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사랑, 두 개의 추억, 레이먼드 카버와 밀면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12

by 최영훈

딸의 남친

1월 하순에 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한 소년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다. 딸의 썸남이다. 이름은 주현. 키도 크고 덩치도 있다. 통통하진 않은데 귀엽다. 아주 상투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면 유복한 가정의 장남 스타일이다. 교육열이 남다른 집안인지 시내버스로 몇 정거장을 거쳐 학교에 온다고 한다.


지난 학기, 딸이 먼저 사귀자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러자, 녀석은 엄마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했단다. 그 후 겨울방학이 바로 시작돼서 흐지부지 되나 싶었는데, 그 뒤로 어떻게 진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개학하고, 자리 추첨할 때 가위바위보만 했다 하면 지는 딸이 필사적으로 이겨서 썸남 옆에 앉는 데 성공했다고, 프로필 사진을 바꾸기 며칠 전 자랑했다. 이 정도면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하는 건지...


썸남은 휴대폰이 없어서 방학 동안 서로 연락을 못했다. 개학하고, 그걸 답답해하던 딸이 "너 네 엄마 번호라도 줘봐." 했더니, 녀석이 번호를 주더란다. 그러고 나서 "우리 엄마랑 통화해 볼래?" 해서 썸남이 딸 전화로 전화해서 먼저 운을 뗀 뒤 딸이 넘겨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딸이 아주 당돌하게 말을 이어갔던 모양이다. 대략 딸이 어제 전한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전 은채라고 해요. 제가요 주현이한테 먼저 고백했는데 거절했어요. 주현이, 아주 나빠요. 그렇죠?"


그러면서 무슨 시어머니랑 같이 남편 흉보는 싹싹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한 모양이다. 썸남의 어머니는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른가 싶었으나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했던 여자의 역사도 저 무렵부터였지 싶다. 3학년이나 4학년. 그러고 보면 세상이 뭐 엄청 변한 거 같아도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긴 가 싶기도 하다.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던 날, 아침, 오미크론 때문에 그러니 할머니 오실 때까지 학교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건만 썸남이랑 놀겠다고 학교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가서 저녁때 나한테 혼났다. 뭐 노인네 잔소리쯤이야. 이런 마인드 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는 반찬이랑 감전동(처가)에서 가져온 반찬을 안주삼아 저녁 대신 맥주를 마시다가 불쑥 딸에게 물었다.

"아버지 뭐 하시냐?"

"아빠, 그런 걸 왜 물어? 진짜."

"야, 아빠가 장담하는데 저쪽 집에서도 지금 그걸 캐물을 걸?

반장인 데다가 어른하고 당돌하게 통화를 하고 자기 아들 좋아하는 여자애 부모님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나라도 궁금하겠다. 어찌 됐든 그쪽 집도 오늘 저녁엔 네 덕분에 재미있겠다. "

이 날 저녁, 썸남이 마이쭈를 사줬다고 좋다고 자랑했다. 이거 눈치가 없는 건지... 뻔뻔한 건지.


옛사랑 이야기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아직 여름은 아니지만 밀면이 본격적으로 맛있을 6월 초순,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기온이 25도만 넘어가면 밀면 타령을 하는 딸 때문에 아내와 함께 동네 밀면 맛 집에 갔다. 딸처럼, 밀면으로 여름을 당겨 맞는 동네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섰다. 잠시 기다려 자리를 얻어 앉았다. 난 물 밀면을 시키고 두 여자는 비빔 밀면을 시켰다.

"만두는?" 딸이 물었다.

"배부를걸..." 평소 적게 먹는 나와 아내가 걱정을 했다.


그렇게 밀면만 시키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노신사가 딸에게 말을 걸었다.

"몇 학년이고."

"4학년이요."

"아이고 착하다. 엄마 아빠 모시고 밥도 먹으러 오고. 시키지 않아도 냅킨에 젓가락도 딱딱 놓아주고. 애 교육을 잘 시키셨네."

우리는 같이 웃었다. 잠시 후 노신사가 손을 들어 점원을 불러, 우리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하셨다.

"여기, 만두 하나 갖다 주소."

"아니. 안 그러셔도 돼요." 아내는 적당히 말렸다.

"아니. 이 딸이 예뻐서 그래. 맛있게 먹어라."

"네, 감사합니다."딸이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만두를 기다리는 동안 노신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서울 사람인데 부산 여자를 소개로 만났어. 만나자마자 남포동 어디로 밥을 먹으러 가재. 내가 뭘 아나. 뒤만 쫄래쫄래 따라갔지. 식당에 앉았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젓가락을 딱 정갈하게 놔주는 거야. 그래서 그때 결심했지. 야, 이렇게 교양 있는 여자라면 내가 평생 같이 살아도 되겠다고 말이야. 결혼 한지 벌써 46년 됐어."


만두가 나왔다. 앞 접시를 가져와 노신사에게 두 개를 담아드렸다. 하나만 가져가겠다고 하셔서 다시 하나를 덜었다. 그렇게 노신사는 남은 밀면과 만두를 다 먹은 뒤 일어나 가셨다.


"난 애가 예의 발라서, 그게 기특해서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은채의 모습에서 예전 추억이 떠오르셨나 보네."

내가 말했다. 잠시 밀면에 몰두했다.

아내가 만두를 먹다 불쑥 말했다.

"사모님이 돌아가셨나 보다."

"응? 왜?"

"아니 주말 낮인데, 옷차림을 보니까 일하다 오신 건 아닌 것 같고 집에서 오신 거 같은데.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어."

"어, 야~그럼 이야기가 감동이네. 이게 이야기지. 야~ 당신은 병원에 있기 아까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엊그제 심사 갔을 때 젊은 애들이 스토리텔링 어쩌고 하는데 이야기의 본질을 모르더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뭐 어차피 떨어질 것 같아서 입을 닫았는데. 야~ 그런데 이거 진짜면 레이먼드 카버 소설 같아."

"그게 누군데 아빠?"

"아, 아빠가 좋아하는 단편 소설가인데, 그냥 담담히 일상을 그려. 별 다른 사건도 없어. 그런데 읽고 나면..... 하루 이틀 지나서 곱씹어 보면 쓸쓸해. 슬퍼. 한두 달 지나서 생각해 보면 더 그래. 오늘 우리가 겪은 이야기가 딱 레이먼드 카버 스타일의 이야기야"


오랜 시간이 지나면

6월의 어느 토요일, 점심 나절의 밀면집에서 레이먼드 카버 스타일의 이야기를 불쑥 만났다.

우리 모두에겐 그렇게 오래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오늘, 딸과 주현이의 만남도 아주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렇게 불쑥,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추억이 되어 소환될 것이다. 최근에 나도 그런 일을 겪었다. 5월 초의 일이었다. 아내는 오래 산 집의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은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는 것으로 이어졌고 병원 직원들의 추천을 받아 몇 개의 회사가 선정(?)됐다.


그중 한 회사가 치수를 재러 왔다. 아내가 이리저리 알아보고 주변에 이미 했던 사람들에게 업체를 소개받았던 터라 내가 왈가왈부할 여지는 없었다. 다만 오래된 빌라여도 내가 산 곳 중 가장 좋고 아늑한 집이니 인테리어의 필요를 못 느낄 뿐이다.


전날 저녁 무렵, 업자들이 온다는 말을 들은 아이가 들떴었다. 당일, 사람들이 오가며 치수를 재고 수시로 "사모님"하며 불러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딸도 엄마의 꽁무니에 붙어 다니며 함께 들었다. 집을 모던하게 하고 깔끔하게 한다고 사람이 살기 좋은 것이 아니다. 혼자 산다면 몰라도 타인하고 부대끼며 산다면 마음이 편해야 좋은 집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 속에, 치수를 재는 사람들을 보고, 아내가 그들과 인테리어를 고민하는 동안, 불경스럽게도 옛사랑,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래전 얘기지만, 과거 서예 동아리 활동을 하던 국문과 여자를 사귄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언젠가, 그 친구의 선배 동아리 커플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 커플이 결혼을 조촐하게 한 후, 사과 궤짝 같은 걸로 적당히 세간을 만들어 살림집을 차린 후, 동네 애들한테 서예를 가르치며 신혼살림을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그 후 몇 달 후였나.... 그녀는 집에서 하도 날 반대하니 자기랑 도망가자며, "내가 먹여 살릴 테니 내가 졸업할 때까지만 기다려줘." 하며 한 카페에서 퉁퉁 부은 눈으로 날 똑바로 보며 말했었다. 늦게 대학에 들어간 나와 달리 그녀는 벌써 4학년이었으니 빈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벌써 3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저때만 해도 저런 멘트는 보통 남자가 했었는데, 여자한테 저런 말을 들었던 걸 보면 그 친구가 참 시대를 앞서 갔거나 무모했고, 그렇게 앞서가고 무모할 만큼 날 사랑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 친구랑 살았다면, 또는 그 이후에 만났던 무난했던 여인 중 누군가와 살았다면 이런 부산 같은 대도시의 삶과는 무관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의 소망대로 작은 동네에서 서점이나 꽃집을 하거나 팔리지도 않은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남아 있는 나날

이 날 아침, 은채가 아침을 먹는 동안 함께 <뜻밖의 여정>재방송을 잠시 봤다. 거기 이런 말이 나온다. 윤여정 선생님 친구가 아카데미 수상 후 바빠진 선생님에게 "아유 제가, 십 년 전에만 탔어도 날아다녔을 텐데..."하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선생님은 날아다니신다. 오늘 다가온 축복을 만끽하시는 게 보였다.


그렇게 부산한 오후가 지나갔다. 애가 좋아하니 나도 좋을 뿐이다. 애가 평안하면 나도 평안하다. 요즘 브런치 작가 Freegarden님의 글을 종종 읽는다.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의 작가 신민경 님이다. 그녀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그녀의 프로필만 읽어도 그렇다. 결국 우린 이 순간, 이 하루, 이 허락된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죽음은 늘 우리 지척에 있기에"


그렇게, 그날 저녁, 낯선 손님을 보내고 처음으로 에어 프라이어로 만들어 본 돈가스에 아내가 사 온, 1/3쯤 남은 스페인산 레드 와인을 곁들여 마신 후, 아이가 숙제를 하는 동안 그 앞에 마주 앉아 이정우 교수님의 책을 읽고 두 여자가 잠든 열 시, 그 후 서평을 쓴 후, 두 시간 후 잠을 청했다. 그렇게 누웠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기도로 시작한다는 울산의 동종업계의 대표의 말이 생각났다. 아주 오랜만에 누워서 감사 기도를 했다. "하루치의 평안, 하루치의 감사, 하루치의 행복을 오늘 다 받았습니다. 이제 잡니다."

기억의 호출

살아 있어서 이야기가 들어오고, 살아가면서 이야기는 잠시 기억 밖으로 나갔다가 살아 있는 어느 순간 그렇게 예고 없이 다시 기억으로 되돌아온다. 아니, 그 기억이 밖에 나갔을 리는 없을 터, 잃어버린 물건이 우연히 꺼낸 여행용 캐리어에서 나오듯 기억 또한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잠자코 있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필요치 않으면 좀처럼 앞으로 나서는 법이 없는 것들이어서 그 스스로도 자신이 소중한 기억인지 알지 못한 채 거기 그렇게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불쑥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누군가 침실에 불을 확 켜는 것처럼 그 기억에 호출의 빛이 쏟아질 것이다. “야, 너 지금, 추억으로 소환됐어. 빨리 일어나.” 그렇게 몸에 쌓인 먼지를 툴툴 털고, 기억의 매무새를 점검해 본다. 빛이 바랬을 뿐, 제법 선명하다. 어떤 부분은 어제 일인 것처럼 그 색이며 선이 그대로다.


그렇게 한 노인의 추억이, 아빠의 추억이 잠시 소환됐었다. 이제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딸은 그것이 추억이 될 줄 알지 못할 것이다. 어떤 기억이 추억이 될지 우리 또한 알지 못하기에, 그렇기에 이 순간, 이 사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을 만끽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딸은 이제 그 녀석과 커플이 됐다. 몇 개월 됐다. 스마트 폰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종종 멍을 때려서 내려야 될 정거장을 지나쳐 내린다는 녀석이 맘에 든다. 학교 후문에서 딸을 기다리는 날 어려워하지 않고 딸과 함께 걸어와서 넙죽 고개 숙여 인사하며 큰 소리로 인사말을 하는 녀석이 맘에 든다. 형과 함께, 이 더운 여름날에도 축구를 하러 나가는 녀석이 맘에 든다. 아, 참고로 아버지는 회계사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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