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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16. 2023

어느덧 사라진 추억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1

 無題(무제) - 박재삼     


大邱(대구) 近郊(근교) 과수원

가늘고 아늑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평택역 광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쌀쌀한 3월, 대학에 진학 후 집에서 보낸 첫 주말이 끝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지척에 강과 평야가 있는 평택역엔 이른 봄이나 가을엔 종종 옅은 안개가 끼곤 했다. 역에 다가가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맑고 단정한 사람. 내 얼굴엔 분명 놀라움이 얹혀 있었을 것이다. 다가가니 말없이 웃었다. 그 미소에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대전으로 가는 표를 사려고 창구로 다가가자 작은 지폐 만 한 무궁화 열차 표 두 장을 팔랑팔랑 흔든다. 한 장은 천안까지, 한 장은 대전까지. 날 기다린 첫 번째 사람, 그 사람의 첫 번째 기다림. 누군가 날 기다려준다는 것이 이토록 좋은 거였구나, 이때 처음 알았다.      


오랫동안 봐 온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 성가대에서 몇 년 동안 그녀의 뒤통수를 봐왔는데 어느 날 불쑥 사랑이 되어 버렸다. 맑고 단정한 사람이다. 목소리는 낮고 행동엔 군더더기가 없다. 대학교 4학년에도 그녀는 여전히 소녀 같았다. 화장을 했던가? 그녀의 언니 결혼식 때는 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알토였고 난 테너였다. 그렇게 몇 년을 성가대에서 함께 보냈는데 왜 그제야 사랑에 빠졌을까?     

 

일 년 넘게 뒤통수를 봤다. 그때는 신을 믿을 때였다. 내 사람이 아니면 이 마음을 걷어가 달라고 빌었다. 이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신이 준 것이 아니기에 신이 가져갈 수도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남보다 늦게 대학에 갔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스물넷, 늦깎이 1학년, 군대도 중졸 학력 덕분에(?) 겨우 동네에 있는 예비군 대대에서, 마지막 방위로 마친, 세상 물정 모르는 남자였다.    


가을이 와도, 겨울이 와도 그 사랑이 머물렀다. 대학에 합격하고 기숙사도 된 마당, 대전에서 머물면, 그렇게 눈에서 안 보이면 이 사랑도 물러가겠지 생각했다. 사랑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사랑의 난폭함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한다.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떠나기 전, 고백이라도 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레옹>. 평택의 작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전통 찻집에 갔다. 마주 앉았다. 고백을 했다. 그녀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난, 두서없이, 이 단어와 저 단어의 공백을 잇기 위해 애쓰면서 말을 이어갔다. 좋아하게 된 이유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듯이 포기하는 이유도 그러했다. 갖다 댄 핑계는 이랬다. 난 홀어머니 밑에 자란 사람이고 넌 지역에서 유명한 목사의 딸이라 어머니가 이 사랑을 꿈도 꾸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이라도 토해내야 편히 갈 것 같아 말을 한다. 들어줘서 고맙다.     


쌀쌀했다. 움츠린 어깨를 택시에 밀어 넣었다. 택시에서 이런저런 농담을 했다. 나한테 혹시라도 시집이 오고 싶으면 좋은 오디오나 하나 사와라. 그녀는 피식 웃기만 했다. 교회가 보이는 언덕 아랫길, 함께 내려 언덕을 올라갔다. 그녀가 지나가듯 말했다. 이제부터 돈을 모아야겠네. 좋은 오디오를 사려면.      


다음 날, 그녀는 선배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갔다. 가기 전 집에 전화를 했다. 올라가서 연락하겠다고. 생각을 다듬어 말하겠다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됐다. 알고 보니 그녀 또한 오랫동안 날 마음에 두고 있었다. 둘 다 너무 달랐기에 지나갔다. 아까운 세월이다.      


그렇게 맞이한 3월의 어느 아침, 그녀는 예고도 없이 평택역에서 날 기다렸다.     


이 시는 그녀가 내게 처음 가르쳐준 시다. 그녀는 국문과였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녀보다 더 시집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현재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이 시를 몇 번이나 읽었다. 읽을 때마다 걸리던 부분은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였다. 비단은 왜 허리에 감겨 있는 걸까? 비단이, 그 부드러운 비단이 왜 아플까?      


그 통증의 이유는 마흔이 넘어서야 깨달아졌다. 기차는 느렸다. 비둘기호도, 무궁화도 느렸다. 아마 시인이 청춘일 때, 그래서 사랑에 한창 일 때는 더 느렸을 것이다. 멀리 있는 사람을 보기 위해선, 그 사람과 반나절이라도 보내기 위해선 새벽같이 기차를 타야 했을 것이다. 해가 뜨기 전에 기차를 타도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었을까? 서울로 가든, 부산을 가든 아슬아슬했을 것이다. 여정을 부산으로 잡아보자.     


기차가 이제 막 대구를 지난다. 과거, 제일 빨랐던 새마을호라고 해도 한 시간 이상을 더 가야 한다. 벌써 아침이다. 얼마나 일찍 출발한 걸까? 기차도 나름 애를 쓴다. 레일도 달아오르고 기차의 디젤 엔진도 달아오른다. 그러나 가장 달아오른 사람은 연인을 향해 가는 사람. 기차를 빨리 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애가 타고 조바심이 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휴대폰도 없던 시절,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은 전할 길 없이 불덩이처럼 고스란히 가슴에 엉겨 붙는다. 누군가 무심히 어디 가냐고 물으면 툭하고 울음이 터질 것 같다. 간신히 달려가는 마음을 부둥켜안고 들썩이는 몸을 의자에 묶어 놓는다.      


마음도, 몸도 애가 달을 때, 꽃의 향기도 비단의 스침도 치명적이다. 작은 울림에도 부서질 마음, 왈칵 쏟아질 눈물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고난의 길이다. 몸보다 먼저 달려가는 마음을 달래며 가는 길이다. 나도, 그녀도 그랬었다. 그녀는 몇 번인가 천안에서 내리지 않고 대전까지 날 따라왔다. 나 또한 천안에서 몇 번 내렸다. 어느 평일에는 학교를 마치고 불쑥 대전에 내려왔었다. 또 볼 수 있다는 기약이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이길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이십여 년 전만 해도 그날, 그 찻집과 택시 안에서 나눴던 대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몇 시쯤에 만나서 몇 시쯤에 돌아왔는지도, 다음 날 통화를 하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목소리와 말과 말 사이의 짧은 공백과 그 공백을 메웠던 숨소리까지.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녀와 영화를 보러 가던 날 그녀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그러나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솔직히 그녀의 얼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월의 힘은 이토록 난폭하기에 무섭다. 이름 석자만 간신히 기억에 붙들려 있다. 이름이라...     


이 시집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이 시집 전, 박재삼 시인이 출간한 열두 권의 시집에서 본인이 엄선하여 모은 시선이다. 판본을 찾아봤다. 1995년 5월 30일 출판된, 1판 7쇄 본을 대전의 문경서적에서 샀다. 나오자마자 산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헤어진 뒤, 샀을 지도. 시가 그 의미를 나중에서야 말해주듯 사랑의 소중함은 왜 항상 늦게 알게 되는 건지.      


사랑 이야기,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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