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떤 기억은 내가 잡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갇혀있는 것 같은 게 있잖아요.
미련. 안타까움. 회한. 혹은 자책..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누군가를 떠나보낸 날이었어요. 아니, 놓쳐 버린 날이었어요.
미련으로. 안타까움으로. 회한으로. 자책으로 가득한 그날에. 나는 여전히 갇혀있어요.
그날의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발뒤꿈치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나를 보았듯 그렇게 조금 떨어져서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럼 더는 그 안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요..?
꼿꼿이 선 채 입도 뻥긋 못 했던, 끝까지 바보 같았던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더는 그 기억 안에 갇혀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요..?
그날의 나를 보고 싶어요. 타인처럼 나를 보고 조소하고 하찮아하고 싶어요. 그럴 때가 된 것 같아요. 그 속에서 나올 때가 된 것 같아요.
사월에 막 접어들던 때였어요. 남쪽부터 피기 시작한 벚꽃을 서울에서도 볼 수 있던 무렵이었어요. 정신없이 터지는 꽃봉오리 덕에 거리가 환해지던 어느 날, 그 애에게 연락이 왔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오 년 만이었어요.
야 잘 지내냐?
오랜만에 좀, 걸을래?
멈춘 줄 알았어요. 매일 접하는 한글 몇 자를 읽었을 뿐이었는데, 쿵쾅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오 년 동안. 잠잠했던 이유가, 잊고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데 일 초도 걸리지 않았어요. 순식간에 나는 또, 그 애만 보이는 병을 앓던 그 바보로 돌아가 있었어요.
그 애는 첫사랑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부모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내내 학교와 학원에서 함께였으니까요. 그 삼 년 내내 내 눈에는 그 애만 보였어요.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챘어요. 쉽게 고칠 수 없겠다는 것도 예감했어요.
슬프게도 나의 첫사랑은 짝사랑이었어요.
그 애를 처음 본 건 버스 안이었어요. 학교 가는 버스를 타면 다음, 그다음 정류장에 그 애가 있었어요. 같은 버스 노선에 우리 집과 그 애 집이 있었어요.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게 우연 같지 않았어요. 같은 버스 노선을 운명의 끈처럼 생각했어요. 그런 유치한 학생이었어요.
내가 탈 때는 자리에 앉을 확률이 높았어요. 하지만 두 정류장을 거치는 사이 승객이 들어찼고 그 애가 오를 쯤엔 만원 버스가 됐어요. 덕분에 그 애는 붐비는 차에서 이리저리 휩쓸려야 했어요.
몸이 자그마한 그 애가 전 항상 안쓰러웠어요. 내가 앉은자리를 양보해 주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안타까우면서도 매일 붐비는 그 속에 그 애가 있기를 바랐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기심을 동반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했지만 그 이면엔 다른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삼 년 내내 같은 반인 적은 없었어요. 남녀공학이었지만 여자반과 남자 반이 구분된 학교였어요. 만약 그 애와 같은 반이었다면.. 난 아마 대학에도 못 갔을 거예요.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면의 다른 마음은 계속 그 애에게 다가가고 싶어 했어요. 그 애를 따라 나는 방송반에 지원했어요. 그 애는 꿈이 기자라고 당당하게 가입 이유를 말했어요. 나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라디오 피디가 꿈이었다고 거짓말을 지어냈어요. 당황했고 허술했지만 간절함이 보였던지 그 애와 함께 방송반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작고 귀여운 그 애는 밝았고 활기찼고 친구가 많았고 당연히 데쉬하는 남학생도 많았어요. 자기감정에 솔직했던 그 애는 방송반 반장이었던 선배에게 마음을 열었어요. 인기 많았던 선배와 아나운서로 발탁된 그 애는 방송반 공식 커플이자 학교의 대표 커플이 됐어요.
학생들 대부분이 인정했어요. “둘이 딱 어울린다.” 고. 애들은 두 사람을 다른 부류, 다른 신분쯤으로 여겼어요. 감히 둘 사이를 질투하지도 않았어요. 누군가 잘 어울리지 않냐? 고 물으면 나도 당연히 고개를 끄덕여야 했어요. 모두가 인정했으니 덩달아 나도 따라야 하는, 둘은 그런 존재였어요.
방송반에서 마주치지 못한 날이면 나는 가끔 빈약한 나의 용기들을 끄집어냈어요. 그 애 반으로 심부름 갈 일이 있을 때 먼저 나서서 그 반을 들락거렸어요. 예상치도 못한 데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날은 캔 커피 하나를 덜 마셨어요. 그래도 졸리지가 않았어요. 그 애와 따로 찍은 사진 한 장 없었지만 방송반 단체 사진에 함께 있어서 괜찮았어요.
그 정도 떨어져서 그 애를 바라봤고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운 모든 내 마음은 오로지 나 자신하고만 공유했어요. 아, 항상 따라다니는 그림자만 알고 있었어요.
두 사람의 백일날, 선배는 이벤트를 계획했어요. 방송반 애들이 다 함께 그걸 준비했어요. 장미꽃 백 송이로 방송실을 꾸미고 어둠 속에 숨어있다가 그 애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촛불과 폭죽과 축하한다며 환호했어요. 그 애는 깜짝 놀랐지만 좋아했어요. 많이 웃었고 행복해 보였어요. 선배는 커플링을 건넸고 그 애는 자그마한 손가락에 끼워 소중하게 간직했어요.
그날 두 사람은 유난히 더 주인공 같았어요. 친구들은 축하한다고 떠들었는데 나는 앵무새처럼 입만 벙긋거렸어요.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전혀 티 나지 않는 상황이어서 그랬어요. 목소리가 차마 나오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날 두 사람은 정말 다른 신분의 사람 같았어요. 절대 명제 같은 그 사실을 난 인정하고 있지 않았는데, 그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감히 좋아할 수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상대가 맞다고. 비밀이 들켜 버리면 나는, 대역 죄인이 될 것 같았어요.
그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은 학원에서였어요. 같은 버스 노선으로 이어진 우리는 같은 학원에 다녔어요. 학원에서의 그 애는 학교에서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학교에서는 대화 한번 못 해본 날도 있었지만 학원에 가면 그 애와 같은 교실에 있을 수 있었어요. 다른 학교 애들과 섞인 곳이라 그랬는지 그 애도 학교에서보다 더 많이 말을 걸고 더 많이 나를 봤어요. 솔직히 그래서 공부는 거의 못 했어요. 대입 결과만 보면 학원은 아무 의미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내게 가장 의미 있는 곳이었어요.
학원은 중간 정류장에 있었어요. 공부를 마치면 그 애와 나는 각자 반대방향으로 헤어져야 하는 위치였어요. 나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그 애의 집 쪽으로 함께 걸어갔다가 다시 혼자 두 정류장을 되돌아왔어요. 그 시간으로만 하루가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에 종일 갇혔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어요.
걸어가는 동안엔 주로 그 애가 조잘거렸어요. 그 애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시험, 가십, 그리고 선배 얘기를 떠들었어요. 난 주로 듣기만 했어요. 워낙 말도 잘 안 하지만 딱히 할 말도 없었어요. 그 애는 종종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어요. 어떻게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냐고 외계인 보듯 올려다봤어요. “밥은 먹지?” 묻기도 했어요.
그게 내 잘못이구나, 깨닫고 입을 떼려는 순간 그 애는 또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 과묵함이 믿음직스럽다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은 얘기를 하게 된다고. “니가 참 편하다.”라고.
나는 칭찬인지 핀잔인지 모를 그 말이 좋았어요.
그리고 또 슬펐어요.
그런 존재로라도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런 존재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어요.
우리는 그렇게 함께 시간을 걸어 고등학교 생활의 끄트머리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각자 선택한 대학으로 흩어졌고 다시 새로운 학생으로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신입생 때는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어요. 일 년이 마치 빡빡했던 한 달 같았어요. 군대를 가야 할지 그대로 학년을 이어갈지 고민하던 연말에 방송반 동기가 단톡방을 만들었어요. 군에 가기 전에 한번 모이자구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숨겨뒀던 그 애가 다시 화면에 떠올랐어요.
눈앞에 다시 나타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