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여전히 자연을 꿈꾼다. 그 꿈이 조금씩 현실이 되길.
7월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폭염이라니.
저녁 7시, 책방 문을 닫고 부리나케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대낮에는 너무 더워서 엄두도 못 내고, 보통 저녁 8시쯤 되어서야 집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도 기온은 30도.
20분쯤 걷다 보니 강아지가 발을 멈추고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말한다.
“그만하자… 발바닥, 너무 뜨거워.”
땀에 절어 돌아온 우리는 차례로 샤워를 하고,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아… 이제부터 이 긴 여름을 어떻게 보내나…"
겨울엔 찬바람이 무서워 창문을 꼭꼭 닫고 살았는데,
요즘은 여름의 뜨거운 바람이 무서워 또 문을 꼭 닫는다.
환기조차 공기청정기로 대신하고, 거실의 커다란 에어컨은 이제부터 상시 가동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세상이, 변한 걸까?
어릴 적엔 대청마루에 앉아, 찬물에 말은 밥에 된장과 고추, 상추를 곁들여 먹으며 더위를 견디곤 했는데.
선풍기 한 대면 충분했던 그 시절이 지금은 너무 아득하다.
이 많은 전기를, 이 많은 에어컨 바람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하며 살고 있는 걸까.
아침엔 차가 없어서 택시를 불렀다.
카카오택시는 부르자마자 1분 만에 도착했고,
차 문을 열자마자 확 밀려든 에어컨 바람에 오한이 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기사님은 아주 쾌적한 표정. 그 온도에 완전히 익숙해진 듯했다.
삶은 바뀌었다.
예전에는 그저 물가에 발 담그고 바람을 맞으며 살던 여름이,
이제는 더위를 이겨내겠다고 에어컨을 마구 돌려대는 시대가 되었다.
집집마다 내뿜는 에어컨의 열기로 바깥 바람조차 견딜 수 없게 뜨겁다.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이 속삭인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자.”
문명의 이기를 조금 덜 누리더라도,
기본적인 삶을 스스로 영위하고,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사는 삶.
그런 삶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지인들은 그런 꿈은 현실성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꿈꾼다.
너무 더우면 물 함지박을 뒤집어쓰고 그늘에 앉아
멀리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바라보는 그런 여름을.
겨울이면 옷을 껴입고,
불을 때서 방을 덥히고 뜨끈한 이부자리 밑으로 거뭇거뭇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며 지내는 그런 겨울을.
낮이면 텃밭에 물을 주고, 쌀을 씻고,
쌀뜨물에 된장 한 숟가락 풀고 호박과 고추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는
그런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는 삶을.
마당 한쪽엔 떠돌이 고양이들이 들렀다 가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가끔은 그저 그들이 노니는 모습만 바라보는 것으로도 하루를 충분히 살아내는,
그런 날들을.
우리 농장은 원동 화제에 300평가량 있다.
개울이 흐르고, 반듯하고, 아름다운 땅.
그곳에서 체류형 쉼터 하나 마련해
집과 농장을 오가며 자급자족의 노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옆 땅 지주의 고집과 땅 문제는 실타래처럼 엉켜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경계는 풀로 덮여 어수선하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내 땅인지조차 이제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남편은 어쩌다 들러
보물찾기하듯 호박 한 덩이, 제철 열매 한 줌을 따온다.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그 땅을 다시 삶의 중심에 놓고 싶다.
그러나 옆 지주는 어느새 농막인지 살림집인지 모를 집을 짓고
조랑말을 풀어놓거나, 색소폰을 요란하게 불어대며 산다.
정작 도시보다 더 시끄러운 시골이 되어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조용하던 집 안에서 강아지가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아마도 우리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다른 강아지들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부숭부숭 자란 강아지 털을 쓰다듬고는,
나도 부스스 일어나
여기저기 켜져 있던 전등을 끄고 선풍기를 켠다.
오늘 저녁은… 선풍기로 버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