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을 수 없는 칭찬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39

by 최영훈

딸이 받은 극찬

며칠 째, 울산광역시 시의원들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어제도 다섯 명의 시의원을 인터뷰하고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아내가 딸에게 오늘 들은 칭찬을 아빠한테 얘기해 주라고 부추겼다. 방학을 하자마자 시작된 남구지역 인문 영재 집중 교육 기간에 들어간 딸이 그 선생님한테 들은 칭찬이다.


내용은 이랬다.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문현초등학교와 그 주변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모티브 삼아 주제를 정해 짧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과제였다. 주어진 시간은 수업이 진행되는 네 시간. 딸은 재개발 지역인 그 지역의 한 낡은 집을 사진에 담았고, 모성애를 주제 삼아 글을 썼다. 그렇게 그저께 쓴 글을 어제 발표를 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맘에 드는 글에 스티커를 붙였고 그렇게 뽑힌 다섯 편 중에 딸의 것도 있었다.


그 다섯 명이 동료 학우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발표했다. 딸은 마지막 순서였다. 딸의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이 잠시 침묵하셨다고 한다. 딸은 자기가 뭘 잘못했나 해서 잠시 주춤거렸는데... 그때 선생님이...


"얘들아, 우리 오늘 은채한테 미리 사인을 좀 받아놔야겠다. 나중에 진짜 유명한 작가가 될지도 몰라. 야, 선생님부터 먼저 싸인 좀 해줘라."하고 칭찬하셨단다. 엄하고 칭찬에 인색하신 글쓰기 선생님한테 받은 칭찬이라고 딸은 더 좋아했다.


잊을 수 없는 칭찬

잊을 수 없는 칭찬이 있다. 살고 싶지 않을 때, 일을 접고 싶을 때, 지치고 상한 마음을 끝내 일으켜 세워주는 칭찬이 있다. 난 그런 칭찬을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받았다. 영어를 가르치셨던 이봉우 선생님이 해주신 칭찬이다.


학기 초, 미화 부장이 뒤의 게시판을 꾸며야 하니 글을 하나 써달라고 했다. 1학년 때부터 책 좀 끼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던 터라 그런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나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원고지에 시를 썼다. 열 장이 넘었지 아마?


영어 시간, 아이들에게 뭔가를 시키시고 선생님은 게시판을 살펴보셨다. 그러다 내 시를 넘겨 읽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때 맨 뒤에 앉았으니까. 그렇게 다 읽으신 선생님이 "야, 최영훈이 누구냐?"하고 물으셨다. 내가 손을 들자 다가오셨다. "너, 꿈이 뭐냐?", "전, 초등학교 선생님이 꿈입니다.", "야, 네 세계를 애들이 이해나 할 수 있겠냐? 선생이 되고 싶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돼라."하고 말씀하셨다. 난 아직도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울컥 한다. 선생님의 당부와 바람대로 살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든다.


어제 딸이 받은 칭찬도, 어쩌면 평생 딸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될지 모른다. 소설이나 시는커녕,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지라도 자기 자신이 싫어지거나 의지가 꺾이거나 할 때마다 다시 힘을 불어넣어 주는 기억이 될지 모른다. 선생님은 원래 그런 존재였고, 지금도 그런 존재며 앞으로도 그런 존재여야 한다.


이하의 글은 딸이 쓴 글을 나에 윤문 없이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제목 : 밥은 먹었냐?

지은이 : 최은채


나, 임다경, 32살이고, 서울의 한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나의 어머니는 시골의 어느 노후된 집에서 사시는데,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혼자가 되신 후에도 외롭거나 힘든 체 하나 안 하시고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의 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이틀 전, 어머니께서 쓰러지셨고 부산의 병원에 있으시다가 서울로 옮겼다고 한다. 그렇게 암 판정을 받고 몇 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도 내가 밥은 먹었는지, 힘들진 않은지 늘 나를 걱정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위급하셔서 나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허겁지겁 병실에 도착한 그 순간, 어머니는 나를 보고 싱긋 웃으셨다. 나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의 심박수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진짜 생을 마감하게 될 마지막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 죽어가는 삐쩍 곯은 몸과 작은 목소리로 "밥은 먹었냐?"라고 나에게 물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1분 후 하늘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셨다. 나는 그 후로 한동안 우울증과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다음 날부터 매일 밤 꿈에 나왔다. 병실에 누워서 다 죽어갈 때까지도 밥은 먹었냐며 나를 걱정하던 얼굴과 작은 목소리들... 어머니가 하늘에선 꼭 아버지와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는 게 불효녀가 돌아가신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효도다.


길면 몇십 년, 짧으면 몇 년 후에 나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뵐 수 있겠지? 곧 만나요. 엄마!


맥주를 마시며, 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딸에게 그랬다. "야, 엄마한테 만 원 드려.", "응? 왜?", "잘 만들었으니까. 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072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