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닐 때, 목사나 성도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예수님은 비 오는 수요일 저녁에 다시 오신다.”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교회라면 보통 일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예배가 있다. 그 외의 날과 시간엔 기도회나 연령별 모임 성격이 강한 예배다. 토요일에 하는 학생부나 청년부 예배처럼 말이다.
모든 교인이 참석할 수 있는 예배 중, 평일 예배는 앞서 말했듯 수요 저녁 예배인데 이 예배가 가장 출석률이 저조하다. 생각해 봐라. 누가 평일 저녁, 그것도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에 열리는 예배에 참석하길 좋아하겠나. 그런데 이 저녁에 비까지 억수로 내린다면 더 가길 싫지 않겠나?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비 오는 수요일 저녁에 오신다.”
비 오는 날 수영장에 오는 사람
다른 글에도 썼던 것 같은데 수영장에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계절은 1월과 3,4월, 그리고 여름이다. 1월엔 다들 운동 결심을 하지 않나? 다이어트 결심도 하고 말이다. 이 결심이 설을 기점으로 한번 무너진 뒤 다시 마음을 다잡는 시기가 학기 초나 꽃이 필 때다. 이때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으면 여름에 비키니를 입는 건 물 건너가는 거겠지? 또 더운 여름에 할 만한 운동으론 시원한 수영만 한 것이 또 있겠나? 그런 이유로 이 시기들에 다른 때보다 회원들이 더 많다.
앞선 글에도 썼듯이, 실제로 7월 달, 수영장의 회원 등록은 그야말로 만땅-요즘도 이런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다. 새벽반부터 저녁 마지막 반까지 그야말로 꽉 찼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오는 사람들은 저번 달보다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오늘은 좀 사람이 많다 싶은 날은 손으로 꼽는다. 왜 그럴까?
일단 날씨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 아무리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더운 날 집 밖에 나서는 건 귀찮다. 나 같이 수영장까지 십오 분 정도 걸어가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차라리 더운 건 참을 만하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더 나가기 싫어진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오직 수영을 하기 위한 외출
그러나 다른 시간대는 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벽반의 경우엔 좀 일찍 나와서 수영을 하고 씻고 출근하면 된다. 저녁반도 마찬가지다. 저녁에 회식이나 모임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퇴근하는 길에 들러서 수영을 하고 집에 가면 된다. 이런 이유로 아내도 결혼 전 새벽반 수영을 할 때는 아주 성실한 회원이었다.
결국, 나 같이 애매한 시간대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오직 수영을 하기 위해서 집에서, 또는 직장이나 가게와 같은 일터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이 거의 빠지지 않고 수영장에 온다면 그야말로 수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야, 이런 날씨에 나도 미쳤지.’하며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나만큼 미친 인간들이 제법 많아서 놀랐던 적이 있다. 아마 다들 속으로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야, 댁도 어지간하다.’
잘하고 싶은 것엔 시간을 써야 한다.
뭔가 잘하기 위해선 일단 그걸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남보다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물론 천재라면 평범한 사람보다 공부 시간이 훨씬 적어도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더 빨리, 더 많이 학습할 수 있다.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영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어도 실력이 더 빨리 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저 그런 평범한 능력치의 사람이라면, 별 수 없다. 오지 말라는 날 빼고는 다 가야 된다. 주어진 시간 동안 강사가 하라는 대로, 그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얼마 전, 5학년인 딸이 공부를 위해 산 패드에 게임을 깔려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주민번호를 입력하는 절차를 거쳐 게임 사이트에 가입을 해야 했기에 나에게 그 번호를 물었다. 내가 한마디 했다.
“딸, 너 뭐, 서울대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미국에 유학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
“너 그 따위로 공부해서는 서울대는 셋째 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가.”
“아니, 다른 남자 애들은 밤늦게 까지 게임도 하고, PC방도 가는데, 그래도 성적이 괜찮던데...”
사실 딸의 말은 맞다. 딸의 남자 친구인 주현이나 남사친인 지안이와 그 무리들은 집에서 게임도 하고 함께 PC 방도 어울려 다니지만 제법 공부를 잘한다. 주현이 같은 경우는 수학에선 거의 독보적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딸에게 말해줬다.
“딸, 중학교 올라가면 과목이 많아져 줄어들어?”
“많아지지.”
“그럼 공부할 시간이 더 많아야겠지?”
“그렇지.”
“그런데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냐. 남자 애들만 있는 중학교 가서 함께 게임도 하고 PC 방도 같이 다니면 얼마나 재미있겠어. 밤에 안 자고 게임하면서 뭐, 레벨도 올리고 그러면 아주 신나겠지. 그러면 공부는 언제 할까?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써야 되는데 놀 거 다 놀고, 게임할 거 다 하고, 공부는 언제 하냐고.”
딸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몇 개 안 되는 열정의 대상
난 친구도 없고, 무슨 동호회 같은 친목모임도, 동창회나 동문회도 없다. 아, 물론 있겠지만 가입도 안 했고 참석도 안 한다. 일 년 내내 하는 거라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아내와 딸하고 노는 거, 그리고 가끔 처남하고 맥주를 마시는 거 말고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 당연히 관심사 또한 책과 수영, 그리고 맥주뿐이다. 요즘엔 이렇다 할 새로운 맥주가 눈에 안 띄어서 맥주에 대한 열정이 조금 식었을 뿐, 책과 수영에 관한 관심과 열정은 더 커지고 있다.
이런 나 같은 사람도 나이가 들다 보니 체력은 점점 줄어들고 체력을 쓰고 나면 회복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면서 하고 싶은 일의 종류와 범위를 좁혀, 그 밖의 일엔 최소한의 에너지와 시간을 할애한다. 물론, 나 같이 사는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러는데 딱히 장애가 될만한 것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친구도 많고 모임도 많을 것이다. 오라는데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을 것이다. 이런저런 취미도 많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두루 호기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같이 베테랑 몇몇 하고만 호흡을 맞춰 일하는 한가한 지역의 카피라이터가 아니라 회사에 속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회사에 뺏기는 시간도 많은 것이다. 근무 시간 외에도 말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운동을 배우기 위해 헬스를 끊고, 필라테스를 끊어도 한 달에 열 번 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수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좀 냉정한 말일 수 있지만, 살아보니 어느 누구도 내 삶이나 내 선택에 책임을 져 주지 않는다. 운동 시간을 빼먹고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친구는 빠지지 않는 내 뱃살에 관심이 없다. 비가 오니 오늘은 수영 대신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했던 직장 동료는 내 늘지 않는 수영 실력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세계인이 다보는 것 같아 나도 하루 날 잡아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가 내 체력을 높여주지도 않는다. 한 판만 하자고 시작했지만 켠 김에 끝판까지 가보자고 마음먹고 밤새 한 게임이 내 수영의 레벨을 높여주지 않는다.
결국, 하고 싶다면, 그것도 잘하고 싶다면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쪼개어 내 몸을 움직여 이동한 뒤 내 몸과 정신을 괴롭혀하는 수밖에 없다. 운동이든 공부든 뭐든 그래야만 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걸 희생해야만 한다. 놀고 싶은 걸 참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좀 적게 만나고, 게임을 좀 적게 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 잘했던 공부를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와 성인이 되어서도 잘하고 싶다면 노는 시간과 잠을 줄이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수영의 신이 있다면, 아마 폭우가 쏟아지는 오전 열한 시의 수영장에 오지 않을까? 접영이 안 되던 이에게 펠프스의 능력을, 평영이 안 되던 이에게 기타지마와 애덤 피티(이 선수에 대해선 다음 글, 평영에 대해서 쓸 때 다루겠다.)의 축복을, 배영이 안 되는 이에겐 라이언 머피의 은혜를, 자유형이 안 되는 이에겐 우리의 황선우와 박태환의 은총을 주시지 않을까? 아, 어쩌면 그날이 오늘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