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는 과정

서툴고 어색하지만, 해볼 수 있겠어요.

by 토깽이

얼마 전, 한 사람을 알게되었다.

심리학, 상담을 공부하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오던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으로, 내가 일하는 곳에서 만난, 옷깃도 스치면 인연이라는 말이 딱 적절한 만남이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다른 일을 했다면, 내가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면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고 있었겠구나.'싶은 생각이 들었고, 또 다른 나를 보는 기분이었다.

낯설었지만 익숙했고, 생소하지만 편안하기도 했으며, 무서웠지만 반갑기도 했다.


낯설었지만 익숙했던 건, 나는 내가 주로 생활하는 반경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어왔기 때문에, 나와 생활반경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 자체가 낯설었다. 생활 환경이 비슷하다는 건 직업적, 상황적 배경이 유사하기에 공통 주제를 애써서 찾을 필요가 없고,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이얘기 저얘기 나누며 친밀감을 빠르게 형성할 수 있어 관계를 맺기가 수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한시간, 두시간,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면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나의 지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흔한 나의 친구 사귀기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과의 만남은 나의 기존 데이터가 적용되지 않은 낯선 조건이 적용된 상황이었고, 맨 땅에 헤딩하는, 그래서 머리가 너무 얼얼히 아팠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을 대하는 적극적이고 호기심 어린 태도,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용기, 남을 대하는 진솔한 마음가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강해보이지만 한없이 여린면, 섬세함과 예민함, 꼼꼼함, 성실함,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 자신의 경험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 등 내가 누군가들에게 들었던 내모습에 대한 피드백이 딱 생각나는, 그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온전히 이해가 되었고, 그 이면의 모습까지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익숙한 내모습 처럼 느껴졌다.


생소하지만 편안하기도 했던건, 나의 적극성이었다. 나와 생활 반경이 비슷한 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취향과 가치관, 성격들을 알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적극적인 모습들이 상대에게도 들어나게 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르익거나 깊어지기 시작하는데, 이 관계는 무턱대고 내가 관계를 먼저 맺자고 덤볐다(상대는 당했다고 표현했다). 내가 사람에게도 그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알게된 순간이었다. 보통 이런 적극성은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만 할 때, 온몸의 긴장감을 다 쥐어짜내 만들어내는 용기로 나오는데, 사람을 향해서 나왔던 건 처음이었다. 대상이 사람이라 생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했다.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표현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편안하고 시원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기는데,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어쩌면 낯선 상대가 오래알고 지냈던, 익숙한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 또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눌 수 있었던 과정이 시원했다.


무서웠지만 반갑기도 했다. 나의 적극성을 쥐어짜낸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 그 자체가 무서웠다. 대상이 환경이 될 때는, 새롭고 낯선 상황이더라도 고유한 특성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환경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파악해서 그 상황에 최대한 익숙해질 수 있도록 수십번 수백번 나를 담금질하며 낯설지만 친숙해져야 하는 그곳에 나를 적응시키려고 한다. 그렇지만 대상이 사람이 될 때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그 사람에게 맞추어 담금질 할 수 없다. 가령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져도, 그 사람 만이 가진 특별한 섬세함과 예민함의 결이 있기 때문에, 그 특수성을 예측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 한 끝이 어긋나면, 친밀했던 관계도 쉽게 어그러져 버리기 쉽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마주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럴려면 모험을 시도해야 한다. 모험 속에서 그 사람의 특별함과 고유함, 그리고 나의 것들을 조율해나가며, 서로를 위한 담금질 과정을 통해 관계가 형성되고 무르익는 과정 속에 그렇게 친구가 된다.

그렇지만, 사람은 변수의 존재이며, 그래서 생면부지의 타인을 대한다는건 나에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나로 인해 관계를 망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긴장되고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가웠던 건, 나의 한 조각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그 과정 자체이다. 그래서 너를 이해하는 일이지만, 또 다른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 사람의 세상을 통해서 나의 세계와 나의 생각, 나의 감정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라 반갑다.


그렇지만 낯선 사람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 자체로 나를 흠칫하게 만들고 긴장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한 긴장감이고, 경험하고 싶은 긴장감이며, 기대되는 긴장감이다.

마냥 긴장감이 불편감만 주는거라 여겼는데, 유쾌함으로 가는 긴장감인 듯하여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과 단계들이 기대가 된다.


낯설어서 나의 모든 행동이 서툴고, 낯설어서 나의 모든 표현이 어색할지라도

그 순간에 잘 서있고 싶다.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내 세상에 그가 방문객으로 왔듯, 나 또한 그의 세상에 방문객이 될 것이기에

내 세상에 온 방문객과 나란히, 차근차근 친구가 되고 싶다.

어마어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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