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꿈꾸는 애들이 많다. 딸도 그런 꿈을 꿨었다. 지금은 그 꿈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꿈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반면 딸의 친구들 중엔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한 애도 있다. 오랫동안 봐왔기에 외모도, 성격도, 끼도, 그 직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심지어 그 부모도 그걸 알기에 자식의 꿈을 귀담아듣지도, 마음에 두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 아이 또한 아이돌이 꿈이라 말할 뿐 아이돌이 되기 위해 뭔가 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이 끝나고 중학교에 올라가면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객관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다른 꿈을 꾸지 않을까? 아니다. 어쩌면 기획사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스타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 여정에 들어선 많은 아이들이 오랜 시간 스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긴 세월을 바친다. 마치 과거, 노량진에서 몇 년씩 고시 공부를 하던 수험생처럼 관련 학원과 기획사와 연습실에 시간과 땀을 받쳐가며 이런저런 오디션의 문을 두드린다. 그 결과, 설령 타고난 외모와 끼에 노력이 더해져 노래와 춤에 능해지고 연기까지 잘하는, 그야말로 21세기 K 컬처에 걸맞은 아티스트로 활동하기에 손색이 없는 인재가 되어서 연예계의 좁은 문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스타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다.
알다시피 매달 수십 팀의 아이돌 그룹이 쏟아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배우와 모델을 꿈꾸는 이들의 프로필이 크고 작은 기획사에 뿌려지고 있다. 우리 팀이 광고 모델을 섭외할 때도 이렇게 뿌려진 프로필 중 몇 개를 받는다. 그 프로필엔 자신의 사진과 함께 상세한 이력이 실려 있다. 출신 학교를 시작으로 잠시 얼굴을 비쳤던 드라마, 누가 봤을지, 아니 누가 보기나 했을지 궁금한 지자체에서 만든 목적이 불분명한 웹 드라마, 몇 년 전 잠시 스쳐 지나가듯 출연했던 광고와 같은 작품 목록을 차곡차곡 쌓아 놨다. 이걸로 먹고사는 것이 가능 키나 한지 걱정이 될 정도다. 그들은 그 꿈의 가능성의 끝과 마주할 때, 어떤 선택을 할까?
꿈에서 깨어난 후
딸이 보는 유튜브를 함께 보다 보면 지금 현재 빛나고 있는 아이돌에 대해서도 알게 되지만 그 수명이 다해, 마치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인공위성처럼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 전직 아이돌의 사연도 알게 된다. 그들은 섬광처럼 빛났던 시절을 뒤로하고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하며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들에겐 이미 아이돌의 시간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누군가는 아이돌을 발판 삼아 더 큰 별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잠시 반짝이다 떨어지는 혜성처럼 그렇게 일상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 삶은 괜찮은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꿈이 업이 될 때, 그것도 그저 겨우 입에 풀칠할 수준의 생계만 유지하게 해주는 직업이 되어, 그 직업으로 삶을 유지하다 나이를 먹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꿈꿨던 일을 하게 됐는데 그걸로 먹고살기 힘들고 그 일이 내 삶을 남루하고 비루하게 만든다면 우리 그 꿈에 배신당한 걸까? 그 꿈에 배신당한 삶은 실패한 삶일까? 재빨리 현실성 없는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직업을 선택하여 여유 있는 삶을 산다면 그건 내가 내 꿈을 배반한 것일까? 그 삶은 꿈을 잃어버린 삶일까? 이런 질문들을 영화는 던진다.
꿈으로 생계를 이어갈 때
필자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막연히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했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노래도 하지 않고 악기도 다루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학에 들어간 후, 음악으로 먹고살 수 없고 유명해질 수도 없다면 적성에 맞는 다른 일을 찾아 그에 맞는 공부를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쉰이 넘은 요즘엔, 그 꿈이 생계의 수단이 되어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다면 그 꿈과 동행하는 삶도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 때문에 구청장이나 시장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다 보면 지역 축제 현장을 만나곤 한다. 그 축제들 대부분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축제가 아닌 그야말로 지역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만 한 축제다. 그런 축제에도 초대 가수가 나온다. 물론 나도, 당신도 알지 못하는 가수다. 이들은 대체로 지역 가수 협회 등에 소속되어 있는, 그야말로 로컬 대중음악가로, 평소엔 자영업 등으로 생계를 꾸리다 누군가 불러주고 설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가수”로 변신하는 이들이다.
난 이들의 무대를 볼 때마다 놀라곤 하는데, 우선은 그들이 자신만의 곡을 부른다는 점에 놀라고, 다음으로는 관객의 큰 호응을 부를 정도로 열정적으로 무대를 장식한다는 점에 놀란다. 아, 세 번째 얘기를 안 했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결국, 그들의 무대를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안 84의 메시지
얼마 전, 웹툰 작가이자 현대미술가인 기안 84가 그의 모교에서 한 강연을 봤다. 내용이 솔직했다. 그의 말처럼 꿈의 TㆍO(Table of organization)는 적다. 이 단어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조직도를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조직도는 당연하게도 피라미드 형태여서 위로 올라갈수록 그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적어진다. 사병부터 시작하는 피라미드가 장성에서 정점을 군대처럼 말이다.
그렇다. 꿈이 클수록 TㆍO는 적다. 꿈의 이미지와 상상이 클수록 이 TO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화가가 되는 것, 화가 중에서도 유명화가가 되길 바라는 것 사이에는 TㆍO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당연하게도 꿈이 클수록 좌절도 크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것이다.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하자면, 꿈은 삶의 양상에 변화를 줄 뿐 삶 그 자체의 완성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꿈의 성취가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그 행복의 영구함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불꽃놀이는 별보다 화려하지만 아무 의미도, 날도 아닌 어느 평범한 화요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면, 그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 계절에 따라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별이 아니던가?
꿈이 이뤄지지 않아도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이어나가는 삶에 대해, 2007년에 나온 <즐거운 인생>이나 2012년에 나온 <댄싱퀸> 같은 영화는 우리에게 작은 힌트를 준다. 각자의 모양대로 살던 이들이 과거의 꿈과 다시 만난다. 전자의 영화는 그저 그걸 다시 즐기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의미를 회복하고 행복을 찾는다. 후자의 주인공의 경우엔 남편이 정치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이 두 영화를 기억하며 다시 기안 84의 강연으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해 보자. 그는 후배들에게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돈도 많이 벌어야 돼요.”라고도 했다. 참 솔직한 말이다. 열심히 살고 돈을 벌라는 것은 결국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말고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가고 해야 할 일을 하라는 말이다.
당신은 아름답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을 두고 여러 말이 있다. 15세기에 나온, 부처의 생을 다룬 석보상절엔 아(我)답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을 “아름답다.”의 기원이자 참 뜻으로 보는 이도 있다. 또, 한글 고어엔 “알움답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알움”이 깨달음을 의미한다는 말도 있고, 앎의 움, 즉 앎의 싹이 내 안에서 새롭게 돋는 것을 의미한다고는 말도 있다.
그 기원의 진위 여부는 학자들에게 맡기고 이 두 갈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아름다운 삶이란 결국 나답게 사는 것이고 자신을 늘 새롭게 깨우는 삶이 아니겠나?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할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시 말하건 데, “뭔가”가, “누군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희망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참 아름답게 보이는 나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