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도 평영이 제일 어렵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수영도 하면 할수록 어렵다. 잘하고 싶으면 싶을수록 신경 쓸 것이 많다. 앞선 글에서 거듭 말했듯이 수영은 손끝에서 발끝까지, 겉근육에서 속근육까지 섬세하게 다루면 다룰수록 힘은 적게 들이면서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는 운동이다. 선수가 아닌 아마추어 동호인들은 할 때마다 타성에 젖지 않도록 스스로의 코치가 되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적당히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수영은 운동이 아니라 조금 힘든 물놀이가 된다.
가장 비효율적인 영법
평영을 할 때 가장 생각이 많아진다. 아니 생각할 것이 가장 많은 영법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일단 평영은 비효율적인 동작으로 이뤄져 있다. 한 번의 스트로크 파워가 뒤의 스트로크까지 거의 전달이 안 되는 영법이다.
일단 하체부터 따져보다. 다른 영법은 물을 누르거나 참으로써 생기는 반작용에서 동력원을 얻는다. 물론 평영도 발을 차는데서 동력원을 얻기는 한다. 그러나 그 힘이 가장 약하다. 힘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방법과 방향으로 하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발등을 쭉 펴서 공을 때릴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때리는 면도 많고 발목의 가동성도 크기 때문이다. 무릎은 뒤로 접었다 앞으로 펼 때 힘이 생긴다. 태권도 앞차기처럼 말이다. 허벅지 또한 엉덩이를 써서 뒤로 보낸 후 앞으로 보낼 때 가장 큰 힘이 생긴다. 결국 하체를 가장 강력하게 쓰기 위해선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평영은 하체를 개구리처럼 사용한다. 엎드린 상태에서 무릎을 몸 중심에서 접은 후 밖으로 휘돌린 후 다리를 피는, 그때의 회전운동에서 발생하는 힘을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여기에 발 또한 이렇게 돌아가는 무릎을 따라 몸 바깥쪽으로, 그러니까 발레리나가 서 듯이 발을 바깥쪽으로 펼친 후, 무릎이 돌아올 때 함께 일자로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힘을 얻는다.
자, 이제 상체로 가보자. 자유형과 배영은 물을 잡아 뒤로 밀어내는데서 힘을 얻는다. 배의 노와 같다. 접영은 이 동작을 두 팔로 동시에 할 뿐이다. 자유형과 배영은 몸을 꽁치처럼 길쭉하게 만들어서 소위 롤링이라 부르는 동작을 바탕으로 하여 어깨와 광배, 견갑골의 힘을 최대한 끌어낸다. 접영은 가슴과 척추의 유연한 움직임에서 동력을 얻는다. 바닥에서 꿈틀대며 가는 브레이크 댄스 동작처럼 말이다.
반면 평영의 상체는 다른 영법의 상체에 비하면 너무 얌전하다. 솔직히 중급반 때까진 앞으로 가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팔은 스트로크를 하다 말고 중간쯤에 멈춘 뒤 다시 손을 모아 앞으로 뻗는다. 그 과정에서 일단 상체가 물 밖으로 나온 뒤 다시 들어간다. 물의 저항이란 저항은 다 받는다. 그렇게 들어가서도 상체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최대한 신체를 수면과 평행되게 만들어서 그나마 약한 동력을 받은 신체가 1미리라도 더 갈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것이 전부다.
늘지 않는데 답도 없는 평영
이런 이유로, 남자들, 특히 나와 같이 골반과 무릎 관절이 뻣뻣해진 지 오래된 나이 든 남자들에게 평영은 고역이다. 나 또한 한계를 갖고 있는 몸뚱이를 갖고 최대한 완벽한 평영을 하기 위해 많은 궁리를 했다. 팔의 각도를 바꿔보고 물에 넣는 손 높이도 바꿔봤다. 평영 킥은 몇 번이나 바꿨는지는 셀 수도 없다. 아마 평영 킥에 관한 영상, 아니 수영 팁 영상 중에서 평영에 관한 영상이 제일 많지 않을까?
그 영상들을 볼 때마다 나도 조금씩 내 폼에 수정을 가했다. 어떤 건 도움이 됐고, 어떤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수영을 한 뒤에도 평영의 곤란함은 여전했다. 내 킥은 아줌마들보다 나가지 않았고 당연히 앞으로 나가는 거리도 짧았다.
그러다 우연히 애덤 피티의 평영 영상을 봤다. 십여 년 전에 내가 배웠던 평영 하고는 달랐다. 뭐랄까, 아주 격정적이었다. 물의 저항에 신경 쓰면서 최대한 곱게 물에 들어가라고 했던 십 년 전 강사들의 코칭을, 그야말로 개무시하는 평영이었다. 발도 대충 차는 것 같았다. 대신 그는 상체를 드는 각도가 다른 선수와 달랐다. 높은 각도에서 수면을 향해 박치기를 하듯이 들이박으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피치도 엄청 빨랐다. 물속에서 글라이딩 하며 멀리 가는 대신 더 자주, 더 빨리, 더 높이 나와서 격렬하게 들어가는 힘으로 앞으로 갔다. 그는 이 영법으로 세계 일인자가 됐다.
내가 찾던 평영
생각을 바꿨다. 상체 근육만 놓고 보면, 젊은 강사들을 제외하면 순위를 다툴만하다. 한 때 데드리프트도 제법 무겁게 쳤던 사람이라 허리힘에도 자신 있었다. 오케이, 그렇다면 나도 이 친구처럼 해보자. 물속에서 짧게 간다면 피치를 올려서 만회를 하자. 하체의 킥이 나를 앞으로 보내지 못한다면 높이 상체를 들어 올려 내다 꽂는 힘으로 앞으로 가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또, 마침 요즘의 젊은 강사들도 남자 회원들에게 그런 스타일의 영법을 권장했다. "더 올리시고 더 팍팍 꽂으세요."
이렇게 상체 쓰는 법을 훈련할 때, 새로 바뀐 강사가 평영 킥에서 발 사용법을 아주 섬세하게 가르쳐줬다. 덕분에 물 밖에서도, 물속에서도 에너지 효율이 좋아졌다. 그러나 이 효율을 높이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리듬과 완급조절이다.
손을 모아 물속에 들어간 후 팔을 벌려 글라이딩 할 때는 약간 느리고 부드럽게. 그러다 다시 팔을 모으고 상체를 들어 올린 후 물속으로 내다 꽂을 때는 빠르고 날카롭게. 그렇게 들어간 후 몸이 수면과 평행이 되기 직전에 킥을 위해 무릎을 구부리다가 평행이 된 순간 킥을 함과 동시에 팔을 벌리며 느리고 부드럽게....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슥~, 빡!, 툭. 다시 슥~, 빡!, 툭.
이런 나만의 리듬을 몸에 익힌 후부턴 평영의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몸 풀기를 위해 킥 패드를 잡고 평영 킥을 찰 때는 다른 남자 회원, 심지어 평영을 잘하는 여성 회원보다 느린 편이지만 실제 평영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나하고 맞지 않는 세상
평영이 어렵다고, 내 맘대로 안 된다고, 내 몸뚱이 하고는 맞지 않다고 좋아하는 수영을 그만둘 수 - 실제로 접영과 평영에서 쓴 맛을 보고 수영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 있나? 가슴 근육 키우는 데는 헬스를 제외하면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나.
살다 보면 정해진 방식이 나와 안 맞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맞는데 이상하게 나만 어색한 것이 있다. 그때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일단 그 세상의 방식이 나하고 안 맞을 수 있다.지금 하는 일과 직장이 나하고 안 맞을 수 있다.연애하는 족족 실패할 수도 있다. 그때는 별 수 없다. 제일 쉬운 방법은 다 관두는 것이다. 그 판을 떠나는 것이 제일 간편한 방법이다. 일도, 직장도, 연애도 때려치우고 갈아치우면 그뿐이다.
그러나 떠날 수 없다면 머물 방법을, 계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도, 직장도, 정말 좋고 맘에 든다면, 남들 다하는 연애 나도 하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혁신하는 수밖에 없다.
평영처럼, 상식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 규칙의 한도 내에서 내 몸에 맞는 각도와 리듬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내 몸과 평영의 접점을 찾듯이 찾아야 한다. 일과 직장에 나를 맞추고 요즘 연애 추세에, 요즘 여자, 혹은 남자의 취향에 나를 맞춰야 한다. 버티다 보면, 살다 보면 맞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마지막 방법
그런데 마지막 방법이 있다. 떠날 수 없다면 기다려야 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모범 답안도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면 낡은 것이 되곤 한다. 혁신적인 누군가가 등장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그 판을 해석하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자세를 제시하면 낡은 것은 버려지기도 한다. 혁신적인 생각과 방법이 내 몸과 삶에 딱 맞는 것일 수 있다. 그야말로 당신에게 맞는 시대와 세상이 온 것이다.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선, 그렇다, 일단 버텨야 한다. 세상의 상식과 나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깨울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그런 시대가 올 때까지 묵묵히 그 판을 벗어나지 않고 버텨야 한다. 내 장점과 매력을 무기로 만들어줄, 그것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줄, 심지어 그것을 그렇게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과거의 방법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임을 알려줄 그런 누군가, 그런 시대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 전에 그 판을 떠나면, 포기하면 다 소용없다.
십여 년 전엔 애덤 피티 같이 평영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니 떠날 수 없다면, 포기할 수 없다면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그날을 기다리며. 당신을 구원할 구루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