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열한 시에 수영하는 남자는 많지 않다. 초급반의 경우엔 두어 명 되는 것 같고 중급반의 경우에도 서너 명,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고급 B반엔 두 명이다. 그래도 우리 반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어서 1번과 2번,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대략 대여섯 명 정도 된다. 꾸준히 나오는 사람의 숫자만 센 것이다.
같은 시간대 남자 회원이 적다 보니 수영을 한지 얼마 안 된 다른 회원들의 폼을 봐줄 기회가 종종 있다. 특히 우리 레인 바로 옆에 있는 초급반의 경우, 운동 시간이 끝나면 종종 우리에게 폼을 봐달라거나 요령을 가르쳐 달라는 경우가 있다.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옆에 있다 보니 어쩐지 가르쳐 줘야 될 묘한 의무감을 느끼곤 해서, 애쓰면서 연습을 하고 있는 초급반 회원을 보면 나도 모르게 팁을 가르쳐 주곤 한다. 아재가 된 걸까? 아니면 갱년기라서 그런가?
앞서 말했듯이 초급반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모른 척하고 있지만 ‘야, 이건 좀 너무한데.’ 싶은 생각이 들면 가볍게 조언을 한다. 그렇게 말로 해도 잘 안 되면 직접 시범을 보인다. 종류도 다양하다. 턴, 평영, 접영, 돌핀킥 등등... 특히 초급반 때는 물속에 몸을 깊이 넣는 걸 두려워하다 보니 턴 동작에서 애를 먹곤 한다. 그때마다 농담처럼 그런다. “더 들어가도 안 죽어요. 여기 1미터 40 밖에 안 돼요. 내가 아는 한 여기 수영장 문 열고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없어요.”, 그럼 피식 웃으며 긴장을 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몸을 깊이 담그진 못하지만.
초급반 B 씨를 괴롭히는 접영
요즘 초급반은 접영을 배우고 있다. 앞선 글에도 썼듯이 접영은 초급반을 좌절시킨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수영 동호인을 좌절시킨다. 그 좌절감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연습용 풀에서 연습하는 초급반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 내 마무리 운동도 미뤄두고 노하우를 가르쳐 주게 된다.
그중 한 명이 B 씨다. 사실 이 사람이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심지어 이름도 모른다. 그저 수영을 잘하기 위해 아주 애를 쓰는 것이 안 되어 보여서 그 수고를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한두 번 조언을 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연습 풀장에서 종종 수영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B 씨의 접영엔 너무 문제가 많았다. 고쳐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물론 초급반이어서 그걸 다 고칠 수는 없고 당장 고칠 수 있는 거 몇 가지만 가르쳐줬다. 킥을 할 때 무릎을 너무 구부려서 하체 전반의 힘을 쓰지 못하는 걸 먼저 교정해 줬다. “이제부터 무릎에 깁스를 했다고 생각하세요. 무릎을 최소한으로 구부리면서 골반을 움직이고, 허벅지와 발목까지 인어공주처럼 쭈욱 이어졌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킥을 해보세요.”하고 말한 뒤 시범을 보여줬다. B 씨는 금방 따라 했다.
굽혀진 팔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B 씨의 팔이 안 펴진다는 것이었다. 지금 접영이나 자유형 동영상을 아무거나 보자. 수영의 팔 동작은 크게 엔트리-글라이딩-캐치-풀-푸시-리커버리로 이어진다. 쉽게 설명하면 물에 손을 넣은 뒤(엔트리) 앞으로 쭉 뻗어(글라이딩) 내 머리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물을 최대한 잡아(캐치), 내 갈비뼈와 배꼽을 향해 쭉 끌어(풀) 온 뒤 그 물을 발 쪽으로 힘차게 밀어(푸시) 낸다. 그렇게 허벅지에서 일을 끝낸 손을 물 밖으로 꺼내 다시 앞으로 보내면(리커버리), 한 손의 한 번의 스트로크가 끝난다.
이때, 리커버리 동작에서 자유형은 팔을 구부려 체력 소모를 최소화한다. 배영은 길게 펴서 머리 뒤로 넘긴다. 평영은 앞으로 펴주고, 접영은 나비 날개처럼 수면을 스치듯이 날개를 편 것처럼 쭉 펴서 꺼낸 뒤 앞을 향해 던져준다. 이때, 이 팔을 구부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구부리면 일단, 보기 안 좋다. 응, 그냥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우아한 접영을 하기 위해선 독수리 날개처럼 팔을 양 옆으로 쭉 펴줘야만 한다. 물론 운동 역학적으로도 팔을 펴는 것이 훨씬 좋다. 던져진 팔의 무게를 따라 머리, 어깨, 견갑골의 순서로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웨이브를 타기 때문이다. 그 후 그 길게 뻗은 팔로 물을 잡아 스트로크를 시작하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 수영의 스트로크의 핵심 중 하나는 내 앞에 있는 물을 잡아 내 뒤로 힘껏 보내며 추진력을 얻는 것이다. 당연히 코앞의 물을 잡으면 뒤로 보낼 물도 적고, 그 반작용의 적음으로 인해 당연히 앞으로 가는 거리도 짧아진다. 발을 적게 차는 고급반이 될수록 스트로크의 질이 중요한 이유다.
교정을 위한 노력
자, 이런 이유로 B 씨처럼 스트로크를 끝낸 양팔을 구부린 상태에서 물에서 꺼낸 후, 그 상태 그대로 물 안으로 던져 넣는 건 미관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수영 효율적인 면에서도 마이너스다. 내가 그걸 지적했다. 그녀도 이 팔의 중요성을 알았다. “아, 그럼 안 멋있잖아요.”,“하하. 그렇죠. 다른 영법은 몰라도 접영은 폼이죠. 아시죠?”, 당연히 그녀도 알았다. 매일 고급 A반의 수영을 보는 그녀가 그걸 모를 리 없다.
한 팔 접영을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오른 팔로 한 팔 접영을 하면서도 팔을 구부렸다. 왼 팔로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왼 팔이 잘 안된다고 했다. 그건 당연한 거지만(우린 대부분 오른손잡이이고,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다들 오른쪽으로 호흡하라고 배우기 때문에 왼쪽으로 숨을 쉬며 한 팔 접영을 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 후로도 몇 번, 그녀의 접영을 봐줬다. 그녀의 팔은 그때마다 굽혀져 있었다. “그거 지금 못 고치면 고치기 힘들어요. 중급반은 당연하고 고급반에도 팔을 못 피고 접영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때 강사들이 지적을 하는데, 다들 안 고쳐지더라고요. 지금 좀 힘들어도 고쳐보세요.”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몇 가지 노하우를 가르쳐 줬다. 손에 낚싯대를 쥐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쭉 던져보라고 했다. 그래도 안 돼서, 팔 전체로 수면을 내리친다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은 뒤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팔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나쁜 버릇으로기억되는 사람
우린 저마다 나쁜 버릇이 있다. 생계나 학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쁜 버릇도 있고 고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나쁜 버릇도 있다. 물론 이 나쁨의 평가는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 책을 접거나 낙서를 하지 않는다. 줄도 거의 안 긋는다. 당연히 책을 넘길 때 손가락에 침을 묻히지도 않는다. 또 당연히 비 오는 날엔 책을 사지 않고 책 근처에 음료수 잔을 놓지도 않는다.
나 같은 사람에게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 책을 접고, 맘에 드는 문구에 밑줄을 긋고,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며 한여름에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면서 손에 묻었을 습기도 닦아내지 않고 책을 덥석 잡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책을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책을 대하는 최악의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건, 다시 말하지만 일상에 아주 심대한 영향을 주는 나쁜 버릇은 아니다. 반면 늦잠, 폭식, 과음, 난폭 운전 등은 나쁜 버릇이다. 술버릇, 손버릇이 안 좋은 것도 나쁜 버릇이다. 이런 버릇을 계속 지닌 채 살면, 그건 한 사람의 매너가 된다. 그 사람의 굳어진 스타일이 된다. 일종의 한 개인의 스테레오타입이 된다. 당신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나쁜 버릇, 나쁜 버릇으로 설명되는 당신이라는 사람.
우아해지고 싶다면 고쳐야 한다.
나쁜 버릇을 갖지 않기 위해선 그 버릇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그 영역에서 여러 기술이나 노하우를 배울 때, 그 영역에서의 경험이 막 시작됐을 때, 좋은 자세와 버릇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좋은 강사에게 수영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것처럼 술도, 운전도, 공부도, 일도, 연애도, 결혼 생활도 좋은 스승, 좋은 인생 선배에게 잘 배우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해,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체적 단점이나 성격 등으로 인해 생긴 나쁜 버릇은 처음 인지됐을 때 고치는 것이 제일 좋다. 그 버릇을 지적당하면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아한 접영을 하고 싶다면 무심결에 구부리는 팔을 의식적으로 쭉 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무심결에 하는 그 나쁜 버릇을 발견해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 사람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고쳐나가야 한다. B 씨처럼 말이다.
팔을 구부리는 나쁜 버릇을 못 고치면 아무리 수영을 오래 해도 우아한 접영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삶의 나쁜 버릇은 당신의 삶을 추하게 만들 수 있다. 자유형, 배영, 평영은 잘하지만 접영에선 늘 아쉬움이 남는 고급반의 동호인처럼 당신의 삶 내내 사소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결함과 결점이 따라다닐 것이다. 그 결함과 결점이 쌓여 만든 평판이 당신의 일상과 커리어를 따라다닐 테고 말이다. 그러니 고칠 수 있을 때, 단점을 찾아낸 사람이 그것을 고칠 방법까지 가르쳐 줄 때, 그 나쁜 버릇을 고쳤으면 한다.
지난 금요일, 여전히 펴지지 않는 그녀의 팔을 생각하며 집에 왔다. 어떻게 하면 팔을 펴게 할 수 있을까? 오지랖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다가 방법이 생각났다. 다음 주에 혹시 보게 되면 그 방법을 우선 가르쳐줘야겠다. 그래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그녀가 나와 같은 시간대에 수영을 하는 이상, 수영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건 어찌 보면 책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