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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꽃이 숨어 있다.

딸과 함께 꽃을 보네 09

by 최영훈

틈에 숨어 있던 것

2월, 첫 주는 매섭게 추웠으나 둘째 주는 견딜만하다. 이상하게도 첫 주에 더 따뜻했다. 아내가 딸을 위해 보일러를 더 세게, 짧은 간격으로 틀어댄 탓이다. 덕분에 세상은 혹한에 난리인데 집은 찜질방 같았다. 그 혹한이 물러가자 보일러는 예전의 온도와 주기를 회복했고 집은 평소의 온도로 돌아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


혹한이 오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안일은 있다. 설거지와 빨래를 해야 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내놓아야 한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낮에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았다. 그렇게 잘 쌓아 놓고 뒤돌아서는데, 빌라 화단의 돌 틈 사이, 삐죽이 자라난 들풀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낯이 익다. 기억하기로는 저 잎사귀 위로 꽃이 달려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꽃은 아직 그때가 안 되어서 나오지 않은 것이리라. 이리 짐작하고 스마트 폰을 열어 꽃 사진 폴더를 열어 봤다. 광대나물이었다.


눈 ; 꽃과 밖의 경계

앞서 다른 글에 썼듯이 나무든 풀이든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제까지 없던 꽃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꽃이 튀어나올 리가 없다. 식물은 혹한 속에서도 그 나름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딸이 학교에 입학한 뒤, 방학 때도 열리는 방과 후 교실에 딸을 데려다 주기 위해 등굣길을 거의 매일 걸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바로 맞이하는 봄방학, 겨울과 봄 사이의 어느 날, 부산시립박물관의 담장길이 끝나고 조각공원 산책로가 시작되면 두 그루의 목련 나무가 맞아 준다. 목련 나무는 평화공원에 다다를 때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그루, 세 그루씩 무리 지어 있다. 그 밑을 지날 때, 딸에게 목련꽃의 눈을 보여줬다.


꽃눈이 뭐냐고 물었다. 눈은 꽃을 품고 있는 무엇이라고 설명했다. 잎도, 줄기도, 가지도 아니고 꽃도 아닌, 그 모든 것과 구분된 꽃을 품고 있는 무엇이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가능성의 시각화, 상징물 그 자체가 아닐까? 눈은 꽃이 마주할 세상과 식물 내부, 그 경계에 있는 존재다. 식물학자들은 그 상태, 그 존재를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으나, 내겐 그 경계, 긴장과 이완을 한 몸에 품고 있는 존재다. 우리는 그 눈 안에 얼마나 크고 예쁜 꽃이 준비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꽃을 잉태하고 있는 그 경계적인 상징물은 우리에게 꽃에 대해 아무런 힌트를 주지 않는다.


눈이 언제 꽃이 되는지 알 수 없듯이, 광대 나물에 언제 꽃이 필지 알 수 없다. 늦겨울, 발밑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들꽃들은 잎과 줄기에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묵묵히 꽃을 준비하고 있다. 그 연약하고 낮고 작은 몸 어딘가에. 눈이 있는 나무들보다 더 은밀하게 안으로, 안으로.


하루, 하루 다르게

아이가 언제 크는지 모른다. 한 때는 자고 나면 크는 것 같았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 가서도 한 해, 한 해가 다르더니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봄과 겨울의 모습이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될 때, 그 계절마다 찍힌 사진을 비교해 보면 아이는 몇 개월 사이 달라져 있었다. 성장의 과정을 보이지 않는 아이는 매일매일 크고 있었다. 매일, 아이의 사진을 찍는 어떤 이의 강박이 이해가 간다.


나이가 들면 딱히 변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옆에 찍힌 나도 변했다. 좋게 말하면 중년이 됐고 편히 말하면 늙었다. 마흔에 낳은 아이가 열두 살이 됐으니 난 쉰두 살이 됐다. 쉰두 살에겐 어떤 상이나 기념식이 열리지 않지만 열두 살의 소녀는 졸업식을 맞이했다.


학교의 공지에는 부모와 아이가 편지를 써 서로 낭독해 주는 순서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졸업생이 백이십 명가량 밖에 안 된다고 해도 부모 한 통, 아이 한 통 하면 이백 통이 훌쩍 넘어가는 편지를 다 읽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며칠 후, 부모들의 민원이 있었는지 그 계획은 취소됐다. 대신 회장과 그 부모만 편지를 서로 읽어주기로 했다.


그 추후 공지가 오기 전,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내가 쓰기로 했다. 읽는 것도 내가 하기로 했다. 쓰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읽는 것이 걱정이었다. 끝까지 울지 않고 읽을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어린이집 졸업식을 보면서도 눈물을 글썽였던 아빠였다. 초등학교 졸업식 땐 더하지 않겠나. 게다가 병원에 입원하여 항암 치료를 하는 중에 잠시 외박을 나와, 가발을 쓰고 참석하는 졸업식인데, 그 모습을 마주하고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했었더랬다. 취소가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편지는 썼다. 컴퓨터로 쓴 뒤, 손으로 옮겨 적었다. 오랜만의 육필 편지다.


사랑하는 딸에게.

은채야 졸업을 축하한다. 너에게 더 긴 축하 인사를 하기 전, 너에 초등학교 생활을 지켜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 아빠가 오래전에 했던 말의 정정부터 해야겠구나.


돌잔치 날, 널 축하하러 오신 분들 앞에서 감사 인사를 했었다. 그때 아빠는 인사 말미에 너를 흙처럼 물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키우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이 다짐에서 두 가지 부분을 정정하려 한다.


우선, 내가 바라는 바대로 널 키우겠다는 말이 정말 오만한 말이었음을 깨달았기에 그 말부터 다시 삼키련다. 넌 내 딸이지만 아빠의 기대와 바람을 훨씬 뛰어넘은 딸이었고 딸이다. 앞으로도 그런 딸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에 목표는 아빠의 예상을 언제나 뛰어넘었으며 너에 꿈은 아빠의 상식너머에 있었다. 그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네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과 열정의 강도는 아빠가 살면서 만나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 너를 아빠의 상식과 경험의 틀 안에서 키우겠노라고 선언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그때의 발언을 철회한다.


다음으로는, 흙처럼 물처럼 키우겠다는 말을 정정하고 싶구나. 물론 네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 필요함의 희귀성에 있어서 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할 것 같구나. 흙이라면 이 지구상에 얼마 없고 그것을 품고 있는 땅도 적다는 희토류 같은 흙일 테고, 물이라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이거나 예수가 기도를 하여 포도주로 바꿨다는 기적의 물일 것이다. 설령 평범한 물이라 하더라도, 넌 그 물을 얼려 그 위에서 김연아보다 더 우아하게 꿈의 날개를 펼칠 것이다.


과거의 말을 정정하여 건넸으니 이제 네 미래를 향해 몇 마디 말을 건네련다. 우선, 어떤 아픔에는 이유가 있지만 모든 아픔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살면서 어떤 형태의 아픔이 오든 그 모든 아픔에 일일이 합당한 이유와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면 좋겠구나. 우선은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회복한 후에 그런 원인을 찾아도 늦지 않으니 아픔이 오거들랑 우선은 견뎌내고 이겨내는 데 전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같은 맥락에서, 어떤 성공과 실패의 이유엔 너의 몫도 있으나 세상과 시기의 몫도 있으니 성공이든 실패든 오롯이 너를 원인 삼지 말고 운과 세상 탓으로 돌리지도 말아라. 성공하면 기뻐하되 거기에 너무 취해 있지 말고, 실패하면 아쉬워하되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시도하거나, 다른 길을 찾도록 해라.


마지막으로 어떤 말보다 꼭 하려는 말을 남기련다. 너에 아빠인 것이 아빠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다. 아빠라는 호칭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이름이다. 너를 사랑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고, 네 곁에서 너를 돌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었으며, 너에 웃음소리를 듣는 일이, 네 얼굴을 마주한 채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여,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울 때마다 너를 사랑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쉬웠고 너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렇다.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해라. 물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고백하건대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다시 말하니,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스스로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가라. 아빠가 상상할 수 없는 넓은 땅으로, 높은 곳으로, 경지(境地)와 지경(地境)을 초월하여. 그렇게 나아가다 힘이 들 거들랑 잠시 쉬어도 된다는 것, 이 또한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새로운 도전을 눈앞에 둔 딸에게, 2025년 2월 12일, 수요일, 아빠가.


두 장의 사진

수요일, 졸업식날 비가 왔다. 화창한 화요일, 병실 창으로 건너편 산과 맑은 하늘을 보면서 일기예보가 틀리길 바랐으나 이번엔 제대로 맞았다. 다행인 건 식이 진행되는 동안 비가 그쳤다는 것. 식이 끝난 후 세 살 때부터 친구인 지유와 사진을 찍었다. 5학년 때부터 친구였고 입원 후에도 화상통화와 메신저로 응원과 위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온유와도 사진을 찍었다. 꾸준히 말을 걸어주고 위로해 준 온유의 어깨를 잠시 안아줬다. 계속 연락하라고 말을 하고 엉덩이를 두세 번 두드렸다. 녀석에게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졸업장을 받으러 졸업생 한 명, 한 명이 단으로 나아갔다. 미국식이다. 몇 명 되지 않으니 가능한 것일 테다. 딸은 맨 끝 반, 5반이다. 아이의 이름을 담임교사가 부르면 아이는 단상을 가로질러 걸어가 교장 선생님이 건네주는 졸업장을 받았다. 그 걸어가는 사이 재미있는 동작을 하거나 “엄마 아빠 사랑해.”, “친구들아 사랑해.”와 같은 구호를 외치는 아이도 있었다. 그 뒤로는 아이의 사진 두 장이 보였다. 한 장은 1학년, 막 입학한 지 한두 달쯤 지난을 때 찍은 사진, 한 장은 최근에 6학년 봄에 찍은 사진이다. 아이들은 컸다.


부모도 실감했을 것이다. 6년의 세월, 같은 길을 그저 열심히 다니며 학교에 보냈을 뿐이다. 먹이고 재우고 사랑을 줬을 뿐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컸다. 졸업이다. 학교가 낯설어 집에 가겠다고 울던 녀석도, 급식을 거의 먹지 않아 엄마와 담임 교사의 애를 태우던 녀석도, 학교에 우산과 재킷을 사흘이 멀다 하고 두고 오던 녀석도, 그렇게 커버렸다. 훌쩍, 너무나 커버렸다.


몰랐다. 아마 다들 몰랐으리라. 6년의 시간이 이렇게 금세 지나갈 줄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이렇게 눈부시게 클 줄은. 배냇저고리를 입고 속싸개에 팔까지 쌓여 조리원에 집에 들어와 방 한 편의 작은 자리를 차지하며 누워있던 녀석이 아침마다 자기 방문을 벌컥 열며 나오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나 아내나, 또 모든 부모들은 그저 하루, 하루 정성을 다해 키웠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인생 첫 번째 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이다.


느닷없이 피는 꽃처럼, 아이가 왔다. 그리고 컸다. 최대한 많은 순간을, 그 성장과 변화의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에, 그리고 기억 속에 담아두려 한다. 그러나 놓치는 순간이 있다. 기억 속에 빠져나가는 추억들이 있다. 사진이 있다. 사진을 본다. 성에 안 찬다.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기억하려 한다.


병실이다. 토요일에 퇴원이다. 그다음 주 월요일 항암 주사를 맞고, 그 주의 나머지는 쉬고, 다시 그다음 주 월요일에 주사를 맞고, 나머지는 쉰다. 이런 주기가 한 번 더 남았다. 병실에서 보내는 일주일이 아직 더 남아 있는 것이다.


3월이리라. 딸과 함께 찾아보던 작은 봄 들꽃들은 다들 고개를 내밀테고 매화는 그 고고한 자태와 향기로 겨울을 물리치고 있으리라. 그 매화 곁에서 목련도 힘을 보태리라. 그 한판승부가 끝나고 난 뒤에 야리야리한 벚꽃이 뒤이어 피고 모과꽃도 피리라. 병원 앞은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운대 아닌가. 다시 병원에 오지 않길 바라며, 그 벚꽃 앞에서, 병원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많이 찍어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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