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아빠의 취향 교차로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9

by 최영훈

방학이 되면, 종종 딸과 단 둘이서 움직이곤 한다.

매 방학마다 집에서 가까운 중고서점과 대형 팬시 전문점에 가는 건, 일종의 개막 행사 같은 것이었다. 올해(2022) 겨울 방학 땐 동해선을 타보고 싶어 했다. 동해선은 부산의 부전역에서 울산의 태화강역까지를 잇는 광역철도망이다. 제법 오래 공사를 한 뒤, 일광까지 부분 개통됐다가, 2021년 겨울에 태화강역까지 개통됐다. 일주일에 두어 번, 미팅과 업무 때문에 울산에 갈 땐 주로 시외버스를 이용했었다. 50분이면 울산의 교통 요충지인 공업탑까지 도착하는 것은 좋았는데 자동차 특유의 불규칙한 흔들림과 어두운 조명 때문에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한 시간 동안 갇힌 공간에 있으면서 매일 보는 풍경을 멍 때리며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기차는 흔들려도 고유의 리듬이 있고 소음에도 일정한 박자가 있다. 그 리듬과 박자에 익숙해지면 책을 읽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게다가 조명까지 엄청나게 밝으니 독서의 환경만 봤을 땐 시외버스 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울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사무실까지 시내버스로는 10분 정도 더 걸리기에 시간상으로 약간 손해지만 백에서 이백 페이지 정도의 책은 출퇴근길에 읽을 수 있다는 장점에 비하면 그 정도 시간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가는 도중 월내역이 보인다. 그 풍경이 제법 볼만한다. 물론 처음 지날 때는.


이 이야기를 딸에게 했더니 자기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은채도 기차나 전동열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네 살 때였나, 은채가 지하철이나 도시철도가 아닌 기차를 타보고 싶어 해서 일부러 부산의 부전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매화로 유명한 원동역까지 간 적이 있다. 그때도 엄마가 바빠서 아빠랑 둘이었다. 그 뒤에는 부산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낙동강을 건너며 강을 구경하기도 했고, 부산-김해 경전철을 타고 역시 낙동강과 김해공항을 구경하고 김해박물관까지 둘러보고 온 적이 있다.


동해선을 타고 월내역에 가기로 했다.

점심은 간단하게 집에서 먹고 열두 시 40분 차를 타기로 했다. 내 생각으론 그 시간엔 객차가 텅 비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주로 타는 8시 53분 차도 비교적 한산한 편이니까 말이다. 열차를 기다리며 딸에게 그랬다.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걸.". 그러나 웬걸 전 객차가 만차였다. 출퇴근 시간 정도는 아니지만 앞 객차의 연결 통로가 안 보일 정도는 됐다.

"어, 아빠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 별로 없는데. 왜 이렇지?"

"그건 아빠가 출근 시간보다 늦고, 놀러 가기엔 이른 시간에 타서 그런 거 아닐까?"

딸의 예리한 분석에 맞장구를 쳤다. 퇴근시간에 탈 때도 일곱 시 넘어서이니 보통은 다들 퇴근한 뒤일 테니 말이다.


출발하기 며칠 전, 월내역 주변의 카페를 검색해 봤다. 거기까지 갔는데 작은 어항과 등대만 보고 오기엔 좀 그래서 말이다. 찾아보니, <인터스텔라>에 나온 비행선 비스름하게 생긴, 경치 맛 집이라는 <웨이브 온 커피>라는 카페도 있었고, 부두 바로 앞에는 <월내 커피>도 있었다. 딸의 성향 상 바다나 보며 멍 때리는 건 취향에 안 맞을 것 같아서 건물도 화려하고 경치도 좋지만, 그게 다인 <웨이브 온 커피>는 뺐다. <월내 커피>는 영업시간이 두 시까지여서 역시 뺐다. 결국 찾은 것이 <아트카페_잉크>였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카페인 데다가 안에 인테리어가 딸 취향이다 싶었다.


문제는 딸이 좀 꼼꼼하게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라 그림 그리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난 책을 챙겼다. 스탠리 피시의 <문장의 일>.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와 케이크를 주문하니 사장님이 "그림 두 장을 고르셔서 그리시면 돼요." 한다. 두 장이라. 엄밀히 말하면 그리는 게 아니라 색칠하는 것이다. 엽서에 밑그림이 인쇄되어 있다. 주문을 하고 딸에게 천천히 고르라고 하고 난 자리를 잡았다. 딸이 골라온 두 종류의 그림을 골라왔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색연필 필통이 있었는데 딸은 두리번거리더니 마카펜 통을 용케도 찾아왔다.

마침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딸이 그림을 붙잡고 있는 내내 우리뿐이었다. 벨이 울려 가보니 트레이 하나에 물감 팔레트와 물, 붓 두 개가, 다른 트레이엔 우리가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가 있었다. 미술학원 몇 년을 다 따님은 이 도구들을 능숙히 사용하여 색칠을 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덕분에 아빠는 제 몫으로 주문한 치즈 케이크와 함께 딸이 남긴 브라우니까지 먹어야만 했다. 색칠을 시작하기 전, 은채는 아빠를 슬쩍 봤다. 이거 시간 오래 걸리는데 괜찮겠냐는 질문의 시선이었다. "아, 걱정 마 딸, 아빠 책 가져왔어. 천천히 그리셔."하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딸은 안심하고 천천히 공들여 색칠을 시작했다.


코를 대고 창밖을

동해선을 타면 십 대 시절 타던, 의정부와 인천/수원을 오가던 국철 1호선이 생각난다. 특히 내부의 넓이와 공간은 더 그렇다. 처음 탈 때만 창밖을 대충 보고 이후론 책만 읽다가, 딸과 함께 가면서 밖을 자세히, 유심히 봤다. 딸이 창에 코를 대고 보고 있으니 나도 같이 본 것이다. 보다 보니 부산 쪽 노선은 정말 절묘하게 상업시설과 공공시설에 엮어져 가는구나 싶었다. 철로를 따라서 기장 군청, 기장경찰서, 기장체육관, 동남권 원자력 병원, BNK연수원은 물론이고, 송정 해수욕장, 일광해수욕장, 롯데월드와 롯데아웃렛, 이케아 등은 거의 붙어 있다. 좌천역에선 신세계 아웃렛이 보이고, 의외로 임랑 해수욕장도 가까운 편이다.


그렇게 꽉 찬 동해선을 타고 가다 불쑥 깨달음이 와서, "은채야, 겨울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여름엔 엄청나겠다."하고 말했다. 실제로 아내의 직장 부하직원 친구가 <이케아>에서 일하는데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제발 넌 오지 말라고 했단다.


갈 때는 살짝 시간이 빠듯해서 좀 빨리 걷고, 올 때는 내가 주말 시간표를 보고 기차 시간을 착각해서 역까지 살짝 뛰었는데 그게 또 재미있었나 보다. 월내역을 향해 뛸 때는 무지하게 깔깔 댔는데, 도대체 이게 왜,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소녀는 미스터리다. 오는 기차 안, 딸은 또 창밖을 유심히 봤다. "또 봐?" 했더니, "응 언제 또 볼지 모르니까." 그러면서 눈도 안 뗀다.

"아빠, 일주일에 한 번은 이거 타고 싶다."

"아 그래?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은 타는데.."

"부러움..." 결국, 다음에는 태화강역까지 가서 수소 버스도 타보고 장생포도 한번 가보자고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렇게 센텀시티에 도착해서 엄마가 픽업하러 올 때까지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었다. 난 그 서점에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가 있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야 했지만, 딸은 그냥 놀러 간 거였다. 딸은 목적 없이 서가를 거닐다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영문본이었다. 오디오 북도 같이 있는 것이었다. 난 대번에 "아빠는 반댈세. 한글판으로 먼저 읽고 읽으면 눈에 좀 들어와도. 글쎄."하고 의견을 말했다. 결국 딸은 국문판을 찾아 나섰고, 내가 완역본임을 확인해 줬다. 그렇게 딸은 계획에도 없던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샀다.


중고서점 사이트의 책 소개 문구가 재미있었다.

‘누구나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책.’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도 그래서 읽은 책 있어. 사람들이 다 읽었다고 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 특히 끝까지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책이 궁금해서."

"그게 뭔데?"

"예를 들면... 모비딕"

"무슨 얘기야."

"미친 남자들이 고래 잡는 얘기야."

"재미있어?"

"당연히 재미없지. 고래 잡다 다 죽는 얘기가 뭔 재미가 있겠냐? 그냥 미국의 영문학과 학생 중에서도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 책이라고 해서 읽어본 거야."


집에 와서 저녁 먹으면서 아내와 그런 책 이야기를 했다. 어린 왕자,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카뮈의 이방인, 카프카의 심판과 변신, 해저 2만 리,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등을 예로 들었다. 어떤 책은 축약본이나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걸 읽고 나서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이고, 어떤 책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이거나, 어떤 책은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얘기해서 내용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읽은 느낌이 드는 책들이다.


대화 중에 딸이 물었다.

"이런 책 다 읽어 봐야 돼?"

"아니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나중에 필요하거나 궁금하면 읽어봐.

뭐 숙제하듯 읽을 필요 없어. 사는 데 크게 도움 되지도 않고."

그렇게 긴 하루가 끝났다. 딸은 실신하듯 잠들었다.


딸의 취향을 존중한다.

딸이 열 살이 넘어가면서 딸의 취향에 맞춰주곤 한다. 특히 카페나 디저트, 문화나 예술 같은 경험은 특히 그렇다. 난 부산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지만 바다 전망의 카페에서 차를 마신 건 손에 꼽는다. 그나마도 다 딸과 함께, 최근 몇 년에 몰려 있다. 송정의 그 유명한 <잼스톤>도, 달맞이고개에 있어서 해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콜라보>도 딸 때문에 갔고, 그런 곳에서 한 시간을 훌쩍 넘겨 있어 봤다.


“시뷰”, “숲 뷰” 운운하며 호텔과 숙박시설의 풍경을 따져가며 호텔을 고르기 시작한 것도 딸 때문이었다. 호텔 로비의 인테리어를 따지는 것도, 주변의 멋진 건물을 따져보기 시작한 것도 딸 때문이었다. 미술관도 그림을 배우고 좋아하는 딸 때문에 가게 됐고 공연도 그렇다. 물론 딸도 내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난 유튜브로 아주 작게 재즈를 틀어 놓고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데 어느 날 딸이 그 링크를 자기에게 보내달라고 보내줬더니 자기도 그렇게 들릴 듯 말 듯한 음악 속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딸도 나를 닮아 면을 좋아하고 채소를 좋아하고 슴슴한 음식을 좋아한다. 식재료와 음식의 국적도 가리지 않는다.


이날, 카페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딸은 아주 가끔 진한 핫초코를 홀짝이면서 인어공주가 주인공인 그림과 거북이가 주인공인 그림을 정성스럽게 색칠했다. 수채화 물감과 색연필, 마카펜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극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바닷속 풍경을 표현했다. 난 말없이 책을 읽었다. 딸에게 소중한 것이 내게 소중하지 않더라도 딸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라면 딸이 그 경험을 하는 동안 내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현명하다.

아빠는 책만 있다면 몇 시간은 괜찮다는 걸 알고 있는 딸은 아빠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 순간 이미 마음이 편해졌다. 그 편해진 마음으로 채색의 전략을 세우고 그에 맞는 다양한 미술 도구들을 카페 여기저기서 그러모았다. 그 후 아빠 눈치 안 보고, 당연히 시계도 안 보고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난 오래간만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교차하는 각자의 시간

딸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시간과 각자의 시간이 교차한다. 딸이 어릴 땐 모든 걸 함께했다. 여행도, 물놀이도, 식사도, 공부도, 서점에 책을 고르고, 쇼핑을 하는 것도 온 가족이 함께했다. 어린 딸은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보내는 법을 몰랐고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부모와 공유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친구가 생기고, 취향이 생기고 취미와 특기가 생기면서 딸은 시간을 홀로 보내는 법을 익혀나갔다. 그건 필연적이었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아빠가 일을 하는 동안 딸은 그림을 그렸고 동영상을 보며 방송 댄스를 예습했다. 좀 시끄러워도 될 것 같으면 바이올린 연습을 하기도 했다. 줌 수업을 통해 화상통화가 익숙해지자 단짝 친구인 지유와 화상통화를 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딸은 어린이에서 소녀가 돼가는 것 같다. 신체의 변화가 오기 전에 시간과 공간, 취향이 독립적인 고유한 존재로 발돋움하는 것 같다.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아빠는 여러 사정으로 아주 늦은 나이에 찾고 얻은 개인의 영역을 딸은 벌써 찾고 얻어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에스파의 그 유명한 춤을 보여주면서 춤과 노래의 장점을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는 딸을 볼 때마다, 이미 딸은 나와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내 상식과 경험이 가 닿을 수 없는 신세계로 나아가는 신인류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