바깥에서 벽 안으로 뻗어 들어온 ‘파페 나무’다. 파페 나무는 인왕산에 굉장히 많이 서식하고 있다. 사계절마다 그 모습의 변화가 뚜렷해서 공사 전부터 죽어있는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건축가는 어떻게든 나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사 중 철거 과정 속에서 거의 쓰러질 뻔했던 나무를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뤘다. 한 개 우물의 구조물 뚜껑을 열었다. 하늘과 맞닿은 중정이다. 땅에 풀과 흙, 돌들이 채워졌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놓였다. 낮엔 밝은 햇빛이, 밤엔 달과 별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세월의 얼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담벼락이 보인다. 그리고 밖에서 드리워진 파페 나무 가지들. 바람에 맞춰 하늘하늘 흔들린다. 중정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봄에는 푸른 잎이 나고 여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파페 열매가 여리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리운다. 파페 나무는 공간을 시적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와 이만큼 어울리는 공간이 또 있을까?
열린 우물을 지나 닫힌우물을 들어간다. 문학관의 가압장을 통해 중정을 지나고 마지막 캄캄한 물탱크에 들어가는 여정 속에서 시인 윤동주의 일생의 여정을 느낄 수 있다. 윤동주는 일본군에 끌려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겨우 27살이었다. 닫힌 우물은 이를 형상화하기에 충분한 공간으로 재 탄생됐다.
바깥으로 연결된 사다리 통로의 빛은 마치 후쿠오카 감옥에 드리워진 한 줄기 빛을 연상시킨다. 습하고 서늘한 공기는 윤동주의 쓸쓸했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물 얼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대의 고통 속에 얼룩진 윤동주의 아픔의 흔적이 느껴진다. 캄캄한 공간 속에서 틀어지는 시인의 영상과 울림과 함께 읊어지는 그의 시 한 소절 소절에는 공간을 더 애처롭게 만든다.
윤동주를 닮아 비워진 공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채워지다.
“윤동주 문학관은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했던 작업이었다. 우리가 물탱크를 채우려고 했으면 절대로 지금의 공간이 안 나왔을 것이다. 문학관은 시인의 생애와 시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비어있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정을 한 순간부터 윤동주 시인과 맞물리게 됐다. 문학관이 지어진 지 4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 이소진 건축가
현재 많은 관람객들이 이 공간을 찾아온다. 건축가는 이 공간이 사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성장하길 원했다. 전시관으로서의 역할뿐만이 아닌 다양한 행사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염두에 뒀다. 문학관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행사장을 따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 문학과 전면부를 열어 시낭송 대회 등이 열릴 수 있는 무대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시인 윤동주를 함께 기릴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지길 바라고 있다. 채움보다는 비움으로 완성된 공간이 윤동주와 공감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운동주문학관은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