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통이 없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18

by 최영훈

내 평영 어때?

마무리 운동을 위해 소형 풀에서 왼손 자유형을 주로 한다. 풀의 길이가 짧아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롤링을 하며 무호흡으로 끝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왼손만 주로 하는 건 아무래도 오른손잡이이다 보니 양손의 힘의 균형이 같지 않아 왼손의 스트로크 파워를 더 키우기 위해서다.


이 날도 왼손 자유형을 몇 번 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평소 수영을 주제로 몇 마디 나누곤 했던 누님이 들어오셨다. 우리 옆 레인인 기초반에 있다가 이번 달부터 중년의 아줌마들과 기초반에서 막 올라온 회원들이 중심이 된 중급 B반으로 가셨다.


“최 선생, 나 평영 좀 봐줘. 평영이 도저히 안 나가. 접영은 어떻게 되는데 평영이 앞으로 안 나가. 저 반에서 평영만 한다고 그러면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니까.”

“아, 그러세요? 어디, 한 번 해보세요.”


난 누님의 평영 폼을 보기 위해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사인을 하자 누님은 부드럽게 평영을 하기 시작했다. 중급 B 반 수준의 평영임을 감안하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템포가 좀 느리고 입수 동작이 좀 얌전했으며 입수 후 가슴을 눌러주며 팔을 벌려주는 동작이 좀 부드러워서 그렇지 전반적으론 괜찮아 보였다. 또 그렇게 앞으로 못 나가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 괜찮은데요. 뭐, 워낙에 부드럽고 유연하시고. 우리 반 남자들처럼 팍 올라왔다 팍 꽂히는 맛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앞으로 가시던데.”

“그래? 근데 너무 안 나가는 것 같지 않아?”

“그렇긴 한데... 너무 얌전하게 하셔서 그런가. 한 번 더 해보실래요?”


문제를 발견하다.

이번엔 뒤와 위에서 봤다. 여전히 얌전했다. 그러다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 킥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거였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듯이 평영의 킥은 좀 특이하다. 자유형과 배영의 킥은 다리를 모은 상태에서 무릎과 골반의 앞뒤 가동 범위를 이용해서 찬다. 자유형은 수면을 향해 엎드린 상태에서 발등이 수영장 바닥을 향한 상태에서 킥, 배영은 그 반대로 누운 상태에서 물을 수면 위로 부드럽게 걷어 차 올린다는 느낌으로 킥을 하고. 접영의 킥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부드러운 물결을 만들면서 킥을 한다. 물론 초보자는 허벅지 밑으로만 열심히 킥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몸통을 쓸 줄 알게 된다.


그런데 평영은 개구리처럼 차야 한다. 무릎을 엉덩이 쪽으로 접은 후- 이때, 발끝이 몸 밖을 향하도록 한다. - 밖에서 안으로 휘돌려 찬 후 다시 다리를 곱게 일자로 모아준다. 수영을 안 해봤거나, 아직 평영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손과 팔을 이용해 평영 킥의 감을 잡을 수 있다. 지금 한 번 따라 해 보자. 자, 내 앞에 모기 한 마리가 날아간다. 이때, 우린 박수를 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두 손을 가슴 앞쯤에 올린 후, 약간 공간을 준 상태에서 접고 있다. 이후, 일반적으로 모기를 잡을 때는 두 손을 재빠르게 마주치기 위해 순간적으로 손만 모은다. 그러나 이 모으는 동작을, 앞으로 나란히 동작이 되도록 팔꿈치를 사용하여 팔을 바깥쪽으로 휙 돌려주면서 박수를 쳐 봐라. 아주 비효율적인 손뼉 치기지 않은가? 그런데 이 동작을 물속에서 다리로 하는 것이 가장 비효율적인 평영 킥의 정석이다.


자,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앞에서 말한 모기 잡는 동작을 떠올려보자. 두 손의 운동 거리가 짧거나 손의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야 모기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평영 킥처럼 팔을 휘두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물속에선 최대한 많은 물을 그러모아 뒤로 차야 한다. 그런데 이 동작이 느리게 되면 물은 물대로 빠져나가고 하체는 하체대로 밑으로 가라앉는다. 결국 느린 킥으론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 아무리 힘없는 평영 킥이라고 해도 말이다.


수영을 하는 동안 아픈 적이 없는 사람

“아니, 누님. 킥을 무슨, 세월아 내 월아 차시면 어쩝니까?”

“호호호, 그렇지?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 곱게 나이 드신 누님이 눈웃음을 치면 웃으셨다. 누님이 나랑 띠 동갑이라 하셨으니 환갑이 넘으셨다. 그때, 서로의 나이를 얘기할 때, 내가 농담으로 그랬다. “아니, 난 또 나랑 나이 비슷한 줄 알고 말 놓을 뻔했네.”, “하이고, 최 선생도 참.”


해맑은 웃음에 기막혀하며 말을 이어갔다.

“하하, 아니 누님이 그렇게 느끼셨으면 고치셔야죠.”

“최 선생, 이 킥을 빨리 차야 돼?”

“아, 당연하죠. 누님. 싸다구를 때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거 뭐 천천히 휘두르면 아픈가요? 마, 그냥, 콱, 마, 다부지게 쌔려야죠.”

“그렇지. 그렇지.”

“아, 물론 호텔 수영장에서 하실 땐, 우아하게 이렇게 하셔도 돼요.”

“호호호.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여기선 이러시면 안 되죠. 그럼 운동이 되나요. 아니 앞에 사람도 죽어라 가고 있고, 뒤에서도 죽자고 쫓아오잖아요. 오늘 우리 반 보세요. 앞에 사람이 스타트(고급반은 매주 금요일, 스타트 연습을 한다.)해서 한번 스트로크 올라오는 거 보고 출발하잖아요. 그런데 앞에 사람이 자기 힘들다고 피치를 떨어뜨리면 서로의 거리가 확 좁혀지게 되고, 그러면 서로 민폐니까 팍팍하잖아요. 진짜로, 평영 많이 하는 날은 허벅지 안쪽이란 사타구니 같은 데가 뻐근하고 아플 정도라니까요.”

“응? 거기가 아프다고. 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는데.”

“당연하죠. 그렇게 느긋하게 차는데 아플 리가 있나요.”


“호호호. 아니 다른 사람은 접영 하면 어깨도 아프고 한다던데 난 아픈 데가 없더라.”

“하하하. 여자분들은 유연하니까 중급반 때까진 사실 접영 몇 번 했다고 아프면 안 되죠. 그건 힘이 너무 없는 거고.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하는데 무슨...”

“호호호. 그렇지. 그렇지.”


그때, 누님과 친한, 같이 기초반에 있었으나 아직 기초반에 남아 있는 두 여성분이 평영을 연습하며 우리 쪽으로 왔다. 난 누님과 서서 두 사람의 킥을 봤다. 두 분이 도착했을 때 한마디 했다.

“아니, 두 분도 느긋하시네.”, 두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누님을 번갈아 봤다. 누님이 웃으며 말했다. “호호, 아니, 최 선생이 내 평영을 보고 세월아 내 월아 킥을 차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데 자기들도 그렇대.”, 이번에 세 여자가 웃었다. 평영을 하는 날에도 허벅지 안쪽이 전혀 아프지 않은 세 여자가 말이다. 다시 말해줬다.


“평영 킥은 상황에 따라 느리게도 빠르게도 찰 수 있는데, 빨리, 멀리 가고 싶으면 힘껏, 빠르게 차셔야 돼요. 킥 자세야, 뭐 하면서 계속 조금씩 고쳐나가는 거니까. 일단 다리 근력을 위해서라도 팍팍 차세요. 팍팍.”, 세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야 할 곳은 아파야 한다.

그러다 수영을 하면 아파야 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누님, 자유형 할 때 아프거나 뻐근한 데 있으세요?”, “아니.”, “원래라면 팔 뒤쪽 근육 있죠.”하고 말하며 통상적으로 우리가 삼두근이라 부르는 팔 뒤쪽을 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자유형을 제대로 하면 사실 거기가 약간 뻐근해야 돼요. 그 흔들리는 살이 빠지고 근육이 돼야 한다니까요.”, “응? 왜?”,누님, 자유형 물을 한 번 잡아서 뒤로 보내보세요. 팔 어디쯤에서 빼세요?”, 누님은 팔을 뒤로 뻗다가 허리와 엉덩이 사이쯤에서 손을 뺐다. “누님, 그러면 운동도 안 되고 실력도 안 늘어요. 저어기, 허벅지까지 쭉 밀어주세요. 그러면 속도가 더 나요. 물론 그러면 팔 아프죠. 힘도 더 들고. 그런데 그렇게 계속하셔야 실력이 늘어요.”, “호호, 알았어. 최 선생.”


전력을 해야 할 때

뭐, 삶의 모든 순간을 죽을 만큼 힘들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말할 순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난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공부도 그랬다. 십 대 시절 마지막으로 다녔던 학교인 중학교에서는 대충 반에서 십 등에서 십 오등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만큼 공부했다. 당시엔 한 반이 60명일 때고, 경제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개판이었던 가정 상황을 고려하면 그럭저럭 양해가 될 만한 성적이었다. 뒤에 본 검정고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운전면허 시험처럼, 모든 과목이 일정 점수 이상만 되면 통과가 되는 구조이기에 고득점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 후 늦은 나이에 들어간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수석으로 들어갔지만 - 이 사실도 대학 졸업 후 십 년쯤 지나서 강사로 모교에 갔을 때, 당시 교수님과 술을 마시다가 알게 됐다. 내가 좀 이런데 무심한 편이기도 하고, 당시에 우리가 1기였기 때문에 그때 장학금을 어떤 이유에서 받게 됐는지 몰랐다. - 일정 점수 이상만 받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에 소위 4.0 이상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학점 관리에 무심한 편이었다. 듣고 싶은 거 아무거나 들었고. 그래서 실제로 한 한기는 받지 못했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죽자고 따라다니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강렬하게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져본 적도 없다. 물론 매번 사랑을 할 때마다 이 사람이 내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고 마지막 사랑이라는 절박감을 갖고 사랑을 했지만 그 사랑에 인생을 걸지도, 일상을 망가트릴만큼 미치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겠다고 하면 보내줬고, 다시 보자고 하면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건 전력을 다해서 했다. 카피라이터 일을 우연히 시작하게 된 후, 전공을 통해 얻은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했다. 그 뒤 관련 서적을 엄청나게 읽어댔다. 내가 막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튜브가 생기기 전이어서 광고 영상을 보려면 광고 전문 사이트에 들어가서 봐야 했다. 또, 국제광고대회 수상작은 따로 모아놓은 DVD나 CD롬으로 봐야 했고 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엄청 많은 자료를 보고 또 봤다.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그랬다. 게다가 부산이라는 작은 지역에선 경쟁 대행사래봐야 뻔하고, 경쟁하는 카피라이터도 누군지 뻔히 알고 있어서 더 그랬다.


취미도 그랬다. 대학 시절 축구와 농구를 할 때는 거의 매일 축구와 농구를 했다. 서른이 넘어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마라톤을 할 때는 거의 매일 뛰었고, 그 뒤 스포츠 클라이밍을 할 때는 두 세 시간씩 벽에 붙어 있었다. 주말에도 그랬다. 수영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 전 수영을 처음 배웠을 때도 잘하고 싶고 멋지게 하고 싶어서 조금 일찍 가서 연습하고 강습이 끝난 뒤에 남아서 조금 연습하고 갔다. 다시 수영을 시작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시작한, 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대학원 시절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내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 애를 썼고 지금도 애를 쓰고 있다. 글쓰기가 수영만큼 그 실력이 느는 것이 보이면 좋겠다만, 그게 또 그렇지 않으니 수영보다는 글쓰기가 더 내 애를 태우고 있다.


감수해야만 하는 것들

애를 쓰고 힘을 쓰면 아프다. 통증이 있다. 피곤하다.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 덜 중요하고 덜 재미있고 덜 관심 있는 것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밖에 없다. 뭐,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돈을 내고 어떤 걸 배우기로 했으면, 좋아서 하는거면, 잘하고 싶다면, 그러면 시간과 돈과 정력을 써야지.


테니스 의상이 예뻐서 테니스를 시작했지, 테니스를 잘 치고 싶어서 테니스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면, 뭐, 대충 테니스 스커트나 입고 왔다 갔다 하면 된다. 골프 의상이 예뻐서 골프를 시작했기에, 타수를 줄이겠다는 의욕도 없고 여름에 라운딩 하면 덥고 얼굴도 타는 데다가 사진도 예쁘게 안 나오니 봄에만 꽃놀이하듯이 설렁설렁 라운딩 하고, 계모임 가는 마음으로 골프 연습장에 가겠다면, 뭐 대충 고급 브랜드 로고가 크게 써진 골프백이나 들고 왔다 갔다 하면 된다.


그러나 잘하고 싶다면, 다시 말하지만 근육통과 애씀과 정신적/육체적 피곤함을 감수해야 한다. 앞으로 쭉쭉 가고 싶다면 팔을 끝까지 밀어줘야 하고 킥을 부지런히 차야 한다. 어제보다 실력이 나아지고 싶다면 오늘 할 때 느껴지는 고통을 반겨야 한다. 물론 힘들지, 아프지. 그러나 잘하고 싶다면 해야지. 수영이든, 인생이든.

같은 맥락에서 난 침대에서 대충 받아주겠다는 여자를 싫어한다. 그런 자세를 보이면 그만하자고 한다. 실제로 젊은 시절엔 모텔에 들어갔다 그냥 나온 적도 몇 번 있다. 차라리 솔직하게,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말하는 여자가 낫다. 이왕 할 거면 ‘내 오늘 너를 죽이겠다. 걸어서는 이 침대를 못 벗어나게 하겠다.’라는 자세를 갖고 덤비는 여자가 좋다. 우리가 어디 내일을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존재던가? 하고 싶고, 좋아한다면 불 싸질러야지. 싸다구 때리듯이.


숏핀을 새로 샀다. EVA소재가 가볍기는 한데 너무 가벼워서 운동효과도 떨어지고 속도도 안 나서 사이트에서 파는 것 중 가장 무겁다고 소문이 난 것으로,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 색으로 샀다. 허벅지에 근육 좀 붙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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