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을 담은 문장

– 『걷기의 즐거움』을 읽으며

by 기빙트리

책방 창문 앞에 앉아서
『걷기의 즐거움』책을 펼쳤다.
먼저 발소리 없는 산책이 시작되었다.


수지 크립스가 엮은 이 책은
제인 오스틴, 소로, 울프 등
34명의 작가들이 길 위에서 깊이 사유한 글들을 모았다.


이 책은 딱딱한 이론서도,
자기계발 에세이도 아니다.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가
우리의 내부를 어떻게 흔들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키우는지
영문학의 고전적인 문장들 속에서
풍부하게 보여준다.


걷기는 몸의 시간이자,
마음의 리듬이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혼자 걸어서 여행할 때,
내가 완전히 살아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글쓰기는 산책의 부산물”이라며,
걷기 속에서 사유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서리단 골목 입구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금은 녹음이 우거져
계절의 속도마저 느리게 느껴진다.
책방 문을 열고 나와
한걸음 두걸음 걷다보면
말 없는 푸른 그림자 사이로
내 마음도 조용히 걸어가는 것 같다.


"걷는다는 것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을 되찾는 일"이라는
엮은이의 말처럼,
이 책은 나에게도
하루의 속도를 다시 바라보고
천천히 음미하게 한다.


여기에는 걷기에 대한 여러 시선이 공존한다.
어떤 이는 고통을 털기 위해 걷고,
어떤 이는 삶을 곱씹기 위해 걸으며,
또 다른 이는 문장을 탄생시키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책장을 덮고 마음에 남는 건
그 긴 문장보다
느린 걸음의 여운이다.
서리단 골목을 가로지르는
바람 한 줄기처럼,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천천히, 그냥 걸어도 돼”라고 속삭인다.


이 책은
당신이 하루의 속도를 조금 줄이고 싶을 때
‘한 걸음 더 걸어도 좋을’ 이유를 건넬 것이다.

keyword
이전 15화“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