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영어로 Backstroke다. 솔직히 뒤로 가서 Back인지, 등으로 가서 Back인지 애매했다. 한자로는 배영을 이렇게 쓴다. 背泳. 당연히 앞의 저 한자는 등을 뜻하지만 뒤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 흠... 여전히 애매하다. 그렇다면 다른 영법의 영어 표현을 보자. 자유형은 그야말로 freestyle이니 넘어가고, 접영은 앞서 말했듯 나비 같다고 해서 붙인 것이니 이 또한 넘어가자. 남은 건 평영이다.
평영은 영어로 Breaststroke다. 그러나 한문으로는 平泳으로, 앞의 한자는 평평하다는 뜻이다. 영어가 더 와닿는다. Breaststroke를 단순하게 번역하면 "가슴 영법"이다. 맞는 말 같다.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요즘 평영을 하면서 저 영어 이름이 참 적절하다고 느끼고 있다. 평영은 손-머리 순으로 물에 들어가지만 물에 들어가면서 가슴으로 물을 누른다. 또, 평영을 앞에서 보고 있으면 물살을 가슴으로 가르고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평영을 제대로 하면 가슴 운동이 돼서 펌핑이 된다. 그러니 평영을 Breaststroke라고 부르는 건 수영의 모양새나 운동 부위로 봐도 적절하다.
자, 다시 배영으로 돌아오자. 평영의 영어 이름 맥락에서 보면 배영은 등으로 물살을 가르는 영법이자 뒤로 가는 영법이다. 그러니까 두 뜻이 다 맞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뒤로 간다는 말에는 묘한 역설이 숨겨져 있다. 어찌 됐든 정해진 지점을 향해 수영을 해서 간다는 건 결국 앞으로 간다는 의미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라토너가 뒤로 뛴다고 역주행이거나 거꾸로 뛴다고 할 수 없듯이 배영 또한 뒤로 간다는 표현보다는 다른 모양새로 간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물론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출발부터 특이하다.
배영은 특이하다. 개인 혼영에서 접영 다음에 하는 영법이다. 접영-배영-평영-자유형 순이다. 반면 혼계영에선 배영-평영-접영-자유형 순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단 개인 혼영의 저 순서는 선수의 역량을 보기 위해 일부러 뒤죽박죽 섞어 놓은 느낌이다. 수영 메커니즘적으로 보면 접영으로 시작했으면 평영으로 이어진 뒤 배영을 하고 자유형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 영법을 엇갈려 놨다. 결국 선수든, 동호인이든 영법이 바뀔 때마다 영법에 맞게 신체의 움직임을 재빨리 조율해야 한다.
반면 혼계영에선 배영이 앞에 나온다. 혼계영은 말 그대로 네 명의 선수가 한 영법씩 맡아서 계주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배영이 맨 먼저 출발할까?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배영의 스타트는 물속에서 하기 때문이다. 난 교정반 시절, 이 스타트를 배웠다. 배영을 제외한 다른 영법은 레인 위, 스타팅 블록에서 힘차게 물로 뛰어들면서 시작한다. 반면 배영은 일단 물속에 들어간다. 그 후 스타팅 블록의 양 기둥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고 몸을 웅크려 매달린다. 이때 발은 수영장 벽을 약간 어긋한 십일 자 형태로 밟고 있다. 아주 꼴사나운 자세다.
그러나 더 이상한 건 그다음이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스타팅 블록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동시에 발로는 힘차게 벽을 차며 몸을 뒤쪽으로 활처럼 휘면서 머리부터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물속에 누운 채로 힘차게 돌핀킥을 차며 가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킥과 스트로크를 시작한다.
쉬운 듯 쉽지 않은
의외로 이 스타트를 제대로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물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을 뒤로 휙 젖혀서 뒤통수부터 물로 입수하는 것이 약간의 공포감을 준다. 또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코로 숨을 내쉬어야 코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그걸 종종 까먹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코로 물이 들어오는 아주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같은 현상 때문에 소위 퀵턴, 플립 턴도 동호인들이 어려워한다. 더 어려운 점은 물속에 누워서 돌핀킥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물 위쪽으로 킥을 하면서 앞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많은 동호인들이 수영을 시작하고 두 번째로 배우는 영법이 배영이다. 메커니즘이 자유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자유형을 누워서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배영을 배우면서 쉽고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얼굴을 물밖에 내놓고 있으니 숨쉬기가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랬다. 심지어 수영을 배운 지 6개월 정도 됐을 땐, 다른 영법보다 배영을 더 잘한다고 생각했었고, 때문에 수영장에서 했었던 회원들의 수영대회에선 배영으로 출전했을 정도였다.
배영의 곤란함
그러나 배영은 스타트 방법 말고도 다른 영법과는 다른 곤란함이랄까,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일단 앞을 볼 수 없기에 종종 충돌사고가 일어난다. 앞에 주자의 발에 차이기도 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도 종종 있다. 수영 경력이 짧을수록 이런 일이 빈번하다 보니 강사는 배영을 가르칠 때 어느 지점에서 자유형으로 전환해서 턴을 하면 되는지 가르쳐주기도 한다. 대체로 전문 수영장엔 엔드라인 2,3미터 앞에 빨랫줄처럼 줄이 쳐져 있고, 그 줄엔 특정 수영복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삼각 깃발이 줄줄이 달려 있다. 강사들은 그 선이 지난 후 몇 번 스트로크를 하면 터치 판인지 감을 잡으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 어느 강사도 앞사람이 어느 정도 가고 있는지 가늠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앞서도 말했듯이 기초반에서 배영을 시키면 앞에 가는 사람의 발 위에 머리가 얹어지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접촉사고가 생기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가리기 전에 일단 차부터 세우는 것처럼 두 사람 모두 수영장 레인 한가운데 멈춰 서곤 한다. 연쇄추돌이 이어진다. 강사들은 “자, 자 출발하세요. 출발~”을 외친다.
고급반에서 배영이란...
그러나 고급반에선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수영 경력이 쌓이면 앞사람의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스트로크를 위해 길게 뻗은 손끝에 물의 파동이 느껴지면 비트를 느리게 가져간다. 앞사람의 파동이 조금 멀어져 가면 다시 리듬을 회복해서 간다. 깃발을 지나가면 부드럽게 몸을 돌려 자유형 자세로 바꾼 후 한 두 번의 스트로크를 한 후 터치 판을 찍은 후 턴을 한다.
또 하나, 고급반이 되어보니 배영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 내 경우엔 그렇다. 자유형이든, 평영이든 접영이든 상체나 스트로크의 힘, 또는 웨이브의 힘만으로도 갈 수 있다. 키에 비해 윙 스팬, 그러니까 양팔을 벌렸을 때의 길이, 쉽게 말해 팔이 길고, 여기에 손까지 남보다 큰 내 경우엔 더 앞에 있는 물을 더 많이 잡아서 뒤로 보내는 추진력만으로도 남과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다. 킥을 안 차고 말이다. 접영은 상체에서 하체로 이어지는 유연한 웨이브와 리듬 있는 스트로크만으로도 앞으로 갈 수 있다. 평영도 마찬가지다. 허리힘과 스트로크의 힘만으로도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배영은 좀 다르다. 일단 누워 있다 보니 팔을 물속으로 더 넣어서 무게 중심을 앞쪽으로 쏠리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유형처럼 킥을 안 차거나 최소한으로 차다 보면 다리가 가라앉게 된다. 결국 수면과 평행한 상태에서 부드럽게 앞으로 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 킥의 속도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문제는 우리 신체의 근육 중, 특히 수영에서 사용하는 근육 중 가장 큰 근육이 허벅지 근육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물을 아래로 차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 차서 올린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당연히 위로 퍼 올리는 것이 더 힘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렇듯, 배영은 몸의 균형과 진행 방향의 일관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 킥을 찰 수밖에 없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큰 근육을 다른 영법보다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피로감이 더하다. 초보 때는 숨 쉬기 편하다고 좋아하던 배영이 꺼려지게 된다. 결국, 경력이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배영이 귀찮아진다.
앞사람을 감지하는 법
수영의 초보자 때는 기어가 1단밖에 없다. 속도를 하나 밖에 낼 수 없다 보니 빨리 가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도 없지만 늦게 가는 사람 뒤에서 보조를 맞춰 줄 수도 없다. 그러나 노련해지면 앞에 가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줄 수 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앞사람과 나의 간격을 확인할 여유도 생기고, 그 간격의 유지를 위해 기어를 올릴 줄도, 내릴 줄도 안다. 그러나 초보자 때는 불가능하다. 앞을 볼 여유도 없고 기어를 바꿀 능력도 없다.
배영은 앞을 보지 않고 앞으로 가는 영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손과 몸으로 전해지는 물결의 변화로 앞사람과의 간격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만 집중해선 안 된다. 지금 내가 가르고 있는 물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옆 레인이 만드는 파동과 앞사람이 만드는 파동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삶의 바른 자세?
살다 보면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들 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난 이렇게 하고 싶고, 이런 형태로 하더라도 남들이 다 다다르는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초에 그러기 위해선 특정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세상이 특정 자세를 아예 “바른 자세”로 규정해놓기도 한다.
배영이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등으로 물살을 가르며 가는 것이라면 그건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등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등으로 물살을 가르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가는 것이 더 좋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편한 방법과 자세가 당신에게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남들이 다 이렇게 갈 때, 당신은 저렇게 가고 싶다면, 그래도 이렇게 가는 사람만큼 갈 수 있고 심지어 더 빨리 갈 수 있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방식만 아니라면 그렇게 가도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이런 걱정을 한다. 그래도 남들 하는 거 곁눈질도 해가면서, 보조를 맞춰가면서 비슷비슷하게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간다고 해서 남들이 가는 속도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설령 그 속도가 느껴진다고 해도 그 속도에 맞게 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영에서의 그 감지가 노련해진 뒤에 찾아오듯,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조를 맞추고 장단을 맞추고 어울려 함께 가는 법을 터득하는 건, 좀 나이 든 뒤다. 서툴 땐 이런저런 접촉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땐, 얼른 사과하고 수습하고 다시 출발하면 된다. 노련해질 때까진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인생이든, 배영이든 말이다.
자기만의 방식을 찾은 이후
젊은 시절, 힘이 넘칠 땐 어떤 식으로든 다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랬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떤 식으로 사는 것이 나와 맞는 삶인지 서서히 알게 된다. 음식도, 옷도, 계절을 나는 것도 자기에 맞는 것을 찾게 된다. 그 찾음 뒤에 서로의 다름이 생긴다.
결국,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산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 가족의 형태는 같아도 삶의 형태는 다르다. 어떤 집은 저녁을 여덟 시에 먹고 열한 시에 야식까지 먹지만 우리 집은 저녁을 여섯 시에 먹고 열한 시면 잠자리에 든다. 각자가 고유의 방식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젊었을 땐 이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런 식으로 사냐고 쉽게 판단하고 훈수를 둔다. 내가 내 방식으로 수십 년 살아서 지금의 나이가 되었고, 나와 다른 이 또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서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된 후, 서로 마주하게 되면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게 된다. 일종의 리스펙트가 생긴다. 야, 그렇게 야식을 먹고도 배가 그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비결이 뭐야?
수요일엔 핀 수영을 한다. 달의 첫 주임에도 불구하고 출석률이 저조하다. 대여섯 명이 가열 차게 운동을 했다. 접영 25미터 열 개가 메인 세트였다. 아홉 개쯤 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됐을 때 - 몇 개를 했는지 세지 않는다. 그건 1번의 책임이다. 1번이 출발하면 아직 바퀴가 남은 거고, 수경을 벗으면 나도 벗고 쉬면 된다 - 새로 우리 반에 올라온 여자 회원이 숨을 헐떡이며 “몇 개 남았어요?”하고 물었다. 난 말없이 검지를 올려 보였다. 내 뒤에 있던 네 사람이 다시 기운을 냈다. 나도 3번 주자의 첫 번째 스트로크를 확인한 후 힘차게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