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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Sep 20. 2021

단편의 단편

back to the 1997

피식. 아빠가 갑자기 웃으신다.

난 닭갈비를 집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빠에게 왜 웃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저 웃으실 뿐, 그 이유를 말하지 않으신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나는 ‘아빠 왜 웃으시는데~?’ 하며 물었다.

그랬더니 아빠가 하시는 말씀,

‘니 말투가… 중학교 때랑 전혀 달라진 게 없어서 옛날의 모습이 오버랩돼서…’


생각지 못한 아빠의 대답에,

먹던 닭갈비랑은 전혀 어울리지도 않게 코 끝이 시렸다.

이제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딸과, 이제 70을 바라보는 60대 후반에 진입하는 아빠.

이렇게 둘이 함께 데이트하듯 바깥에 나온 일도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지난주 목요일, 갑작스럽게 목덜미에 수포를 동반한 다발성 피부염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작년에 앓아본 적 있었던 대상포진이 아닐까 해서 병원에 갔더니 ‘수두가 의심된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혹시 어릴 때 수두를 앓았었는지, 그걸 확인해 달라고 한다.

겨우 연결이 된 엄마에게 여쭤보니 ‘몰라~’라는 쿨한 답변.

이틀 뒤 다시 간 피부과에서 피부의 양상을 살펴보더니 아무래도 수두가 맞는 것 같단다.

지난번의 그 대상포진은 대상포진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나는 전염성 질환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추석 연휴를 아이들과 격리해 친정에서 지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친정에 와야 하는 언니네 식구까지 오지 말라는 연락을 해 주었다.

나 때문에 졸지에 갈 곳을 잃게 된 우리 조카들에겐 참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육아에 지친 내게 내 몸이 스스로 쉴 시간을 마련해 주는구나, 하는 마음에 참 고마웠다.


그런데 이렇게 된 상황에서 가장 신난 건 우리 아빠였다.

쿵작이 나름 잘 맞는 둘째 딸이 그것도 손녀 둘을 훌훌 털어두고 제 몸만 친정에 와있으니,

마치 룸메이트 하나를 얻은 양 신이 나셨다.

아빠의 침대방까지 내주시고,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도 사 와서 같이 드신다.

그동안 참 외로우셨나 싶을 정도로, 내가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워 보이신다.

그렇게 5일째 아빠와 함께 한 날이 오늘, 아빠와 가까운 쇼핑몰에 가서 컴퓨터를 구경하기로 했었다.

늘 인터넷(요즘엔 유투브)과 바둑을 주로 하는 아빠의 컴퓨터는 그다지 느려질 이유가 없는데도, 너무나 답답할 정도로 느려져 있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아빠 컴퓨터 바꾸셔야겠어요~’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는 컴퓨터를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만으로 아빠가 원하는 종류의 컴퓨터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기에 함께 컴퓨터를 구경 가기로 한 것이었다.

구경하기 전, 먼저 밥을 먹으러 갔는데 아빠가 고른 메뉴는 닭갈비. 아빠와 어릴 때 자주 먹은 적 있던 메뉴였다.

그곳에서 내가 아빠에게 핀잔주는 말을 던졌는데, 그 말이 아빠의 기억에 있던 중학교 때 나의 말투와 오버랩된 것이다.

하하하. 얼마나 웃음이 나셨을까.

그리고 그 웃음 속에 담긴 행복감이 내게도 전해지고 말았다.


결혼하고, 신랑이 생기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 인생 속 인물들의 비중이 변했다.

결혼하기 전엔 엄마, 아빠, 언니가 내 가족이었다면

이제 난 신랑, 두 아이가 중심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 핑계로 부모님은 생신날, 명절 때만 의무감으로 챙기고 있었다.


어쩜 당연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나의 시선이 참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에 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내가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베푼 사랑 또한 내가 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부모가 되고 보니 또 부모의 마음이 보이고 만다.


딸과 둘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쇼핑하고…

그렇게 별 것 아닌 일상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모든 부모들은.


그리고 지금은 내게 매달리며 애정을 갈구하는

나의 어린아이들도…

언젠간 지금의 나처럼 자랄 테고,

난 또 그 아이들과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나의 아빠처럼…

그때 아쉽지 않으려면

지금 아이들과 더 많이 사랑을 나누어야겠구나.


내게 쉴 시간이 주어지자,

비로소 생긴 마음의 여유 덕에

부모님의 마음, 아이들의 마음

한 번 더 헤아릴 시간이 생겼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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