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과 훈련 : 내가 바라던 나를 만나기 위한 고통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07

by 최영훈

다른 매거진에 있던 글이다. 이 매거진에 더 맞는 것 같아 옮겼다.


잘 가르치는 강사

다른 글에서도 말했듯이 수영장 강사가 바뀌었다. 새 강사는 기초반을 가르치던 선수 출신의 강사다. 사실 지난 여름 수영장에 다시 등록할 때부터 그 강사의 몸이 눈에 띄었다. 유럽이나 미국의 단거리 수영 선수 같았다. 두툼한 몸통, 잘 발달된 활배, 넓은 어깨. 기초반을 가르칠 때 보니 수영 지식도 풍부했다.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뭐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꼼꼼히 가르쳐줬다.


우리 반의 강사가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꼼꼼했다. 그는 우리에게 우선 개인 혼영(접영-배영-평영-자유형을 혼자 이어서 한다.) 두 세트를 시킨 뒤 풀 위에서 지켜봤다. 그 뒤, 우선 접영에 손을 댔다. 수영엔 Drill이라는 것이 있다. 각 영법의 손이나 발, 몸동작에 익숙해지도록, 또는 그것을 더 잘하도록 고안된 일종의 부분 동작을 개선시키는 훈련이다. 강사는 접영의 몸동작을 개선시키는 드릴을 몇 차례 시켰다. 나도 중급반 때나 하고 안 한 동작이었다. 그 동작을 본 뒤 몇 가지 개선 사항을 설명했다.


족집게 강사에 대한 거부감

솔직히 말하면, 말이 좀 긴 걸 제외하면 그의 코칭은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다. 접영에서 행하는 두 개의 킥 중 입수킥보다 출수킥을 더 강하게 해서 그 힘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라고 했다. 자기가 가르쳐준 데로 하면 접영을 50미터는 물론이고 100미터, 200미터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가르치는 대로 했더니 훨씬 편했다. 이래서 선출, 선출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다들 약간의 불만이 있어 보였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체력이 안 되니까 안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해 온 방식이 있는데 이제 와서 고쳐지겠나?

-선수할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고쳐야 하나?

-운동만 많이 하면 됐지. 폼까지 좋을 필요가 있나?

-접영을 100, 200미터 할 일이 있나?

마스터반 정도 되면 최소한 수영 경력이 1년 이상이다. 대부분은 4,5년, 십 년 이상 된 사람도 수두룩하다. 이런 사람들이 접영을 못할 리 없다. 대다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의 아줌마들과 할머니들로 구성된 마스터 B반도 대부분 할 줄 안다. 그들은 자신의 체력과 근력, 신체적 약점에 걸맞게 영법을 수정시켜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접영을 해 왔다.


우리가 못 고치는 이유

물론 그 접영으론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는 없다. 그 접영으론 25m만도 쉬어야 한다. 이런 한계가 있는, 자신의 몸에 맞게 만들어온 기존의 접영 방법을 강사의 코칭대로 고치면 접영을 더 빨리, 더 오래 할 수 있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대부분 못 고칠 것이다.


우리가 나쁜 버릇이나 그릇 된 방법을 못 고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자신이 틀리거나 다른지 모를 때, 그 트림과 다름을 지적하거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을 때, 자신의 틀림과 다름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할 맞음과 바름의 본보기가 없을 때다. 역순으로 나열하면, 그런 본보기가 없기에 자신이 틀리고 다른지 모르는 것이고, 그런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없기에 자신의 트림과 다름을 교정받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안 고치는 이유

사실 더 큰 문제는 안 고치는 경우다. 안 고치는 이유도 몇 가지가 있다. 우선은 현재의 실력에 만족하는 경우다. 특정 시간대의 마스터 A반은 그 시간대 회원 중 수영을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다. 수영장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나가지 않는 이상, 지역의 동호회 수영 대회를 나가지 않는 이상 그럭저럭 어깨에 힘주고 수영장을 다닐 수가 있다. 허우적대는 기초반 아가씨한테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면서 폼을 잡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굳어진 방법이 편할 때다. 몇 년 이상 같은 폼으로 영법을 하다 보면 몸에 익게 된다. 남이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폼이지만 자기한텐 편하다. 팔의 각도를, 다리와 발의 각도를, 머리의 위치를 조금만 바꾸면 더 빨리, 더 멀리,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은 그런 것보다 편한 게 좋다. 숨쉬기 편하고 몸이 힘들지 않은 자세가 좋다.


두 번째 이유는 세 번째 이유의 원인이다. 고치는 건 고통스럽다. 불편하다. 물속으로 손을 넣을 때의 각도, 킥의 리듬, 고개의 각도, 몸통의 로테이션, 물속에서의 글라이딩. 고치려고 마음먹으면 고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게다가 기존의 영법에 굳어진 내 관절과 근육들이 아우성을 친다. 안 아프던 데가 아프고, 힘들지 않던 영법이 힘들다. 고친 것이 내 영법이 될 때까지, 익숙해질 때까지 훈련도 해야한다. 이또한 고통이 따른다. 차라리 과거의 영법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네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에서 이어진다. 자존심이다. 자세 교정을 많이 받는 중급반을 넘어온 마스터 반 사람이 강사한테 자세 지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조언을 해주기도 하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강사가 돌라는 데로 잘 돌고 하라는 데로 하다 보니 강사도 회원들의 자세 교정엔 눈을 감는다. 또 대부분의 강사는 마스터 반 회원보다 나이가 어리다. 그러다 보니 나이 많은 회원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조언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또 회원들 중엔 꼰대 같은 인간들이 있다 보니 강사가 말이 많으면 사무실에 컴플레인을 넣기도 한다. 결국 강사와 회원 사이의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다. 마스터 반은 놔둔다.


더 나아지고 싶은 사람

그러나 마스터 반 사람 중에는 지금보다 수영을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에서 수영 채널을 찾아 열심히 보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난 다른 영법도 각기 단점이 있지만 특히 평영에 유독 약해서 수영을 다시 시작한 작년 여름엔 평영 영상을 많이 보면서 고쳤다. 그렇게 보다 보니 자유형도, 배영도, 접영도 눈에 들어와서 자주 보면서 내 자세에 적용했다.


이런저런 업적과 실적을 쌓아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이만하면 됐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지금까지 쌓아 온 실력과 경력에 기대어 남은 날들을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마음이 우리 삶에 정체기와 권태를 가져오는지도 모른다.


애플 워치의 광고처럼 어제의 나와 레이스 하지 않으면 매일 하는 달리기도 아침 루틴에 불과할 뿐이다.취미로 마라톤을 할 때, 이 동호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신발, 복장, 코스, 훈련 방법 등을 고민하는 글들이 관련 사이트와 게시판에 매일 같이 올라왔다. 한여름, 삼익비치 산책로나 황령산 임도와 같은 부산의 유명한 마라톤 연습 코스에서 연습하다 보면 나 같이 미친 인간이 벌써 반환점을 찍고 오는 모습을 보곤 했다. 일 년에 몇 번 안 나가는 대회, 나가봐야 등수에도 들지 못하는 대회지만 가을 대회는 봄 대회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내겠다는 일념으로 한 여름의 햇살을 가르며 뛰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내가 바라던 나를 만나고 싶다.

게임이든, 공부든, 수영이든 인생이든 레벨 업을 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면 열정도 사라진다. 심지어 연애도 섹스도 마찬가지다. 내일은 오늘과 다른 나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게한다.


요 몇 년, 어휘와 글쓰기에 관한 책도 읽고 있다. 카피라이터로 제법 오래 버텼지만 칼럼을 쓰는 건 다른 차원을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읽은 덕에 본업의 실력도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나아졌길 바란다. 나아졌으면 좋겠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조금씩이라도, 아주 느리게라도 꾸준히 나아졌으면 좋겠다.


접영의 자세를 바꾼다고 박태환이나 펠프스가 될 수 없듯이 새삼 이 나이에 어휘와 글쓰기를 공부한다고 해서 스티븐 킹이나 하루키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난 내게 기대하는 내가 있다. 내가 바라던 나를 보고 싶다. 읽고 쓰고 수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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