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a Bersama)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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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위에 젬병이었다.
겨울 한파에는 입을 수 있는 모든 옷을 껴입었다.
보온을 위해서라면 일 초의 망설임 없이 패션을 내던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적도라는 명사에는 쫄지 않았다.
더위는 잘 견딜 예정이었으니까.
헌데 변수를 예상 못 했다.
일 년 내 버텨야 하는 것에 고온 말고 습기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더위가 온도보다 습도로 좌우된다는 걸 적도에 와서야 깨달았다.
냉방기가 날려버리는 건 뜨거운 공기와 그것이 품은 물기였다.
살갗은 생각보다 많은 수분을 머금고 있었고 움직이기만 해도 피부에서 물이 빠졌다.
에어컨은 무인도의 필수템이었다.
와이파이 없이는 몇 시간 버텼지만 에어컨 없이는 한 시간도 버틸 수 없었다.
새벽 시간 에어컨이 멈추면 우리는 땀을 질질 흘리며 잠에서 깼다.
에어컨을 멈추고는 살 수가없었다.
우리는 종일, 자든 안 자든 찬바람을 틀어댔다.
한국서 가져온 홑이불마저 홀대하며 잠이 들었다.
에어컨은 온도뿐 아니라 습도도 조절했다.
차고 건조한 바람은 땀샘에 고인 물기까지 바싹 말려주었다.
그 바람으로 모든 물기를 증발시키고 싶었다.
그래야 쾌적했고 그래야 살만했다.
얼마 후, 우리는 똑같이 훌쩍이며 병원에 방문했다.
겨울 감기도 안 걸리던 남편은 무려 적도에서 감기에 걸린 자신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한인병원 원장은 잘 때라도 잠시 에어컨을 꺼주라 조언했다.
감기로 한국 돈 이십만 원을 쓰고서야 나는 호되게 혼난 학생처럼 기계를 멈추고 창문을 열었다.
이곳 아파트는 기본 골격을 빼고 집주인에 따라 달랐다.
자비로 인테리어를 해 임대하거나자신이 거주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구조여도 싱크대와 빌트인 가구가 집마다 다르다고 했다.
창문의 방충망도 그랬다.
겨울이 없어 단열이 필요 없는 이곳은 이중창도 아니며 방충망이 있기도, 없기도 했다.
우리 집은 없는 집이었다.
창문을 여니 후끈한 공기에 먼지도 벌레도 동행했다.
차가 많아 최악의 대기 질을 자랑하는 자카르타는 유난히 검은 먼지가 많았고 창을 열면 막힘없이 집안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냉랭한 대리석 바닥을 맨발로 디뎠는데 창을 여는 날에는 금세 발바닥이 새까매졌다.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밀어야 했다.
그럼 내 몸은 또 물기를 뿜어댔다.
힘없이 설렁설렁 움직여도 마찬가지였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후끈하고 끈끈한 공기 탓이었다.
체온이 한계점에 다다르면 나는 항복하고 찬바람을 켜 정통으로 마주 섰다.
그런 짓을 반복적으로 반복했다.
거울 속 내 피부는 푸석해졌고 거무튀튀해졌다.
에어컨 바람은 습도 조절에 좋았지만 내 컨디션 조절에는 꽝이었다.
몸뚱이가 주기적으로 으슬거렸고 그러면 또 감기약을 뜯어야 했다.
나는 꽤 자주 소금에 절인 배춧잎처럼 늘어지곤 했다.
어느 날 저녁 맛없게 식사하던 나를 보다 남편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안 되겠다. 무인도 그만하자.”
남편은 북방계 민족이 여기 날씨랑 안 맞는 건 과학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이곳과 맞춤 DNA인 현지인들은 그래서 우리보다 땀이 덜 나는 거라고.
그래서 이 더위에도 길거리 오토바이 족이 가죽 잠바를 걸치고, 그래서 북방계 민족들은 대부분 가정부를 쓰는 거라고.
병원에 쓸 돈으로 사람을 쓰는 거라는 남편의 말은 꽤 설득력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이곳의 땡볕과 습기는 외면한다고 외면되는 종류의 것들이 아니었다.
보편적인 건 이유가 있지 않은가.
내가 특별하긴 하지만 땀을 안 흘리는 초능력 같은 건 아니니까.
삼투압으로 수분도 기운도 빠져 얇디얇아진 내 속에서 갈등이 일었다.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 항복하고 그만 무인도를 나와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