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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an 11. 2024

그대가 그리운 이유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09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 시를 처음을 읽은 건 대학 때였다. 이십 대 초반. 난 이 시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읽다가 외우려 했다. 내가 외우려고 애쓴 시는 이 시와 조지훈 시인의 <승무>, 딱 두 편 밖에 없다. 잠시 곁길로 나가서 <승무> 이야기를 하자면, 이십 대에 들어 뒤늦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내가 산 국어 참고서에 <승무>가 실려 있었다. 거기서 이 시를 처음 봤다. 몇 번을 읽었다. ‘참 좋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심상이 어떻고 행과 연이 어떻고 무슨 파가 어떻고 저떻고는 둘째였다. 일단 이 시를 외우고 싶었다. 내게 있어 <승무>는 그런 시였다.      

류시화의 이 시도 그랬다. 그러나 조지훈의 시가 그랬던 것처럼 이 시 또한 읽을 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미처 가슴에 와닿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대가 곁에 있는데 그대가 그립다는 말은 내게 너무 먼 말이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너무 멀었다. 현실과도, 내 이성과도.


젊었을 땐 영원한 사랑을 믿었다. 영원한 사랑은 없고 청춘은 언젠가 끝난다는 예감은 아직 날 찾아오지 않았다. 죽음이 찾아오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관에서 퇴장하는 관객처럼, 이 세상에서 쓸쓸히 사라질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조차 실감할 수 없었다. 죽음의 운명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이 사랑이 끝나지 않을 것이고 믿었던 시절이, 내 사랑에는 그런 엔딩이 찾아올 리 없다고 믿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사랑을 시작하면 눈앞에 있는 사랑뿐이었다. 이별도, 그리움도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몰랐다기보다는 모른 척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누가 그것을 모르겠는가. 아무리 사랑의 무게가 지금보다 무거웠던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매일 붙어 다니던 캠퍼스 커플도 헤어지곤 했고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지 않았던 여자도 있었으며 취업에 성공한 놈이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느닷없이 혼자 남은 남녀 동기를 위로하기 위해 불어 터진 면발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라면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를 함께 마셨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사랑이 끝난 곳에 말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취할 뿐이다.     

술이 깨면 다시 사랑을 꿈꿨다. 청춘은 불길함을 찍어 누르는 힘이 있었다. 내일의 불안도 오늘의 만취로 덮어버릴 수 있었다. 1막이 끝난 후 2막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도 모르면서 거침없이 사랑의 서사를 밀고 나갈 수 있었다. 불확실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내일도 맨몸으로 맞서 살아낼 수 있는 열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사랑의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단 그 끝이 오기 전 마음껏 사랑하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랑은 새 사랑이었고 모든 사랑은 그렇게 서툴렀고 모험이었다. 우린 많이 다쳤고 많이 울었으며 많이 취했다.


시로 돌아가자. 시인이 썼듯 사랑은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문다. 육체의 경계, 공간의 경계만이 아니다. 앞선 시에서 매창이 토로했듯 한잔 술이 되어 연인의 심신으로 스며들고 싶은 강렬한 욕망으로 인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계다. 네가 숨을 쉬면 그 숨은 내게 들어오고 널 안으면 너의 뼈와 살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너에 품에서 내 청춘이 바스러지고, 내 품에서 너의 숨결이 뜨거운 꽃으로 피어난다.      


시인이 말한 그리움은 이런 사랑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그리움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움은 사랑과 달라서 눈앞에 없는 존재를 향한 마음이다. 모든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 이별이든, 죽음이든- 끝나기에 필연적으로 그리움을 잉태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평범한 진리를 예감하는 사람일수록 지금 이 순간 힘껏 사랑한다.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건 언젠간 사라질 사랑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 시에는 다른 맥락의 그리움이 있다. 불교 관련 서적을 많이 번역했던 시인의 세계관을 고려하면 이 그리움이 더 절대적이지 않을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나와 오늘 인연을 맺고 있는 부모, 형제, 연인, 배우자와는 수 없이 반복된 전생에서 크든 작든, 길든 짧든, 어떤 형태로든 스쳤던 존재들이다. 그 영겁의 스침이 누적되어 오늘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스침의 인연들이 켜켜이 포개진 끝에 이 생에서 널 만난 것이다. 이렇게 깊은 인연이 된 것이다. 물론 우리는 모른다. 몇 번째 전생에서, 어느 곳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스쳤는지 알 수 없다. 당연히 그때의 모습 또한 알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전생의 수많은 스침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 속절없는 수많은 스침의 반복 끝에 이렇게 널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드디어, 기어코, 이제야 널 만났으니 말이다.      


같은 이유로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한 생이 끝나면 또 얼마나 많은 생을 살아야, 그 생의 윤회 동안 얼마나 많이 스쳐야 널 다시 마주 볼 수 있을 것인가. 알 수 없다. 기약할 수 없다. 눈앞의 소중한 사람에게 더 간절한 마음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궁금하다. 요즘엔 어떤가? 요즘의 청춘들은 어떤가? 죽을 만큼 사랑하나? 이 생에서 만난 소중한 그 사람, 이 생이 끝나고 나면 얼마나 긴 영겁의 윤회를 겪어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까?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건너들은 사랑은, 후배와 알고 지내는 청춘들의 사랑은 가벼워 보인다. 쉬어 보인다. 사랑도 헤어짐도 쉽다. 사랑의 고백도, 헤어지자는 통보도 간편하게 전달된다. 그래서인지 연인도 많고 다시 홀로 된 이도 많다. 어느 쪽이든 쉽다. 오해인가?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이 쉬어 보이는 사랑을 쉽게 못하는 청춘들도 많다. 이 시에 빗대어 말하자면 나를 내어주고 내 안에 너를 들이는 것이 사랑인데, 나를 견고히 지키느라 네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청춘들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당장에 먹고살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니 당연하지 싶다. 안타깝다. 사랑은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랑하기 좋은 때는 있다. 그때가 청춘이 아니면 언제겠는가? 시의 구절이야 나이 들어 깨달아도 그만이다. 그러나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지금이다.     


서정윤과 도종환이 스타였던 시대에 십 대를 보낸 후 들어선 이십 대에 이 낯선 시인을 만났다. 당시 유행했던 조지 윈스턴의 음악을 닮은, 뉴 에이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이 시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불교와 명상, 정신 수양 등의 내용이 담긴 책들을 썼고 번역했다. 번역한 저자로는 틱낫한과 달라이 라마, 크리슈나무르티 등이 대표적이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까지, 난 그의 책 몇 권을 읽었다. <삶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이 생각나고 그가 번역한 칼리 지브란의 시집과 그가 엮은 법정 스님의 책도 읽었다. 그중에서 이 시가 든 시집은 약간 따로 놓아도 되지 않을까?     


판본을 보니 초판 1쇄는 1991년 9월 12일에 나왔다. 난 1995년 12월 11일에 나온 초판 52쇄를 샀다. 당시엔 대형 서점에선 결제 완료 된 책엔 일종의 택을 붙여줬다. 워낙에 책 도둑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뒤표지 안쪽에 택배 송장을 축소해 놓은 듯한, 우표 크기만 한 택이 붙어 있다. 대전에 있는 대훈 서적에서 샀다. 당시 대전엔 대훈이라는 이름을 단 세 곳의 서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택에는 그 세 곳의 서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역전통 - 난 이곳에서 샀다. - 에 있는 건 대훈서적, 법원 앞에 있는 건 대훈문고, 동양백화점 옆에 있는 건 대훈서관으로 불리었던 모양이다. 이 시집의 가격은 3천 원, 뒤표지 안쪽에 독자카드라는 엽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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