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업의 기쁨과 슬픔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5

by 최영훈

빠진 사람과 들어온 사람

달이 바뀐 것치고는 큰 변화가 없다. 우리 반의 50대 후반으로 추정 - 그렇다. 우린 서로의 나이를 추정할 뿐이다. 몇 살이냐고 물어볼 필요가 있나? 수영장에선 수영장의 경력이 존재할 뿐. 아 물론, 완전한 할아버지, 할머니는, 또 그렇게 보이니까 안 물어보는 것이고, 청춘은 또 그렇게 온전하게 보여서 안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 물어보는 사람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나이의 사람이다. - 되는 아저씨 한 분이 안 보였고, 새로 아가씨 한 명이 합류했다.


그 아저씨가 안 오시는 바람에 한 이틀 내가 4번과 5번을 번갈아 했는데, 여전히 잘 나오고 있는 그분의 딸에게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아버님, 어디 가셨어요?”, 딸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아, 아빠, 시간 바꾸셨어요.” 참고로 이 아가씨, 숨 찬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제는 스타트를 한 뒤, 잠영으로 25미터를 가버리더라. 그러니까 물속에서 숨도 안 쉬고, 이쪽에서 저쪽까지 갔다는 얘기다.

레인 간의 격차

새로 합류한 아가씨는 옆 레인에서 넘어왔다. 그 아가씨는 레벨 체인지, 레벨 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 자, 오프닝이 길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수영장은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뉜다. 우리 수영장은 예전엔 이 반들을 기초반, 교정반, 마스터반으로 불렀다. 몇 달 전부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수영장도 앞서와 같은 명칭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초급반이 맨 왼쪽의 한 레인을, 중급반이 맨 오른쪽의 두 레인을, 고급반이 중앙의 두 레인을 쓴다. 중급반의 두 레인 간 차이는 없다. 사람이 많다 보니 나뉜 것도 있고, 연령과 체력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또는 접영과 평영 실력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두 레인 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고급반의 두 레인의 격차는 크다. 고급 B반은 주로 60대 이상의 여성 회원이 주축이다. 그보다 어려 보이는 아줌마나 아저씨는 체력이 안 되거나 많은 운동량이 싫은 사람이다. 또 이제 막 중급반에서 올라온 아가씨와 총각들이 있다. 또, 작년의 나처럼, 오랜만에 다시 수영을 시작해서 일단 수영 체력부터 끌어올려야 하는 사람이 몇 달 머물기도 한다.


본전 생각

그런데 이 반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아니 왜 같은 돈을 내고 수영을 하는데 우린 왜 운동을 적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일단 절대적으로, 그러니까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운동량 자체가 적다. 대충 30퍼센트 정도 적게 한다. A반이 열 바퀴를 할 때, B반은 여섯 바퀴에서 많으면 여덟 바퀴를 한다. 힘든 접영의 경우엔 반 이상 적게 할 때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적은 횟수를 오래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A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적은 운동량을 소화한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일까?


우선. 랩 타임이 느리고 랩과 랩 사이의 휴식 시간이 길면 심폐지구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또 속도가 느리면 근지구력과 근력 향상에도 도움이 안 된다. 속도를 내기위해 팔을 빨리 젓고 부지런히 킥을 차야 근력이 생기기 때문다.


이 두 운동효과를 위해선 1번 주자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첫 번째 바퀴와 마지막 바퀴의 속도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치고 피곤하다고 속도가 점점 느려지면 많은 랩을 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 1번 주자가 욕과 찬사를 동시에 받는 것이다.

결국, 이런 이유로 B반에서 한가하게 수영을 하다보면 본전 생각이 난다. 그러나 바로 옮기진 못한다.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들기 때문이다. 따라갈 수 있을지, 너무 힘들지는 않을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상위 레벨의 벽

당연히 레벨을 바꾸면 힘들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작년 연말에 반을 바꿨을 때 몇 달은 따라만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현재 내 체력과 속도가 이 반의 1번과 2번, 심지어 3, 4번 주자에 비해 80퍼센트 정도 수준 밖에 안 된다고 봤다. 그래서 그 간격을 메우는 데 몇 달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그들과 같은 운동량을 소화해 내는 데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대충 올봄 정도 됐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이 맞춰졌다. 핀 수영의 경우엔 거의 동등한 수준이 됐고 자유형과 접영에서도 거의 같은 수준이 됐다. 물론 전날 술을 많이 마셨거나 전날 일 때문에 이런저런 에너지를 많이 썼거나 심지어 전날 밤에 흠... 여하간 그런 다음 날에는 몸이 안 따라 주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레인에 기대어 쉬는 순간이 있는 날이 많이 줄었다.


레벨 업의 고통과 후회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우린 레벨 업의 순간을 맞이한다. 학교, 일, 사랑, 종교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 때로는 욕심을 내어 레벨 업을 한 뒤에 후회를 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었다. 수준 높은 사람과 공부를 하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전력을 다하는 경험을 하면서 번 아웃을 겪은 적도 있다.


그러나 레벨 업의 순간을 회피하면 오늘의 수준에 머문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보겠냐는 제의가 왔을 때, 몇 백 페이지짜리 백서를 쓸 수 있겠냐는 제안이 왔을 때,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냐고 감독이 물었을 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에 대한 특강을 해줄 수 있겠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심사와 평가에 위원으로 참석할 수 있겠냐는 위촉 전화를 받았을 때, 그때마다 앞뒤 안 재고 덥석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제안은 내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기에 당연히 두려웠다. 그리고 실제로 하면서 버겁고 피곤함을 느꼈다. 그렇다. 힘들었다.


힘든 걸 알아도 해야 한다. 내일, 다른 수준의 나를 만나기 위해선 두려워도 레인을 바꿔야만 한다. 힘들지 않다, 좀 버티면 괜찮아진다는 강사와 다른 회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레인을 바꿨을 수도 있다. 힘들어서 후회가 들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계속 도는데 나만 레인에 기대어 한두 바퀴 쉴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저질 체력을 원망하며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달 참으면 그 아가씨의 레벨은 올라간다.


그 아가씨는 자유형을 할 때 아직 팔을 접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스트로크를 끝낸 팔을 머리 앞으로 보낼 때 쭉 편 채로 휙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접고 펴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특히 장거리 수영을 할 때 어깨의 부담을 덜어줘서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이 아가씨는 아직 그 자세를 터득하지 않은 상태로 올라온 것이다.

그래도 아가씨는 맨 뒤에서 열심히 따라왔다. 작고 마른 그 아가씨는 결연한 의지를 표정에 드러내며 묵묵히 따라왔다. 강사에게 평영과 접영의 폼을 지적받을 때마다, 그러니까 고급 B반에 있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던 부정확한 폼을 지적받을 때마다 집중해서 귀 기울여 들었다. 한두 바퀴 정도 쉬기도 했지만, 랩을 도는 동안엔 속도와 템포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젊기에, 빠르면 8월, 늦어도 추석 즈음에는 제법 체력이 많이 올라올 것이다. 순번도 맨 뒤를 벗어나 앞으로 치고 나올 것이다.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다시 B반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힘들어서 드문드문 나오지만 않는다면, 특히 가장 힘든 목요일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어느덧 내 앞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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