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a Bersama)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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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교회와 성당, 절을 멀리했던 내게는 학교나 유치원에 다니는 애도 없었다.
막상 정보를 얻으려 보니 지인이 남편뿐이었다.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남편은 이곳에 오고부터 나보다 유식해지고 있었다.
“여기 생활 오십 프로 이상을 기사 식모가 좌우한댄다. 사람 써야 말도 늘고.”
남편은 계속 알은체했다.
예전 식모들은 시골에서 올라와 엘리베이터도 무서워했는데 세대가 바뀐 요즘은 계산적이고 영악해졌다나.
홍삼도 정관장 아니면 손대지 않는다고 했다.
온 지 얼마 안 되는 바루 다땅(새로 온) 뇨냐(외국 부인들에게 붙이는 호칭)들 집만 돌며 머리 위에
앉아 있기도 하고.
애들, 특히 남자애 있는 집은 되려 면접을 당해 사람 구하기가 만만찮다고도 했다.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정대리 집 식모에게 사람을 부탁했다며 얼굴도 모르는 그 집 식모 칭찬까지 덧붙였다.
정대리는 비록 이산가족이 됐지만 식모 복은 있어서 처음부터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야니는 작은 체구에 대다수 현지인처럼 짙은 쌍꺼풀과 맑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미스터르 정 집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히잡을 쓰지 않았고 중 단발 머리칼을 잔머리 하나 없이 묶고 있었다.
통역 앱을 손에 들고 전날 밤 남편에게 급행 과외까지 받았지만 내 입은 주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고맙게도 야니는 눈치가 빨랐다.
내 수준을 파악했던지 최대한 천천히 쉬운 단어들을 사용했다.
동행한 여자는 작지만 강단 있는 체구에 히잡을 쓴 중년 아줌마였다.
자신을 하띠라 소개한 여자는 신을 벗고 들어오자마자 집부터 훑었다.
그 모습은 노련한 경력자의 인상을 주었는데 야니 못지않게 눈치도 빨라 내게 직접 묻지 않고 야니를 통했다.
야니는 마치 통역사인 양 하띠의 빠른 언어를 천천히 전달했다.
나는 커뮤니티에서 본 월급 시세를 제시했는데 하띠는 탐탁잖은 얼굴로 야니와 한참 대화했다.
자신의 경력을 내세워 더 받고자 했지만 야니의 중재로 한 달 후 인상하는 절충안에 동의한 거였다.
통역을 거치는 대화가 답답했지만 똑 부러지게 말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오케이 했고 그대로 계약이 성사됐다.
돌아갈 때까지 이어진 야니의 당부에 하띠는 성가신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지원군 같던 야니가 돌아가자 나와 하띠만 남았다.
생전 처음 보는, 게다가 말도 잘 안 통하는 이국의 여인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어정쩡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나뿐인 듯했다.
하띠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방을 찾아 들어갔다.
나보다 더 내 집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곳의 거의 모든 주택에는 도우미 방이 존재했다.
부엌 뒤나 옆에 잘 보이지 않는 숨은 공간을 집마다 품고 있었다.
멀뚱거리는 사이 하띠는 히잡은 그대로인 채 옷을 갈아입고 나와 뭐라 말했다.
말이 빨랐고 갑자기여서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띠는 더 묻지 않고 청소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답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표정이었다.
갑작이라 못 알아들은 건데. 화장실도 깨끗한데..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말리지도 못했다.
그날 퇴근한 남편은 부엌의 히잡 여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주로 잠옷 바지만 걸치던 그는 티셔츠까지 챙겨입고 나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치를 보고 목소리를 깔았다.
“어.. 이게 좀, 어색하긴 하네.. 옷도 막 못 입겠고..”
우리는 그녀 앞에서 괜히 주눅 들었다.
내 집이지만 그랬다.
하띠의 경력이 상당한 건 알겠지만 그녀의 청소 습관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가구와 물체를 축축한 걸레로 닦았다.
티브이, 컴퓨터 브라운관에는 섬유 자국이 남았고 행주와 걸레를 같이 빨아 널었다.
다림질은 몇 시간씩 했는데 세탁기에서 나온 모든 것, 양말과 심지어 속옷까지 하나하나 다리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을 대할 때마다 나는 놀란 얼굴로 손짓, 발짓을 버무려 설명했고 그럼 그녀는 항상 눈으로 답했다.
응 초자 외국인 아줌마. 내가 알아서 할게.
하띠의 그런 태도는 일관성 있게 지속됐다.
나를 답답하게, 가끔은 한심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점점 빈정이 상했다.
나는 남편을 상대로 회화 연습을 했고 초급 인니어 강좌를 들으러 한인 교회에 가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띠의 첫 월급이 다가올 무렵.
주말 늦잠 중이던 우리는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깼다.
현관 앞에는 그녀의 짐가방에 놓여있었고 남편과 한참 대화를 마친 하띠는 은행 앱으로 이체 내역을 확인한 후 비로소 인사를 건넸다.
“Minta maaf Nyonya(민따 마압 뇨냐). Terima kasih(뜨리마 까시) (미안해 사모. 감사합니
다.)”
만난 이래 처음 보는 미소를 보이고 그녀가 문을 닫자 남편은 윗도리부터 벗어 던졌다.
“와 이제야 내 집 같네. 아이고 편해라.”
나의 첫 경력직 식모는 그렇게 쿨하게 초자 외국인 뇨냐를 버리고 가버렸다.
하띠는 내게 무력감과 패배감 같은 걸 남겼다.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고 서 있다 판정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결백하지만 그녀에게 뭔가 나쁜 짓을 한 듯했고, 나 역시 잘 모를 어떤 짓을 당한 기분이었다.
시골에 누가 아파 간다는, 그냥 하는 소리인 걸 알면서도 남편은 조언을 들었다며 오만 루피를 더 줬다고 했다.
한국 돈 사오천 원이 아깝고 아까웠다.
하띠가 떠난 후 다시 땀 흐르는 시간이 시작됐지만 마음은 왠지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