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개인 혼영(한 선수가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이 네 가지 영법을 차례대로 소화해 내는 경기) 순서대로 각 영법을 하며 든 생각을 써보려 한다.
우린 이렇게 움직인 적이 없다.
춤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움직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역동적이면서 탈 규제적이며, 탈 규율적인 움직임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손과 발을 그런 식으로 뻗거나 되가져 온 적이 없고 그렇게 가볍게 스텝을 밟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분화해서 부드럽게 물결치듯 신체를 말고 풀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접영은 나비처럼 움직인다고 해서 접영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가오리처럼 움직인다. 척추를 소분시켜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골반과 허벅지, 무릎, 발목과 발끝까지 구분되어 움직여야 한다. 이론상으로도 그렇고 강사가 주문하는 것도 그렇다. 강사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 움직임의 분절과 이어짐이 세분화되면서, 동시에 물결처럼 부드럽게 이어질수록 접영은 쉬워진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경우엔 고역이다. 머리, 상체, 골반, 다리로 크게 나눠 움직이면 물로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노동이 된다.
접영을 접영이라 부르는 것은 순전히 팔 때문이다. 물속에 들어갔던 팔로 물을 뒤로 처내며, 그 일을 끝낸 팔을 다시 머리 앞으로 휙 보내는 그 찰나의 순간, 그 사람을 앞에서 보면 잠시 나비처럼 보인다. 그 찰나의 순간, 얼마나 가벼워 보이는 가로 그 사람의 접영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세 번의 좌절
접영을 처음 배울 때, 대부분의 강사들은 물속과 밖을 넘나드는 큰 S자를 그리게 한다. 주로 돌핀킥이라고 부른다. 이때, 초보자는 신체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움직인다. 팔-상체-하체.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제 몸을 세분화시켜 움직이는 법을 가르쳐 준다. 방법은 간단하다. 차렷 자세를 하고 돌핀킥을 하는 것이다. 머리 앞으로 뻗은 팔의 반동 없이 오직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만으로 앞으로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상체의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한 움직임과 하체의 분절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첫 번째 좌절의 순간이다. 내가 이렇게 뻣뻣했었나?
킥이 좀 됐다 싶으면 강사는 한 팔 접영을 가르친다. 접영은 접영인데 자유형처럼 두 팔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도 큰 문제가 없다. 대부분, 잘 따라온다. 팔을 돌리기 위해 몸통을 돌리는 팔 쪽으로 틀어주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 강사가 보기에 다들 잘한다 싶으면 두 팔 접영, 그러니까 진짜 접영을 가르친다. 두 번째 좌절의 순간이 온다. 한 팔 접영 때 잘 나왔던 팔이 안 나온다. 한 팔 접영 때 잘 맞았던 킥과 팔의 리듬이 산산조각 난다. 한 팔 접영 때 그렇게 잘 쉬어지던 숨이 안 쉬어진다. 숨을 쉬기 위해 물 밖, 정면으로 고개를 내밀 때마다 해일 같은 물이 입 속으로 들어온다. 물 밖으로 휙 하고 스윙한 후 얼른 들어가야 될 팔과 손은 몸통 옆 수면의 물을 다 쓸고 들어간다. 25미터가 250미터처럼 느껴진다. 뭐가 문제지?
그래도 앞으로 가니, 평영까지 배우고 나면 중급반으로 옮겨간다. 그래도 여전히 접영은 꼴사납다. 물밖로 나왔다가 철퍼덕하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중급반 강사도 이것저것 열심히 교정해 주지만 내 접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세 번째 좌절의 순간이다.
당신만 그런 건 아니다.
당신이 평범한 근력을 가진 평균적인 여성이라면 정상이다. 접영을 고급반, 또는 마스터반의 아주 잘하는 남자와 같이 할 수 있는 여성 회원은 거의 없다. 각 시간대에 한 서너 명 될까? 접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제대로, 잘하는 여성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남자라고 다 잘하는 것도, 잘하는 사람도 완벽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린 다 뻣뻣하니까. 수영장에 들어가서 첫 번째 하는 루틴 운동이 허리를 풀어주는 동작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강사가 가르쳐준 동작은 간단하다. 벽을 마주 보고 선다. 그리고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한 후 손바닥으로 벽을 짚는다. 그 상태에서 팔을 천천히 Y자 자세가 되도록 위로 밀어 올려준다. 그동안, 당연히 하체는 그 자리에 고정한다. 그러면 요가의 활 자세처럼 상체가 휘어지면서 풀어진다. 이것을 접영 스트로크 자세를 흉내 내면서 몇 차례 해준다. 이 자세가 입수할 때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물 밖에서의 훈련
지상에서 하지 않는 운동이라도 지상 훈련이 필수인 종목들이 있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우리 강사는 특히 접영을 교정해 주면서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지상훈련을 많이 가르쳐줬다. 팔의 근력이 떨어져서 물 밖으로 쉽게 팔이 안 나오는 사람을 위한 훈련, 허리와 등과 가슴의 유연성과 가동범위를 넓게 해주는 훈련 등이 있다. 물론 자유형과 배영과 평영에도 지상 훈련법이 있지만 접영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최소한 내 경험, 내가 검색해 본 바로는 그렇다.
하루아침에 안 되는 것들
접영은 이렇듯, 남녀 모두에게 그 나름의 난감함을 안긴다. 남자에게 유연성의 부족함을 절감케 하고 여성에겐 근력의 부족을 실감케 한다. 나이 든 회원은 젊은 회원의 유연성과 탄력과 근력을 부러워한다. 수영을 오래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유연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근력이 붙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연습하고 지상훈련도 틈틈이 해줘야 개선이 되고 나아진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관성과 타성에 젖어 생각 없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사가 접영을 시켜서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면 예전처럼 할 때가 있다. 팔로만 한다던가, 허벅지의 힘으로만 물을 찬다던가 해서 힘은 더 들이면서 앞으로 많이 못 나가는 형태로 하곤 한다. 이런 실수를 안 하려면 출발하기 전 짧게라도 생각해야 한다. 상체는 최대한 많이 나눠서, 하체는 골반을 많이 움직이고, 팔을 꺼낼 땐 반동과 탄력을 주고, 입수는 복근의 힘으로, 출수는 킥 중심으로... 순간적으로 이런 것들을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출발하면 완벽에 가까운, 힘이 아주 적게 드는 접영을 할 수 있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
새로 고급반에 올라왔거나 몇 달간 개인사정으로 수영장에 못 나왔던 사람은 강사가 가르쳐준 노하우를 모른다. 그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같이 수영하던 청년이 두어 달 안 나온 적이 있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다 오면서 그 앞뒤로 쉬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그 시기에 바뀐 강사가 접영을 아주 디테일하게 가르쳐줬다. 자신이 접영 선수였으니까. 그 덕에 수영을 오래 한 나조차도 나쁜 버릇을 고치고 아주 효율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접영 폼을 얻게 됐다. 물론 그 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에 썼듯이 여전히, 늘 머리에 되새기고 틈틈이 훈련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번 달에 그 청년이 복귀해서 접영을 한 적이 있다. 그 청년이 나보다 체력이 좋고 스피드도 빨랐었기에 내 앞 번에 섰다. 몸 풀기 개인 혼영이 시작되자, 그 청년이 먼저 출발했다. 난 그 청년의 돌핀킥이 끝나고 첫 번째 접영 스트로크가 시작되는 걸 보고 뒤이어 출발했다. 내가 두 번째 스트로크를 하려는 순간, 시야에 물보라가 보였다. 그 청년의 킥이 만든 거였다. 순간적으로 거리가 좁혀진 것이었다. 그 청년은 우리가 해오던 방식으로 접영을 했고 난 강사의 교정 이후의 방식으로 접영을 한 결과다.
우아해 보이기까지의 어려움
근본적으로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수영 또한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만나게 해 준다. 그것도 드러내고 싶은 나가 아니라 숨기고 싶었던 나를 만나게 해 준다. 접영이 그 대표적 영법이다. 신체의 약점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드라지게 한다. 근력 없는 사람에겐 그 힘없음의 참담함을, 유연함이 없는 사람에겐 생전 쓸데없던 그것이 이렇게 날 좌절시킬 줄 몰랐다는 뒤늦은 한탄을 뼈저리게 안겨준다.
우린 이 약점을 극복하려 애쓴다. 이 한탄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접영이 더 무서운 점은 다른 영법에 비해 시간과 돈을 들인 태가 잘 안 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마추어 수영인들이 이 영법에 공을 들이는 건 단순이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영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못하면 모양 빠지기 때문만도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 수영장에 처음 온 사람도 완벽한 접영의 아름다움을 알아채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수준의 접영만 봤을 때는 이게 다인 것 같지만 완벽한 접영을 보면 대번에 알아챈다. 이것이 “접영”이라는 걸. 그래서 다들, 애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수영을 하면 할수록 사람 또한 나이를 먹다 보니 유연성과 근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저 완벽한 접영에 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완벽이 반복될 때까지
완벽한 순간을 알아챌 때가 있다. 완벽한 접영이 구현될 때는 스스로도 느껴진다. 그 한 번의 스트로크를 반복해서 하고,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하고 한 달 뒤에도, 심지어 내년에도 할 수 있을 때, 그제야 완벽한 접영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때까진, 그러니까 강사가 접영을 시키면 강사조차 흡족해하는 완벽한 접영이 반사적으로 나올 때까진 스스로를, 매번 각성시켜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완벽한 접영의 조건들을 순간적으로 되뇌어야 한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주문을 걸어야 한다.
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어떤 장인의 순간도 당연하지 않다. 그들에게도 자신의 삶과 몸과 손이 제 맘처럼 안 돼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기에 더 나은 수준, 완벽한 한 순간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순간을 맞이했을 테고, 그 완벽한 순간의 모든 것을 머리에 깊이 새겼을 것이다. 그 뒤부터는 그 완벽한 순간의 모든 것을 매번 되새김질했을 것이다. 홈런을 쳤을 때의 신체 각 부위의 울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4번 타자의 루틴처럼 그 모든 것을 반복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의도적인 되새김과 의식적인 반복 실행 없이 자연스럽게 그 완벽을 실현했을 것이다. 그 완벽의 실현이 반복되어 그 완벽이 삶 자체가 됐을 것이다.
지금 뭘 하든, 어떻게 살든 완벽하다고 생각된다면 애쓸 필요 없다.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완벽한 순간의 도래를 꿈꾸며 애써야 한다. 그 완벽한 순간이 스쳐갔다면 그 순간이 자주 찾아오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그 순간을 반복하면 우린 나비가 날아가듯 우아하게 접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완벽하고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