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경사"바틀비"를 읽고나서

by 기빙트리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책방의 창문 너머로 오후 햇살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무심히 펼쳤던 『필경사 바틀비』 속 그 한 문장이,
책장을 덮은 뒤에도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얼핏 들으면 예의 바른 말투.
하지만 그 안엔 어떤 결심이 숨어 있었다.
거절의 방식이 이렇게 조용하고 단단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바틀비에게서 배웠다.


바틀비는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는 필경사였다.
말없이 고된 베껴쓰기 일을 해내던 그가
어느 날부터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검토 요청도, 외출 지시도, 퇴직 요구도…
모든 것에 그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대답한다.
도망치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단호하게 자기 몫의 ‘아니오’를 말한다.

그 문장은 마치 거울 같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맴돌던
‘싫지만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 떠오른다.
남들 다 하니까,
관계 때문에,
일의 책임이니까…

그 모든 핑계 앞에서
바틀비는 “나는 그만두겠습니다”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고 말한다.

무기력함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쩌면 세상과 자신 사이에
한 겹의 유리문을 세우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책방을 지키다 보면
책보다 사람이 많이 온다.
어쩌면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매우 조용한 매개체인지도...

그렇게 우리는 이 공간 안에서,
어떤 말은 쏟아내고,
어떤 마음은 감춘 채 머물다 간다.

바틀비처럼.
나름의 자기 방식대로 , 자기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요즘 들어 나도 그런 마음이 든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에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존재를 지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고,
지켜야 할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


바틀비는 끝내 고독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그 한 문장은
우리에게 여전히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언제쯤 멈출 수 있나요?
언제쯤, 조용히 거절할 수 있나요?


오늘도 책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처럼 울리는 그 문장을,
나는 다시 떠올려 본다.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keyword
이전 14화말없이 살아내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