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아빠가 암환자가 아니었던 그때의 이야기

by 온작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어떤 날이 되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령, 명절 KTX 기차표를 예매하라는 공지 글이 뜨면 아빠 엄마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기차표를 예매하던 그때의 내 모습과 그 새벽의 공기까지도 몽땅 기억이 나서... 커다란 가방 하나 들고 온 아빠와 수원역에서 만나 차 한 잔 하던 그때의 추위까지도 온몸으로 되살아나서... 다시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울컥.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를 보면서 아기 낳았단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로 달려온 아빠 엄마 생각이 종종 나기도 해요. 사실 그때도 아빠 건강은 좋지 않아서 몇 시간만 있다 내려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서울로 올라오실 수 있긴 했으니... 다시 내가 사는 이곳에 온 아빠를 마중 나갈 날이 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울컥.


가장 그리운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남편과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특별한 웨딩 촬영을 계획했는데, 그건 양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스냅 촬영이었어요. 누가 들으면 미쳤다 할 만한 아이디어였을지 몰라도 최소한 우리 세 가족에겐 참 즐겁고 행복했고 뜻깊었던 그때...


유치 찬란하게도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카메라 앞에 선 우리. 엄마들은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듯 끊임없이 웃음을 연발했으며 아빠들은 세상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그 어떤 프로 모델들보다 아름다웠고 멋있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정말 많이도 웃었더랬어요. 웃으면서 다들 얘기했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정말 값진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햇수로 7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정말 그래요. 정말 이런 사진을 남기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


만세를 외치며 두 팔을 높게 들고 있던 우리 모두는... 7년 뒤 이렇게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사이가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획기적인 췌장암 치료제가 개발되고 그때까지 모두가 건강히 잘 지내다가 꼭 이곳에서 다시 한번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모두들 모습은 조금씩 변해있을지 몰라도 소녀처럼 소년처럼 온 얼굴로 마음껏 웃는 것만큼은

날과 똑같겠지요.



아니, 이런 순간이 올 수만 있다면 이 날보다 훨씬 더 크게 웃게 되겠지요...


그리고 제법 꼬마숙녀 티가 날 우리 하온이가 사진의 정가운데에서 양손으로 예쁜~짓을 하며 웃고 있을 겁니다. 사진을 다 찍고는 양가 할아버지들 손을 하나씩 잡고 경쾌하게 걸어갈 거예요.


그날만을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그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 같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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