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사물도 모두가 낯설기만 한 공간, 그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아이는 연신 울먹울먹... 아이를 꼭 안아주며 토닥토닥하던 엄마도 눈물 찔끔... 도합 51살, 못 말리는 울보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3월 4일 월요일.
뭘 '시작'해도 좋을 것 같은 3월, 그리고 일주일의 시작 월요일. 아이는 새 어린이집에 첫 등원을 했습니다.
6살, 유치원에 가는 게 조금 더 자연스러운 나이이기는 하나, 1월에 이사를 오게 돼 유치원은 이미 등록이 끝난 상태. 다행히 집에서 도보 10분 채 안 되는 거리에 7세까지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이 있었어요. 그 무섭다(?)는 맘카페에서도 제법 인정과 칭찬을 받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에게 새 기관은 어쩌면 '공포의 대상' 일지도 몰랐어요.
저 역시 그런 아이의 마음이 너무 잘 헤아려지는 '극 i' 성향의 엄마인지라 정말 매일매일 아이의 뇌리에 새 어린이집의 좋은 점들을 새겨주었습니다.
우선 거리가 가까우니 가끔은 엄마랑 자전거 타고 갈 수도 있고, 미술 특성화 어린이집인 만큼 매일 정말 다양하게 그림 그리기, 만들기 등을 할 수도 있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 대부분일 거니 친한 친구가 생기면 동네에서도 자주 놀 수 있을 거고 어쩌면 초등학교까지도 같이 갈 수 있을 거고 등등... 그 어린이집 홍보대사가 있다 해도 이 이상 할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 새 기관의 존재가 편안하게 스며들도록 만들었지요.
처음엔 강하게 거부하던 아이도 이전 어린이집과 새로 이사한 집의 물리적 거리를 두 달간 체감해 보며(막힐 땐 차 안에 한 시간가량 있어야 했던...) 어린이집 이동이 불가피하단걸 천천히 받아들였고 최근엔 기대감마저도 내보이며 엄마 아빠를 흐뭇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실전은 생각과 영 달랐나 봐요. 입학식 날, 이미 친해 보이는 아이들 틈에서 몇 분을 서 있던 아이는, 결국 울먹울먹... 학부모석으로 와서 제 품에 얼굴을 폭 파묻더군요.
"하온아, 엄마도 낯가림이 심해서 지금 하온이가 어떤 마음일지 너무너무 잘 알 거 같아... 엄마도 낯선 곳이 아직 많이 힘들거든"
진심 어린 공감의 말들을 건네자 촉촉해진 눈으로 절 가만히 올려다본 아이...
"오늘 바로 이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모두와 친해지는 건 너무 욕심일 수도 있어. 하나하나 천천히 해나가면 되니까 절대 부담 갖지 말고, 오늘은 우선 선생님 옆에 잘 있다가 만나자, 알았지?"
유독 선한 인상을 가진 선생님을, 아이는 그제야 빤히 바라봤습니다. '저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 싶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처음엔 담임선생님, 그다음엔 여자 친구 한두 명... 이렇게 천천히 관심을 옮기곤 했던 아이. 어느 기관에서든 모든 선생님들이 인정하는 절친이 한 명씩 있었고 그 절친과 아주 깊게 사귀는 스타일이, 어쩜 엄마인 저와 그리도 '닮은 꼴'인 건지.
그것이 생후 백일부터 사회생활을 해야 했던 아이가 다년간 터득한 생존법 같은 것일지도 몰랐습니다.
아이의 '시작'은 그렇게 눈물로 가득했지만 곧 특유의 맑은 웃음소리로 바뀌어갈 거란 걸 확신합니다.
엄마인 저도 같은 날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시작점에 섰습니다. 3월은 제게 아주 특별한 달이 될 예정이거든요. 그동안 브런치에 써 놓은 글들을 책으로 엮어보려 결심했는데 그 작업을 3월 내에 모두 마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췌장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녀석과 햇수로 6년째 지지고 볶는 중인 친정 아빠. 아빠가 4월이면 팔순을 맞게 되시는데요, 80대를 시작하는 꽤 까다로운 할아버지 독자, 단 한 사람을 위해 저의 첫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한 건 무슨 용기에서였을까요?
브런치에 게재한 글들을 '부크크'라는 자가 출판 플랫폼을 통해 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개인의 기념품에 그칠 가능성이 99%에 가까운 책을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됐을 때 누구나 알만한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첫 책을 내자... 늘 생각해 왔던 저였어요.
그런데 그것이, 글쓰기 모임을 이끌며 '글쓰기에 쉽고 편안하게 접근해 보자'라고 한결같이 외쳐왔던 저의 행보와는 사뭇 거리가 먼... '참으로 옛날사람스러운 생각'이었다는 깨달음이 문득 찾아왔지요.
그래서 저는 저의 첫 책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글만 썼던 사람이 나이 마흔에 인공수정으로 엄마가 된 사연, 산후조리원에서 바로 다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신비스럽지만 꽤나 공포스럽기도 했던 한 생명체가 점차 사람이 돼 가는 과정을 겪으며 차라리 '울부짖음'에 가까운 하루하루를 보냈던 이야기까지...
아이가 백일쯤 아빠가 암 선고를 받으셨기에 전 늘 '정말 잘 지내고 있는 딸'인 척했지만 사실 이렇게 많이 힘들었다고 이제라도 알아달라고 책으로 투정을 부리고 싶은 생각은 단 1도 없습니다.
그 '울부짖음'에 가까웠던 날들을 무사히 지나 이제는 정말 빈틈없이 행복한 일상을 살게 된 것을 자랑(?)하고 어린 시절 늘 그랬던 것처럼 '우와 대단하네! 그렇지 누구 딸인데!'라는 칭찬도 덤으로 받고 싶은 마음.
아빠의 그 폭풍칭찬이 저를 작가로 키웠고 저를 살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아빠의 생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았고(얼마 전 통화를 하며 '아빠는 이룬 게 없지만'이라고 하셨는데 절대 그게 아니라고) 오히려 매우 빛나는 것이었음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인생 후반전에서 암이라는 지독한 친구를 만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아빠는 건강을 더 챙길 수 있게 됐고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질 수 있었으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며 암과 싸우다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아빠의 모든 결심과 도전들이 대단히 멋있었다는 것도요.
그러기 위해 3월 한 달은 치열하게 쓰고 수정하는 시간들로 채워야겠지요. 책 제목도 이미 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잘 될 거예요>.
지난 6년간 함께 참 많이도 울었던 우리 모녀는 새 인생의 출발선에서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한 방울, 엄마는 아빠가 보고 싶어 눈물 두 방울... 하지만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각자의 생을 뚜벅뚜벅 씩씩하게 걸어 나갈 겁니다. 울보 모녀의 '특별한 시작'이,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