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의 단편
일요일은 낮잠이 허락된 몇 안 되는 하루다.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에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아이들의 소리랄지
신랑이 아이들을 챙기느라 분주한 소리들은 잠시 못 들은 척하기도 하는.
그런데 전화 진동이 울린다.
아빠다.
"이따 시간 되면 시장에 갔다 오자고~
복숭아도 사고, 양파도 좀 사 오라고
엄마가 심부름시켜서."
아. 오늘은 좀 쉬고 싶었는데.
어제 아빠와, 우리 아이들 둘과 신랑과 함께 다이x에서 장도 한바탕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싸우고 말을 듣지 않아 혼을 쏙 빼놔서
오늘은 집에서 나무늘보처럼 그냥 쉬고 싶었는데. 또 나가자고 하시네.
후우.
"시장 가자고요? 그럼 어제 같이 가지 그랬어요~ 흠.. 알겠어요. 시간 보고 연락 할게요."
"응 시간 되면 가고... 아니면 뭐..."
아빠에겐 투덜거리며 말을 했지만,
나의 썩 달갑지 않은 반응 끝에
얼버무리는 아빠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꼭 말해놓고 후회하는 나의 이 나쁜 버릇이란.
결국 갈 거면서 말이다.
아빠와 함께 시장에 갔다.
시장에는 가끔 아빠와 단둘이 먹는 떡볶이 단골 집이 있다.
아빠는 시장 튀김을 좋아하신다.
특히 야채 튀김과 오징어 튀김.
그곳에서 먹는 튀김 맛이
옛날 학교 다닐 때 먹던 그 맛과 같아 늘 감탄하시곤 한다.
아빠는 과장법이 있긴 하시지만,
그 정도면 정말 추억의 그 맛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늘도 그곳에서 함께 튀김과 순대, 떡꼬치를 먹는다.
아빠에게 튀김이 있다면, 나에겐 떡꼬치가 있다.
70대가 된 아빠는 삼성페이에 카드 하나를 더 등록하는 것을 부탁하신다.
나는 카드를 등록해 드리면서도
디지털 문맹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배우셔야 한다는 잔소리를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분식집 아주머니께서 웃으시며 물으신다.
"부녀지간이 너무 좋아 보여서, 혹시 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아빠가 태어난 연도로 대답하신다.
아주머니께서는 아빠보다 두 살 어리시다고 한다.
같은 연배이셔서 반가우셨던지,
아니면 손님이 없는 분식집에서 심심하셨던지
또 말을 걸어온다.
"이 나이가 돼도, 즐길만한 취미 같은 거 하나씩 만들어야 좋아요."
"혹시 취미 같은 거 있으세요?"
"나 oo이(가수이름) 덕질해요. ^^"
"아 그러시구나~"
아빠는 한 때 송가인을 좋아하셔서 앨범도 열심히 사서 들으시고,
유튜브로도 열심히 찾아보셨었다.
그런데 그것도 벌써 몇 년이 흘러버렸다.
지금은 아빠가 무엇에 즐거우실까.
아빠 앞에선 때론 10살짜리 어린애처럼 철없는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나는
10살짜리 딸과 7살짜리 딸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 있다.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키우고 싶진 않지만,
예의 없이 자라는 건 원치 않아
때로는 지나치게 엄격해지기도 하는 요즘,
어제 아이들을 훈계하던 나와 신랑의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아빠가 한 마디 하신다.
"애들 다 싸우면서 크는 거야. 너무 무섭게 혼내지는 마."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들으면 좋았겠다.
그런데 그게 또 쉽지가 않다.
"아빠, 제가 언니랑 싸웠을 때
우리는 회초리 맞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안 싸웠을 지도 몰라... (무서워서?) "
아빠는 말이 없으셨다.
아빠는 엄마가 된 딸의 모습에서
자신의 지난 과오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다 커버린 딸들을 볼 때마다 미안해지는 마음을
너만은 그러지 말라고 건넨 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10살 그 즈음의 '나'도
내 마음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지.
그 때의 그 서운함이 아직 어딘가에 남아있었는지.
투덜이가 된 듯한 나의 대답은
집에 와서도 두고두고 머릿속에 찜찜하게 남는다.
그럴거면 좀 예쁘게 말할 걸.
그래도 장을 보다 부추를 보시고, 쪽파를 보시고
파전을 해 먹으면 맛있겠다고 하는 아빠에게
또 투덜거리면서도, 서툰 손으로 그 파전을 만들어 낸다.
파전은 생각보다 쉬운 음식은 아니었다.
쪽파를 반으로 잘라 쭉 늘어 편 다음,
거기에 부침가루물을 붓고,
그 위에 해물까지 올리면...
순서와 과정은 꽤나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뒤집는 순간 중심을 잃고 흩어져버린 해물과 파들...떡이 된 반죽.
겨우 신랑이 노릇노릇함을 추가하여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기분 좋게 '뭐든 해드리지요.'라는 립서비스도 쉽지가 않다.
아빠는 늘 '말만 해 다 사줄게.' , '넌 날 닮아서 뭐든 할 수 있어.' 이런 류의
립서비스를 참 많이도 받았는데. 난 왜 이 좋은 걸 배우질 못했을까?
그게 나에게 큰 힘이었다는 걸 살며 느끼고 있으면서도.
아빠를 집에 데려다 드리고 돌아와
내가 뱉은 말들이 가시처럼 마음에 걸린다.
아빠에게 문자로 몇 자 적어본다.
"아빠 덕분에 저도 오늘 즐거웠어요....(후략)"
쓰다 만 메시지는 결국 또 보내지 못했다.
오늘은 해주고도 미안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