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4. 우울하기엔 세상은 넓다 (2) - Epilogue
우울의 반대말이 뭘까? 행복? 즐거움? 평안함? 우울의 반대말을 찾기는 어렵다. 우울은 그저 수많은 감정의 스펙트럼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울증'의 반대말은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내 나름대로 정의해보았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내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잊고,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 덕분에 우울증에 걸렸을 때에 비해 나는 지금 훨씬 현재를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현재에 충실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과 강박들을 내려놓고 촘촘히 짜여진 계획 없이도 마음 편하게 흘러가는 대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불안이 많은 나라다. 자연환경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쥐어짜내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어릴 때부터 교육에 혈안이 되고 치열한 경쟁에 찌든 이유가 이런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태초부터 식량이 넘칠 정도로 풍부하고 자국 땅만으로도 자생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갖춘 프랑스는 경쟁이 거의 없고 사람들이 매우 여유롭게 살아가는 편이다. 한국 사람들이 유럽 여행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이런 환경적인 요인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을 부러워해서가 아닐까 싶다. 벨기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 역시 한국에 돌아와 치열하게 교육 경쟁에 시달리면서 힘들어했던 만큼 유럽에서의 그 여유와 평화로움이 그리웠다.
총 11편에 걸쳐서 내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우울증에 걸렸던 이유들(Prologue ~ 1. 우울증과 성격의 상관관계), 우울증을 겪었던 시간들(2. 취업과 우울증), 우울증을 치료했던 방법들(3. 우울증 치료기), 그리고 우울증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그 이후 이야기(4. 우울하기엔 세상은 넓다)에 대해서 시간 순으로 복기해보면서 써내려가보았다. 지금은 우울증 완치 판정을 받아 더 이상 약물을 복용을 안해도 될 정도로 건강해졌다. 그럼에도 아직 내가 다시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지는 않는지 항상 조심하고 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자주 찾아오진 않는지, 내 감정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습관처럼 자주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틈틈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과하지 않은 운동을 하며, 즐거운 취미 생활과 넉넉한 휴식시간을 확보해둔다. 고민이나 걱정, 즐거운 일이나 좋은 생각이 들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글을 쓰는 동안 그 당시 우울증을 겪었을 때의 감정들을 떠올리기가 힘들었다. 그 당시 감정들이 옅어진 만큼 내가 많이 나았다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울증을 겪으며 극복하고자 했던 내 생각들과 그 과정에 얻었던 깨달음들은 비교적 선명하게 떠오르는 편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나를 이루는 뼈와 살이 되어주었던 경험들이다. 그래서 감정에 집중하기보다는 대체로 내 경험에 기반해 얻었던 깨달음, 노하우, 정보들을 공유해서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고 글을 써왔다.
지금은 세네갈에 갔다오고서 한국에서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 하루하루 다양한 해외 업무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다. 잘 맞지 않았던 대기업에서 벗어나 스타트업 회사를 다니는 것의 장점은 회사와 함께 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대기업처럼 체계적으로 인수인계를 받으며 배우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 회사에서 닥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내가 능동적으로 해결하면서 스스로 배우면서 성장해나간다. 아무도 해결해보지 못한 문제들을 내가 맨땅에 헤딩하면서 해결하다보면 어떤 비즈니스적인 역경과 고난이 있어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보다 강력한 멘탈이 생긴다. 이렇게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야지만 스타트업은 살아남을 수 있어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대기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의 퇴사와 이직에 대한 리스크가 생기지 않기 위해 구성원이 교체되어도 사업이 변함없이 그대로 잘 굴러갈 수 있게끔 '체계'와 '관리'의 업무만 남길 뿐이다. 사업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회사 구성원들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처음에 말한 우울증의 반대말인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스타트업 회사에서 기르고 있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하면 취미로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 하고 싶은 다양한 일들에 집중도 해보면서 살고 있다. 물론 지금도 일이 힘들어서 우울해질 때가 꽤 자주 있다. 그럼에도 세네갈에서의 해외 경험만큼이나 한국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내가 우울증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개도국 대상의 글로벌 사업을 하는 꿈을 이뤄 자아실현(경제적,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좇는 멕시코 어부의 삶처럼!)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내 속도대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며 우울증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한국 청년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