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는 군인들의 마음이 이런걸까? 아니지 이것보다 훨씬 시원하겠지? 아무튼 성화봉송이 끝나는 날이 왔다!
스탭 대상 올림픽 티켓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는데 근무를 해야 하는 시간인지라 친한 친구에게 티켓을 선물하기로 했다. 학부생만 13년째, 언제 졸업할진 아무도 모르는 내 동기 곤충학자 ㅠㅠ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분명히 우울했을 이 친구에게 리프레쉬할 기회를 억지로라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 친구는 잠수를 잘 탄다. 그래서 전화하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나지만 이 친구에게는 수시로 전화를 건다. 평창군청에서 오전 9시 이전에 만나자는 약속을 어제 했지만, 또 잠수를 탈 것만 같아 오전 5시 30분에 전화를 걸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10년여만에 이 친구가 통화연결음이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친구 왈 “야 나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야. 방금 출발했어.” ㅋㅋㅋㅋㅋ
곤충학자랑!
이쁜 동생과 함께 온 친구와 수호랑 앞에서 억지로 사진도 찍고, 호들갑스러운 인사를 건넨 뒤 나도 일에 돌입했다. 올림픽 기운 가득 받아서 올해는 꼭 졸업하자 친구야!!
CP에 다시 들어가서는 열심히 주자 맞이를 했다. 사실 예의 없는 사람들도 겪고 또 그런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주자 대상 서비스가 귀찮고 하기 싫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누구에게든 성심성의껏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이파이브도 평소보다 신나게, 표정도 더 밝게, 안내도 친절하게!
주자 맞이
그리고 평창에 왔다는 것은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평창군 로고 앞에서도 따봉을 들어올렸다.
평창에 도착을~ 했습니다! (강호동 말투)
그리고 마지막 날이라 주자들을 더 응원하기 위해 봉송로로 나갔다. 어드밴스팀이 오기도 전에 도착을 해버려, 봉송로 상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가게 됐다. 친절하게도 커피도 주시고 따뜻한 식당 안에서 기다리게 해주셨다. 아들이 대치동에서 어린이 수영 강사를 한다는 사장님 내외분 번창하세요!
특이했던게 식당에 달력이 12개나 걸려있었다. 사장님에게 왜 12개를 걸어두셨냐 여쭤보니 달력을 여러 사람들이 줬는데 누가 준 건 걸고 누가 준 건 안 걸기가 미안해서 다 거셨단다. 와우
달력 12개
CP에 복귀해서는 수호랑에게 기대서 또 사진을 찍고
수호랑이 좋아
다음 CP인 진부청소년문화의집으로 서둘러 이동을 했다. 마침 그곳이 본대 휴식지라서, 마지막으로 카라반에 올라 타 사진을 찍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하지만 나는 낯을 꽤나 가리는 편이고 여간해서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질 않는 터라 카라반 퍼포머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성화봉송을 마치고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그게 단연 1번이다. 다음 프로젝트 때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어맛? 다음 달에 패럴림픽 성화봉송이 있네? ㅋㅋ
최고였던 삼성 카라반
원래도 셀카를 잘 찍던 룸메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셀카 능력을 두 배로 발휘했고,
고배우님 나중에 대배우 되면 저 잊지 마세요
룸메와 셀카
진짜 마지막 구간으로 응원을 나가기 전에는 IBC (International Broadcasting Center) 맞은편 AD 발급소에 가서 내 AD를 받았다. 그간 일을 하면서 수없이 받았던 네임택이지만 올림픽 AD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설레던지!
발급 기다리는 동안 기념샷
받고나서 기념샷!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받으니 기분은 좋네 ~.~
고이 자켓 안에 AD를 넣고 횡계 로터리로 갔다. 봉송로이기도 하고 올림픽 베뉴 근처 최고의 번화가(?)라서 다양한 시위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 전쟁광 트럼프는 물러가라는 사람들,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사람들. 아마 외국인들은 성조기만 보고 미국 대표팀을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지런한 사람들
삼성의 마지막 슬랏이 끝난 후, 다음 슬랏 근처에서 광고주를 비롯해 우리 팀 사람들, 그리고 우리 주자 운영팀 스탭들 대부분이 모여 카라반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지난 101일간 찬바람을 맞으며 그야말로 전국 길바닥을 누빈 카라반 퍼포머들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였다. 그리고 두 줄로 서서 인간 터널을 만들어 퍼포머들이 지나가게 했다. 삼성 카라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인스타그램에 시민들이 올린 후기를 보면, 많은 수가 “삼성 존잘 남신”, “잘생긴 삼성 스탭”이라고 쓰여있다. 우리 퍼포머들은 비보이들과 모델들이 대부분이라 비주얼이 훌륭하다. 그런데 그분들이 인간 터널을 지나면서 펑펑 우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 것 같다. 특히 우리 팀 막내 직원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끄아!!!!!”하고 울음을 터뜨리더니 선글라스를 움켜쥐면서 수분간 오열을 했다. 눈물은 나는데 그 모습이 웃겨서 울면서 웃었다 ㅋㅋ
개막식장으로 성화를 들여보낸 후에는 숙소로 복귀했다가 전체 삼성 크루 회식에 갔다. 거기서도 웃다가 서로 포옹하고 울고...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라도 이번 성화봉송은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에 어떤 프로젝트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 성화봉송에 함께 했던 스탭들과는 또 만나고 싶다!
삼성 크루
이렇게 모든 일정이 끝났다. 처음 이 일지를 쓰기 시작할 때는 어떻게 이어나갈지 막막한 한편 정말 멋지게 쓰고 싶었다. 지금 보니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지만 적지 않았다면 잊어버렸을 이야기들을 이렇게라도 남기게 되어서 기쁘다.
성화봉송 현장에서 그동안 단순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서비스 하는 일은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이 너무 적어 괴로울 때도 있었고, 현장이 재밌긴 하지만 책상에 앉아 머리를 쓰는 일이 내겐 제격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쉽고 단순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장에 나오기 전 치밀하게 계획을 짰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도 안다. 책상에 다시 돌아가면 밖에 나오고 싶어 안달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많이 배운 101일이었다. 그리고 좋은 101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