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리언 반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책방에 앉아 가만히 있다 보면,
가장 조용한 주제가 가장 무거운 질문을 꺼내곤 한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어디쯤 와 있을까.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를 읽은 건,
그런 날이었다.
햇살은 부드럽고, 책방은 조용했고,
나는 커피를 식혀가며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분이 그 사실을 알지 않기를 바란다.”
반스의 독백.
반스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코 장중하거나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고, 지적이며, 때로는 비꼬듯 덤덤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울 정도로 진솔한 태도가 있다.
죽음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앞에서 자꾸 되묻고, 되짚고,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어떤 내면의 흐름.
그건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며 피할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상실과 이별의 감각일 것이다.
책방에 있으면, 사람들의 삶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누군가는 이별 직후의 얼굴로,
누군가는 새 계절을 준비하듯 찾아온다.
책은 때로 위로이고, 때로는 도피이며,
무언가를 마주하고 싶지 않을 때
살며시 내미는 방패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얼굴들 사이에서 책을 권하고,
말을 아끼고,
책장을 정리하며 문득 생각한다.
“나는 이 일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매일같이 조금씩 죽음을 배우고 있는 걸까?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삶이 예측 불가능하고,
죽음은 그만큼 더 확실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삶의 중심에는 결국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은 망설이고, 떨고, 외로워진다는 것.
책방 문을 닫고 돌아가는 길,
하늘은 어둑하고, 불 켜진 거리에는
누군가의 하루가 또 조용히 저물고 있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죽음은 아주 멀리 있지만
동시에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생각을 품은 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책 한 권을 건넨다.
“혹시,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한 권일지도 몰라요.”
그 말 속에 담긴 조용한 마음은
결국 살아있음에 대한 다정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