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인가, 가정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적이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 존경하는 마음에 결혼을 해 이혼을 하고 또 그 상처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혹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채 회피하기만 하다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관찰해온 것 같다. 나의 부모님께선 관계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서로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몰랐고 새로운 이면에 대한 모습에 실망감도 커지고 관계에 대해 신뢰를 잃어간 케이스였다. 특히 어머니께선 그 상처를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감정이란 것은, 행동이란 것은 쉽게 숨겨지지 않는 것으로 두 분의 관계에 대한 부작용은 그대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가족이란 집단에 대하여 꾸준히 고민하고 또 고민해왔다.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배우자나 자녀문제만큼은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제 나이에 맞게 연애를 해 왔고 연애를 해 오며 결국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삶을 영위해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며 타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결국은 싸움으로 이어지고 상처만 남을 뿐이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생활을 해 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의무에 대하여 너무나 불만적이었고 여성이 결혼을 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남자를 신뢰하지 못했던 나는 헌신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도 그 말들을 다 믿지 못하고 부정하고 시험할 뿐이었다. 대학시절 긴 시간 함께했던 A군은 언제나 나를 조심스러워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존중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의 일을 존중해주고 그의 앞길이 창창하길 누구보다 바랬다. 그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며 삶을 영위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어렸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고가 너무 좁았다. 결국 긴 시간 줄다리기를 했던 우리는 인연을 끊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나의 성향과 달리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 때, 파티플래너로써 클럽파티를 기획하고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 대 기획이라는 재미에 빠져들어 여러 공모전을 참여하며 지원을 받아 뉴욕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쯤 알게 된 B군이 있었는데 그 B군은 나의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에 나에게 반했다며 고백을 해 왔고 우리는 연인으로써 발전하게 되었다. 6개월 남짓 만난 그 B군은 끝내 내게 사회에서 말하는 조신하고 가정주부의 모습을 요구하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 술자리 하는 것마저도 두려워했고 동성친구, 이성친구를 불문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그렇게 나는 독신주의자로써 입문을 하게 되었다.
B군 이후에도 몇몇 아주 짧게 데이트를 하는 정도였고 연애에 대해 아주 흥미를 잃게 되었다. 의무적으로 만나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밥 먹고 이 과정들이 너무나 무료하고 재미없게만 느껴졌다. 3년 정도를 연애를 하지 않았고 때때로 친구를 만나며 장기 등산을 다니거나,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에 더욱 재미를 느끼며 살게 된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던 회사를 떼려 치고 긴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한 브라질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브라질에서 온 남자, 알렉스. 지금도 많이 어려운 영어 의사소통이 당시엔 정말 속 터질 정도로 어려웠던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기 시작했었다.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의사소통이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그래, 까미노 20여 일간 친구 하다가 더 만날 일 없겠지. ' 그리곤 가벼운 마음으로 그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기엔 내 영어가 너무 짧았지만 감성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특히나 개떡같이 말해도 콩떡같이 알아듣는 말이 있듯 그는 이상하게도 내 말을 참 잘 알아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흔하디 흔한 시한부 까미노 커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