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접어드니 은채가 노래 하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라조 밴드의 슈퍼맨이라는 노래였죠.
왜 부르냐고 물으니 자기 반이 이번 학예회 때 할 율동곡이라고 합니다. 며칠 지나니 은채는 대강의 안무를 외워서 집에서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은채야, 어린이집에서 했던 것보다 동작이 좀 쉬운데?”
“그래?”
어린이집에서는 보통 길면 6개월, 짧아도 3개월은 연습했습니다. 아무래도 애들이 어리다보니 곡도 일찍 고르고 안무 외우는 게 쉽지 않아서였겠죠. 또 기왕에 발표회 할 거, 일곱 살 반애들은 제법 난이도 있는 안무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좀 다르겠죠. 교과 과정으로 인해 연습 시간이 한정 되어 있기에 이십 명 가량의 아이들이 고루 잘 할 수 있을만한 노래와 안무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학예회는 11월 20일이라고 하니 대략 한 달 반 정도 연습하는 것이겠죠.
안무는 탬버린을 이용하여 경쾌한 분위를 살리는 게 핵심입니다. 그다지 복잡한 건 없고 대신 1학년다운 발랄함이 강조 됐습니다. 선생님의 지시로 은채를 비롯한 여자 애들은 남자 애들을 붙잡고 개인 교습을 해준다고 합니다. 은채는 자기 짝인 영찬이와 책벌레 세인이를 맡았다고 합니다. 애들은 은채 말을 잘 듣고 잘 따라준다고 합니다. 하다가 맘에 안 들면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하게 하는, 제법 엄격한 선생님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춤 연습 중이던 11월 중순, 은채가 상을 받아 옵니다.
물론 다들 여러 학원을 보내다보면 한 두 개 정도는 분기별로 받아오죠? 특히 태권도, 무용, 미술, 음악 등과 같은 예체능 학원은 교육의 성과를 학부모한테 어떤 형태로든 알려야 하니까요. 은채는 저번에 나갔던 주산 암산 대회에서 입문부 은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는 나가면 다 주나보다 생각했지만 수고 했다고 칭찬해줬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죠. 문화센터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 이거 나가면 다 주는 상이죠?”
“아니에요. 어머니, 은채 진짜 똑똑한 애예요.”
아내는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받을 만해서 받았다는 말말이죠. 물론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들뜨지 않으려고 애썼죠. 괜히 애한테 바람을 넣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러나 거의 일 년 동안 매주 금요일 늦은 오후에 지하철을 타고 가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주산을 배워온 은채에겐 큰 의미가 있는 상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걸 동행한 저에게도 뜻 깊은 상이고 말이죠.
덕분에 일 년이면 두어 번 가볼까 말까한 백화점을 한 달에 네 번, 매주 꼬박꼬박 갔습니다. 은채가 공부하는 동안엔 근처 중고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끝나면 같이 근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봐서 저녁을 해 먹거나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같이 오곤 했습니다. 그런 반복되는 시간들 속에서 은채의 주산, 암산 실력이 조금씩 늘어갔고 요즘엔 세 자리 숫자까지 주산으로 하고 있죠. 그리고 대회도 나갔고 말이죠.
며칠 후엔 미술 학원에서 상장을 받아 왔습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창의 교육 관련 협회에서 주최한 미술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죠. 주제는 추석 풍경이라고 하던데 은채는 휴게소 풍경을 그릴 까 하다가 그냥 산소에서 밥을 먹는, 그러니까 자기 말로는 소풍하는 정경을 그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 상을 받은 후에도 엄마는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고 원하는 대답을 들었죠.
부시 정권 시절, 국무장관을 했던 콘돌리자 라이스가 피아니스트 수준의 피아노 실력을 갖춘걸로 유명했죠. 요요마와 협연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지만 정작 본인은 피아니스트로는 더 크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소련학을 공부한 뒤 공직에 접어들었고요. 이 방향전환의 유연함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은퇴 이후에 다시 음악을 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고요.
전 예체능을 하면 공부는 거의 전폐하다시피 하던 시절에 초중고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 친구들은 뒷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오후가 되면 나가서 훈련을 했죠. 의정부에서 유명했던 빙상, 유도, 축구 같은 종목의 운동부 선수들은 거의 그랬습니다. 아니 아마 백퍼센트 그랬을 겁니다. 중학교 때도 다르지 않았죠. 대학 때는 음대나 미대 친구들이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음악과 미술에만 매진하는 걸 보곤 했습니다. 이십대 초중반, 심지어 후반까지 그렇게 그 세계에 빠져 살다가 정작 세상에 나오면 그걸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그제 서야 알게 되는 기숙사 선후배, 동기들을 많이 봤죠.
그러나 요즘은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은채 친구 중 하나인 박지유는 취미로 피겨를 배우면서 상도 받고 있고, 은채가 발레를 배울 때 가보니 그저 체형 교정과 성장을 위해서 발레를 배우는 친구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원은 등하교의 편리함과 부모의 맞벌이로 인해 퇴근 때까지 있어야 될 장소 확보를 위해 다니는 친구들도 많더군요.
은채는 이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파스텔, 아크릴 등 다양한 미술 재료의 질감과 색감을 이해하고 사용법을 익혀 왔죠. 물론 다양한 사물의 스케치를 통해 사물의 입체감과 평면감도 익혔고요. 그러나 이것들이 은채의 생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다, 의상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주산의 매력에 빠져 통계학과나 수학과를 갈지도 모르고 박물관을 좋아하는 은채답게 고고학이나 역사를 전공할지도 모르죠. 아니면 정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길에 서 있을지도 모르고요.
부모는 어쩌면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지도를 자녀와 함께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지도는 가능성의 지도이죠.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견딜만하던 시절에는 부모의 삶의 방식대로 자식이 살아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살아낸 방식과 상식으로 자식의 미래를 점치는 건 그야말로 점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아주 낮은 확률의 선무당의 점이겠죠. 그래서 지금 부모가 해줘야 하는 일이란 학원, 학교의 방과후 교실, 다양한 책, 풍부한 체험이 가득한 여행 등으로 은채가 다양한 가능성의 이정표 가득한 지도를 그리게 하고, 학년이 올라갈 수록 그 지도를 매 순간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내일의 지도는 오늘과 달라질테고, 중학교의 지도는 초등학교의 지도와 또 달라지겠죠. 은채가 지도의 어떤 길, 어떤 지점을 선택하든지 간에 그것이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이고, 갈 수 있는 길이길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 지금 제 마음입니다. 상은 그저 그 길 어딘가에 놓인 작은 이정표에 불과하겠죠.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수많은 이정표들이 계속 세워질 테고 은채는 그 이정표들을 찬찬히 보면서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늠해 볼 것입니다.
그 미지의 세계, 미지의 시간을 살아낼 은채를 위해 전 오늘도 매일, 같은 잔소리를 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