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수영을 오랫동안 해 온 아내가 내게 수영을 권했다. 그전에 내가 좋아했고 평생을 하고 싶어 했던 스포츠 클라이밍을, 위험하단 이유로 그만두게 했던 것이 미안했기 때문인지도. 말리던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었던 것이, 그때 난 이미 15미터가 넘는 실외 암벽을 타고 있었고, 그걸 타면서 의외로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준비를 더 해서 진짜 “암벽”을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계속 암벽을 탔으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물과는 초면
수영을 배우기 전 난 물놀이도 제대로 해본 적 없다. 호텔 수영장은 고사하고 야외 수영장도 한번 가본 적 없다. 나뿐만 아니라 수영을 처음 배우러 온 사람들은 물이 낯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운동 자체가 처음인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뭘 처음 가르쳐야 할까? 발차기? 호흡법?
우릴 가르친 강사는 물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데 주력했다. 발차기 같은 기본 수업이 끝날 때쯤, 우리 전체를 레인 밖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 후 일렬로 세운 후 눈을 감고 어깨동무를 하라고 했다. 자신이 셋을 외친 후에 일제히 물을 향해 뒤로 누우라고 했다. 물을 믿고 자신을 던지게 하는 것이다.
빠진다고 죽을 일은 없다.
그렇다. 대부분의 수영장은 1.4에서 1.7미터 사이다. 이보다 수심이 낮은 곳이 더 많다. 물론 국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수영장은 수심이 2미터가 넘고 그 이상이 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런 수영장은 광역시도 안에서도 하나, 잘해야 두 개 정도다. 그러니까 축구 전용구장만큼 적은 것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도 수심이 1.4미터다. 남녀 불문하고 어지간한 성인이 똑바로 서면 머리가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수영을 처음 하는 사람에겐 이 물도 두렵다. 설 수는 있지만 그 물속에 머리를 넣을 수는 없다. 강사는 엎드리고 누우라고 하는데 그러면 빠질 것만 같다. 강사가 힘을 빼면 뜬다고 하는데 그 말이 자신이 들은 거짓말 중에서 가장 뻔뻔한 거짓말 같다.
결국 킥 판을 잡고 온몸에 힘을 주고 뒤에 귀신이나 미친개가 쫓아올 때 도망가치는 것 마냥 죽으라고 발을 찬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뜰 수 있다. 서 있는 상태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잠시 참은 채 힘을 빼고 부드럽게 엎드리면 몸은 뜬다. 폐의 부력이 우리를 그렇게 잠시 뜨게 하는 것이다.
힘이 잔뜩 들어갔던 시절
얼마 전 대학원 동기를 만나서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젊었을 땐 뭐든지 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내 능력과 내 열정만 믿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일만 그랬나. 사랑도 그랬다. 초보자가 킥 판을 잡듯이 내게 온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그 사람과 그의 일상을 완전히 장악하려 했다.
일도, 사랑도, 돈도, 세상도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꼭 붙잡고 이 악물고 애써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 나이를 두 번 살 수 있다면 두 번째 맞는 이십 대, 삼십 대에는 좀 힘을 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면 두 번을 살아도 남아도는 힘을 믿고 또 그렇게 힘을 잔뜩 주며 살지 않을까?
힘을 빼야 뜬다.
수영을 하여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편하게 몸을 물에 띄울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 가는 건 그다음. 삶의 어떤 순간, 아니 어쩌면 삶의 중요한 고비일수록 이렇게 힘을 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순간, 그 힘들고 어려웠던 젊은 날의 순간에 그걸 알았더라면 조금 더 수월하게 그 시기를 헤처 나갔을지도 모른다. 힘이 빠진 나이가 되어서야 그때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딱, 한 장씩만 써야지 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살짝 넘어버렸다. 계속 이렇게 한 장 정도의 글을 연재해보려 한다. 쉰에 다시 시작한 수영이 내게 가르쳐주는 뭔가를 함께 나눠보려 한다. 더 나아가 내가 해 온 다양한 스포츠에서 배운 지혜도 함께.
사족..
새벽에 잠을 깨, 생각나는데로 제목을 메모해봤더니 열두세 개 가량이 나왔다. 그 후엔? 그건 그때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