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형 만 미터를 산책하듯이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3

by 최영훈

육지의 기억을 버리기

물은 다른 세상이다. 수영을 배우는 건 그 다른 세상에서 앞으로 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땅을 딛고 사는 직립보행을 하는 존재이자, 그 육지의 삶에 맞게 기관이 진화 된 포유류인 인간이 육지에서의 이동과 생존의 기술, 그리고 거기에 맞게 진화된 자신의 본능과 육체를 잠시 잊고 새로운 육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수영장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건 숨쉬기다. 입으로 들이마시고 코로 뱉는다. 당연하게도 뱉을 땐 물 안에서, 마실 땐 물 밖에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반대로 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기에 금방 숨이 찬다. 게다가 공기보다 저항이 훨씬 강한 물을 가르며 앞으로 가다 보니 더 많은 근육을 더 강하게 쓴다. 수영을 제대로만 하면 온몸의 근육에 일을 시킬 수 있고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이유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 보면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 같고 이산화탄소는 늘어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상태가 되면 몸은 무거워진다. 그래서 폐활량이 늘어나고 소위 심폐지구력이 향상되면 당연히 수영이 편해진다. 더 적은 산소로 더 멀리, 오래갈 수 있다.


더 강해지고 싶어서

마라톤을 한참 하던 시기, 내 과제도 이거였다. 심폐지구력을 늘려 호흡을 빨리 되찾고 심박수를 적게 해서 덜 피곤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여러 훈련을 했었다. 마라톤 선수들은 고산지대 훈련을 하기도 하지만 동호인에게 가장 좋은 건 역시 인터벌 훈련이다. 같은 거리를 같은 시간 안에 들어오는 걸 반복한다. 횟수를 정해 놓고 하면 당연히 뒤로 갈수록 지친다. 그러나 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랩과 랩 사이엔 짧은 휴식이 있다. 길면 1분, 짧으면 30초. 그 휴식이 끝나면 다시 뛰고, 다시 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 처지면, 훈련의 효과는 나지 않는다.


산악 코스를 뛰거나 경사로를 뛰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내 경우엔 동네의 지형을 이용해서 경사로 훈련을 많이 했는데 대쉬를 하듯 빨리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동안 호흡을 되찾고 다시 빨리 올라가는 것을 반복했다. 인근의 작은 산들도 많이 뛰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 여름, 땡볕에도 묵묵히 십 킬로미터를 뛰던 시절이었다.


물속에서 걷는 것처럼

수영 강사들이 회원들의 심폐지구력을 올리기 위해 하는 훈련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인터벌과 하이폭식 훈련이다. 인터벌은 달리기 훈련과 비슷하다. 자유형 50미터나 100미터를 일정 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횟수는 열 번가량. 1번의 기량이 랩 타임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우리 반처럼 1번이 무자비한 경우 뒷 번들은 죽어 나간다.


하이폭식 훈련은 쉽게 말해 숨 참기 훈련이다. 자유형을 할 때 보통 스트로크 두 번에 한 번 호흡한다. 대부분 오른손이 스트로크를 끝낸 후 허벅지를 스칠 때쯤 오른쪽으로 호흡을 한다. 이론적으론 수경의 왼쪽 렌즈는 물속에 잠긴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 짧고 깊게 호흡을 하고 얼굴을 물 속에 다시 넣는다. 하이폭식 훈련은 이 횟수를 줄이는 훈련이다. 그러니까 스트로크당 호흡 횟수를 여섯 번에 한 번, 네 번에 한 번, 두 번에 한번 식으로 점차 줄여가면서 하는 훈련이다.


우리 반은 저번 주 목요일, 체력 훈련을 중점적으로 하는 날에 이 훈련을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섯 번, 네 번, 두 번 순으로 바퀴마다 줄이고, 네 바퀴째엔 이 스트로크 숫자를 순환하며 했다. 한 세트는 이렇게 총 네 바퀴로 구성됐고, 이 세트를 네 번 했다.


빨리 가도, 늦게 가도 힘들다.

이 훈련을 하면 상반된 현상과 이에 따른 미묘한 심리적 갈등이 생긴다. 일단 숨을 참고 가기 때문에 숨 쉴 때의 저항이 없어져서 속도가 빨라진다. 이건 좋다. 문제는 어찌 됐든 여섯 번의 스트로크를 한 후에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에 스트로크가 빨라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여섯 번을 빨리하고 숨을 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팔을 빨리 젓고 그만큼 발도 많이 차면 체내의 산소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숨이 더 빨리 찬다. 그걸 잘 아는 마스터반 회원들은 스트로크의 템포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숨이 찬다고 해서 평정심을 잃는 순간, 더 숨이 차기 때문이다.


여섯 번에 한 번의 첫 바퀴를 끝내고, 네 번에 한 번을 하는 두 바퀴째를 버틴 후, 두 번에 한 번 하는 세 번째 바퀴에 들어서면 그렇게 호흡이 편할 수가 없다. 순환 횟수의 네 번째 바퀴를 끝내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새로운 세트로 들어갈 체력과 의욕이 생긴다. 두 바퀴만 버티면, 다시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다. 어쩌면 다들 이런 생각으로 수영을 하지 않았을까?


폐활량과 심폐지구력을 높이기 위해서 종종 일정 거리를 무호흡으로 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앞으로 잘 나간다는 걸 느끼게 된다. 좌우 균형도 좋고 중심도 흐트러지지 않으며 물의 저항도 거의 없다. 접영도 마찬가지다. 무호흡으로, 얼굴을 수면에 넣고 하면 훨씬 잘 된다. 그러나 멀리 가기 위해선 숨을 쉬어야 한다. 숨을 쉬면서 가도 무호흡으로 갈 때와 같은 느낌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마스터 반이라면 말이다.

강사는 이 훈련이 끝난 후 이런 말을 했다. “이 훈련을 많이 하시면, 진짜 자유형은 걷는 것처럼 하실 수 있어요. 저도 선수 시절에 많이 했는데, 자유형은 시간만 넉넉하게 주어지면 만 미터도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여러분도 그러실 수 있습니다.”


물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걷는 것처럼 편하게 자유형을 하는 건 모든 수영 동호인들의 꿈이다. 적당히 템포만 유지한다면, 그리고 중간에 지루함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만 미터 정도는 산책하듯이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또한 수영 동호인의 꿈이자 바람이고. 그때를 기다리며 우리 모두는 물에서 걷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낯선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난 도전과 시련을 미화하여 말하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다. 무난하고 순탄하며 탈 없이 사는 삶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이십 대엔 여러 경험을 하고, 삼십 대엔 잘하는 일을 찾아 한 이삼십 년 그 분야에 종사해서 그럭저럭 그 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이 된 후, 남들 은퇴할 때 은퇴해서 죽을 때까지 큰 병치레 없이 조용히 살다가 죽는 삶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식도 이렇게 살길 바란다. 제 깐엔 거창한 꿈을 꾸지만 어디 아프지나 않고 커서 적당한 직업으로 밥벌이나 하면서 살길 바라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낯선 세계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살아 온 세계와의 결별을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클라이밍엔 수직으로 나아가는 그 세계만의 움직임이 있고 수영의 세계엔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있다. 난 대학 시절 축구와 농구를 제법 수준급으로 했고 기숙사와 교회의 그 종목 동아리의 리더로서 우승이라는 단맛도 봤다. 삼십 대에 들어서는 마라톤을 십 년 넘게 하면서 하프 코스는 90분 안으로 들어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루 걸러 십 킬로씩 뛰었고 집 근처 황령산은 제한 시간을 정해 놓고 뛰어올랐다.


육지의 경력 따위야

그러나 물속에선 다 소용없었다. 물은 내 육지에서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접해주지도 않았고 대우해주지도 않았다. 육지의 경력만 믿고 폼 잡고 있다가는 물속에 빠져 죽기 딱 좋았다. 고개를 숙이고 과거를 다 잊고 물속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건 꼴사납다. 우아하지도 않다. 물이라는 세계에 적응하는 초보자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일단 버텨야 한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나면 나태해진다. 그러나 더 적은 힘으로 더 멀리 가기 위해선 하이폭식 훈련 같은 걸 해야 한다. 앞으로 가는데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훈련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더 오래, 멀리 가고 싶다면, 그래서 다른 차원의 레벨로 접어들고 싶다면, 강사의 말처럼 걷는 것처럼 수영을 하고 싶다면 훈련을 해야만 한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공부와 글쓰기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만족한다면, 훈련은 필요 없다. 그러나 더 능숙한 사람, 다른 수준,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고 싶다면 도전해야만 한다.


물론 다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목요일에 사람이 가장 적다. 힘드니까. 힘든 날을 피하는 사람은 같은 돈을 내고 같은 기간 수영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체력도 늘지 않는다. 열 바퀴를 돌라고 하면 두 바퀴 돌고 쉬고, 세 바퀴 돌고 쉰다. 심지어는 남보다 십 분이나 이십 분, 심지어 삼십 분 일찍 수영장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난 모든 사람이 도전과 시련을 겪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모든 회원이 목요일을 반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른 레벨에 있는 나를 보고 싶다면 숨을 참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해야 한다. 세트를 다 끝내고 나면 햄 스트링이 올라오고 종아리에 쥐가 나곤 하는 목요일의 고통을 반겨야 한다. 자유형 만 미터를 산책하듯이 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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