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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Aug 31. 2021

단편의 단편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져온 기존의 가치관이 크게 흔들릴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 가치관을 애써 붙들어매고, 내가 흔들렸던 이유를 다시 한 번 곱씹으며

그 흔들림의 이유를 제거하기 위해 애썼었다.


어떤 상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심리와는 거리가 먼 투자 관련 상담이었다.) 거기서 조언자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자신의 생각이 너무 확고하고 강한 사람들이 투자에 있어서도 실패할 확률이 꽤 된다는 얘기였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다양한 상황의 포장만 다를 뿐, 그것을 선택하게 되는 패턴은 반복된다. 내가 생각해왔던 기존 가치관이 너무 강할 경우, 그것이 사실은 옳지 않은 것임에도 이미 확고한 신념이 옳든, 옳지 않든 강화되어온 나의 마음 속에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나의 가치관이 흔들릴 때면 나에게 정말 조심스럽게, 하지만 나지막하게 묻게 된다. '정말로 네가(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니?'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을 스스로 수정하기도 한다. 흔들린다는 것은 내가 뭔가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기에 오히려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꼭 그래야한다고 나를 다그쳐왔던 것들에 대한 자그마한 해방이랄까. 그런데 나 자신으로 인해 갇혀있던 무엇인가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나니 때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그 답을 새로이 구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도 '비장하게' 해왔던 것들을 조금 가볍게 여기도록 노력하고 보니. 그것이 날 훨씬 더 자유롭게 함을 느낀다.


결국 선택지가 너무나 많을 때 사람은 오히려 행복감을 덜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걸 얻었지만, 나머지 모든 것들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 그들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선택을 하는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실패' 아니면 '성공'이라는 두 가지의 이분법적인 결과로만 예상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부담을 가지게 되고, 또 그 선택 자체를 괴롭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지라도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래서 그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후회의 길은 아닐 것이다. 나의 사소한 결정이 가져온 큰 성공이 때로는 심리적인 어리둥절함과 함께, 하나의 회의감으로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생각 끝에 결정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나 자신이 지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 너의 선택이 무엇이든 널 응원해!" 나라는 첫 번째 지지자를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세상살이는 누구에게나 격려가 필요하므로.


장 폴 사르트르라는 철학자는 말했다지.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도 간결한 한 문장이다.

죽음마저 비장해지지 않도록 하는.


난 그저 

좀 더 가볍게 살고 싶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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