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긋나도, 그럼에도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중 - 레몬케이크

by 기빙트리

"레몬케이크" 중 주인공 기진의 책방과 나의 책방 '기빙트리'


모든 것이 낡고, 사방에서 오래된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창밖 초록이 이상하게 환하게 보였던 날, 이곳을 선택했다.
누구의 추천도, 어떤 유행도 아닌, 내 마음이 그랬다.
세상은 이치를 말했지만, 나는 기분을 좇았다.

가진 건 별로 없었지만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기로 했다.
손때 묻은 책상, 노란 스탠드, 오래된 러그 위 찻잔 하나.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문장을 곁에 두며
그저 조용히, 책과 함께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기진과 나의 책방이 그러했다.


기진은 책방을 연 지 한 달 만에 커다란 가림막을 마주했다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느린 속도의 침묵이 찾아왔다.
거리의 분위기가 조금씩 가라앉고,
언젠가부터 서리단 골목은 마치 잠수를 타듯 조용해졌다.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활성화 정책은 사라졌고
상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젊고 독특한 가게들이 떠나갔다.
기진이 그랬듯, 나도 생각했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 너무 성급했나,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이 와 있었다.
시간도, 마음도, 거의 전부를 걸고 있는 곳이었다.
하루 종일 문을 열어두고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날이면
나도 기진과 같이 한때 사랑했던 문장에 기대 조용히 하루를 건넌다.

밖은 아직 밝은데, 마음에는 어스름한 고요함이 드리운다.
나는 이곳에 앉아 있다.
세상의 속도에서 비켜선 항로 위에 놓인 책방.
누구에게나 우회로처럼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정해진 방향이 책방이다.

세상과 어긋나도,
그럼에도,
나는 이 곳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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