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목은 이렇게 하려고 했다. 제목은 서른 자 이상 넘길 수 없어 위와 같이 줄였다. 앞선 글에도 얘기했고, 수영을 배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유형은 수영장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영법이다. 발차기-호흡법-스트로크 순으로 배운다. 이 시기, 가장 운동량이 많고 살도 많이 빠진다. 이후 약 3개월 동안 자유형-배영-접영-평영 순으로 배운다. 이게 일반적인 순서일 것이다.
이후 중급반, 또는 수영장에 따라 교정반에 가서 각 영법을 세련되게 다듬고 수영 체력을 더 올린 후 자유형을 안 쉬고 이삼백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으며, 평영과 접영이 그럭저럭 봐 줄만 해지면, 그러니까 대략 수영을 한 지 일 년쯤 지나면 고급반, 또는 마스터반으로 올라간다. 이쯤 되면 더 고칠 게 없다고 느껴진다. 뒤에 서 있다 하더라도 함께 하는 사람들의 템포와 운동량을 그럭저럭 따라가고 네 가지 영법 모두 망설임 없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강사가 손을 대기 시작한다. 배영이나 접영, 평영을 손대는 건 흔하다. 다들 리듬도 다르고 발차기의 습관도 다르며 몸을 쓰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 리듬과 습관, 방법만 조금 고치면 확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자유형은 좀 다르다. 제일 처음 배운 영법이다. 언제, 얼마 큼을 시키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딱히 고쳐야 할 곳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고칠 필요도 못 느낀다. 물론 자기도 눈이 있으면 유연하고 부드럽게, 아무런 힘도 안 들이고 하는 것 같은데 나보다 세 배는 빨리 나가는 사람의 자유형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른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설령 그걸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명색이 고급반 아닌가? 가서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 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 자유형에 강사가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일단 팔 접기부터 시작한다. 교정반까지는 팔을 편 상태에서 스트로크를 한다. 그러나 완전히 편 팔의 무게는 어깨에게 부담이다. 게다가 물에서 빠져나온 팔을 다시 물속에 넣기까지의 시간이 길다. 결국 팔의 운동 에너지는 최대한 유지하면서 그 회전 반경을 줄이는 것이, 바로 팔 접기다.
바로 여기에서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자, 자리에서 일어서 보자. 차렷. 골반쯤에 있을 오른팔을 몸 뒤에서부터 앞으로 한 바퀴 돌려보자. 아주 유연한 사람이 아니라면 팔을 뒤로 돌리기 시작하자마 몸통으로부터 약간 멀어진다. 그게 정상이다. 어깨는 옆구리를 중심으로, 180도 평행하게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가슴 앞으로 온 손끝은 중심에서 약 5도에서 15도 정도 벌어진 곳을 향하게 된다. 이것이 정상이다. 너무 많이 돌리지 마라. 어깨 다친다.
자, 다했다고 앉지 말고, 다른 자세다. 일어선 상태에서 시선은 정면, 발끝도 정면으로 향하고 몸통만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보자. 어르신들이 결혼식장이나 관광지에서 단체 사진 찍을 때, 최대한 겹쳐 서기 위해서 비스듬하게 서는 자세를 떠올리면 된다. 대략 15도, 발목이 유연하다면 더 틀어보자. 그 상태에서 앞에 했던 팔 돌리기를 해보자. 자, 이제 손끝이 어디에 있는가? 내 시선과 평행하다. 양궁 선수들이 그런 자세로 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팔과 어깨를 최대한 늘려서, 그 운동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자세인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깨에 부담은 가장 적은 자세이고.
완벽한 자유형 스트로크를 위해선 돌아가는 팔 쪽으로 몸을 회전시켜줘야 한다. 그러면 스트로크를 끝낸 팔은 물 밖으로 나오면서 천장을 향해 팔꿈치를 찌르게 되고 동시에 겨드랑이는 활짝 열리게 된다. 이때 팔을 접어주면서 손 등은 정면을 보게 한다. 이후 수면을 향해 단호하면서도 예리하고 부드럽게 찔러 넣어주면 한 손의, 한 번의 스트로크가 끝나게 된다.
몸을 돌리면 해결된다.
다시 말하지만, 팔을 접는 우아한 스트로크를 하기 위해선 몸을 틀어주는 롤링이 되어야 한다. 물속에서 스트로크를 하는 팔이 내 가슴과 배꼽, 골반을 스치듯이 지나갈 정도로 말이다. 롤링이 안 되면 팔을 접을 수 없다. 정면을 보고 선 상태에서 팔을 돌리면 몸에서 팔이 몸에서 멀어지면서 손끝이 몸 중심에서 멀어지듯이, 롤링 없는 자유형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팔은 몸에서 멀어져 퍼져 나오고 들어갈 때도 몸 중심에서 먼 곳을 찔러 들어가게 된다.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스트로크를 할 때마다 하지 않는 쪽의 어깨가 물속과 거의 직각을 이루며 잠길 정도로 몸을 돌리면 된다. 그러면서 사이드 킥을 차면 추진력도 잃지 않는다. 참고로 사이드킥이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하는 킥이다. 그렇게 되면 평평한 나룻배처럼 떠서 가는 것이 아니라 수면 위로 부상한 잠수함처럼 물살을 가르면서 가게 된다. 당연히 훨씬 보기도 좋고 운동 효율도 좋다. 그런데 이렇게 고치는 것이 쉽지 않다.
습관과 버릇을 살피는 담임 선생님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첫 학기가 끝나니 성적표 비슷한 걸 보냈다. 거기 맨 뒷장에 아이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이 기초 생활습관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후 현재까지 매 방학 때마다 받아오는 성적표에 남긴 선생님의 의견에는 이런 내용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생활습관, 기본학습태도, 식습관 등등. 학년이 올라가도 선생님들은 취학 전 가정에서 형성시켜 보내야만 하는, 그러니까 학교에서 가르치기엔 어려운 습관이 얼마나 잘 형성되어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간파한다. 그 습관이 학교생활, 공부, 교우관계 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미 나쁜 버릇이 들어버린 뒤라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애라면 몰라도 어른은 어렵다. 해오던 데로 자유형을 해도 앞으로 나가는데 문제가 없다면 고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선수될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고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안 다치고 부상 없이 오래 수영을 하려면 강사가 가르치는 대로, 조언하는 대로 폼을 교정하는 것이 좋다. 먼 미래에도 수영을 할 나를 생각한다면 고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만 사는 사람은 당연히 고칠 필요를 못 느낀다.
쉽지 않다. 몸이 안 따라 줄 수도 있다. 의지를 만들고 다지는 것이, 그 의지를 바탕으로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원래 인간의 의지는 몸만큼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다. 나쁜 버릇이 들어버린 자유형을 고치기 어려운 것도, 망가진 삶을 수습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멀리 보면 볼수록 바꿔야 한다. 애가 공부를 잘하기 바란다면 가정에서부터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고, 애가 책과 친해지길 바란다면 부모부터 책을 읽어 책 읽는 가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당장 넷플릭스 따위를 보는 것이 심신에 만족을 주겠지만 아이의 미래와 아직 남은 당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바꿔야 한다.
느리게 찾아오는 변화
물론 변화는 느리게 찾아온다.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어떤 운동을 시작한 후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은 그전과 후의 달라진 점을 그 기간 안에는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운동 습관이 형성되기 위해선 이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 연구가 얼마 전에 있었다. 그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손 씻는 습관이 형성되는 데는 불과 몇 주가 걸렸지만 운동 습관이 형성되는 데는 최소 6개월 이상이 필요했다. 그 연구팀은 특정 습관이 형성되는데 최소 3주가 필요하지만 운동만은 예외라고 했다.
간단한 습관의 형성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운동이나 독서, 공부, 식습관 등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만큼 독한 의지와 무던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좋은 습관을 들여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럭저럭 끌고 가기 위해선 완벽한 표본을 모델 삼아 자신을 고쳐야 한다.
그 후에,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 물론 삶의 아주 작은 영역에 국한된 자유이겠지만 모든 전쟁의 승리는 작은 교두보의 점령부터 시작되지 않던가? 몸 하나 돌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유형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주 다른 나를, 다른 삶을 만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