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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놓인 꽃의 의미

딸과 함께 꽃을 보네 11 - 닭의장풀

by 최영훈

사랑 이야기

가난한 여대생이 있다. 고아다. 공부를 잘해 꽤 유명한 국립대에 진학했지만 학비 걱정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어느 날, 대형 강의실, 한 남자가 눈에 띈다.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 출석 체크도 하지 않는다. 기회가 되어 물어보니 학생이 아니다. 시대에 안 맞게 도강(盜講)이다. 청강도 아닌 도강이라니. 정말 시대에 맞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대학과도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시하고도 어울리지 않는다.

남자는 큰 키에 깊은 눈매를 가졌다. 누가 봐도 사회에 적응 못할 사람이다. 마음이 곱다. 그 마음에 끌려 만남을 이어가는데, 어느 날 고백할 것이 있다면서 산에 데리고 간다. 그 산에서 야경을 보던 남자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아한 늑대로의 변신. 여자는 그래도 좋다고 한다. 둘은 함께 살게 되고 딸과 아들을 낳는다. 그러다 남자가 사고로 죽게 되고 여자 혼자 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사정상 시골로 이사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의 줄거리다.


꽃과 눈과 비와 봄

여자의 이름은 일본말로 하나, 꽃이라는 뜻이다. 태어날 때, 뒤뜰에 심지도 않은 코스모스가 피어 있어 그리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꽃처럼 웃다 보면 이겨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담았다고 한다. 남자의 이름은 없다. “그”다. 큰 딸의 이름은 유키, 눈이고 아들의 이름은 유메, 비다. 결국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나온다. 등장인물로도, 꽃으로도. 역설적이게도 이름이 없던 “그”의 이름은 봄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바람이거나.


이 영화엔 꽃이 많이 나온다. 꽃은 시간의 흐름을 말없이 보여준다. 이른 봄의 봄맞이꽃과 까치밥, 화창한 봄날의 프리지어와 나팔수선화, 여름날의 도라지꽃과 장마철의 수국과 닭의장풀까지. 꽃들은 때론 남겨진 사람이 견뎌내는 애도의 시간, 그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남자가 죽은 뒤, 그의 운전면허증을 영정삼아 차려진 추모의 공간, 그 앞에 놓인 꽃들은 술붓꽃과 봄맞이꽃, 그리고 수국으로 이어진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아이들도 큰다.


꽃의 의미, 의미 있는 꽃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은 닭의장풀이다. 앞서 바위취와 함께 습한 그늘에 자리 잡고 있는 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두 남녀가 막 살림을 시작했을 때, 창가에 놓인 유리병에 이 꽃이 꽂혀 있었다. 그 꽃을 보면서 ‘아, 누군가에겐 저 꽃이 참 소중한 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소박한 공간은 파랗고 화려하지만, 여름이면 흔한 그 꽃으로 인해 생기가 돌았다.


여자가 뽑아 왔는지, 남자가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 흔한 꽃은 작은 유리병에 정성스럽게 꽂혀 있었다. 누가 뽑아왔든 타박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어떤 꽃이든 함께 보면 좋았던 것이리라. 그 옆에 흰 꽃도 놓여 있었는데........ 찾아보니 이질풀이다. 그야말로 어디서나 자라는, 흔하디 흔한 풀이고 꽃이다.


닭의장풀은 접시꽃, 수국과 함께 일본의 장마철을 대표하는 꽃이라고 한다. 영화에선 비가 자주 내린다. 중요한 장면마다 비가 온다. 남자가 늑대인 채로 죽을 때도, 여자가 괴로워할 때도, 늑대의 삶을 선택한 소년을 찾아 여자가 산을 헤맬 때도 비가 온다. 닭의장풀은 수국과 함께 비와 어울리며 영화의 핵심 역할을 맡았는지도. 한 장면 나온 그 꽃이.


애도의 꽃

가난한 여자와 존재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남자가 만나 애를 낳고 키웠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였나, 여자가 심한 입덧으로 기력이 없자 남자는 꿩을 잡아 보양식을 해줬다. 가난하다고 사랑까지 빈곤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다. 둘째를 임신해서도 입덧이 심해지자 남자는 그녀를 위해 다시 꿩 같은 뭔가를 잡기 위해 시도를 하다 늑대인 채로 죽는다. 사람이 잡을 수 없는 뭔가를 잡기 위해 늑대가 됐었고 알지 못하는 불의의 사고로 도심의 하천, 그 복판에서 늑대인 채로 발견됐다.


늑대로 죽었기에 여자는 남자의 시체를 거둘 수 없었다. 죽은 들짐승은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거둘 수 없었으니 당연히 장례도 치러줄 수 없었다. 여자는 남자처럼 반은 늑대, 반은 사람인 아이들을 키우며 남자를 애도한다. 그 애도를 위해 흔한 꽃들은 그녀의 손을 거쳐 추모의 꽃으로 변모했다. 평범한 꽃이 플로리스트의 손에 붙들려 특별한 곳에 머물러 유일한 의미를 발생시키듯, 마음이 담긴 꽃은 새로운 이름과 생명을 얻는다.

의미의 발생

이 영화를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철학으로 살아온 두 존재의 만남, 또는 언제나 아웃사이더로 남을 수밖에 없는 세계 밖 존재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존재의 피어남이 무엇에 달려 있는지 묻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소박하게 놓여 있던 꽃들과 꽃이 이름이었던 여자, 끝내 이름을 알 수 없었던 남자, 그리고 비와 눈의 이야기를 통해.


꽃이든 사람이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이 영화의 사내아이처럼 자신의 존재와 그 존재의 머물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다. 만남을 통해 의미를 찾고 의미를 발견한 뒤 결별한다. 우리가 하나의 글에 담아내는 낱말과 문장들, 궁극적으로 글에 담긴 의미 또한 같은 운명이다.


모음과 자음은 나름의 질서에서 나와, 서로를 만나 하나의 소리를, 그것들은 다시 만나 낱말을, 낱말은 낱말과 만나 문장과 의미를 만든다. 썰물과 밀물이 끝이지 않는 바다처럼 의미의 바다는 이렇게 끊임없는 만남과 결별 속에 넓고 깊어진다.

우리가 인생에서 얻는 의미 또한 같은 운명이다. 인생엔 나무의 나이테처럼 만남과 결별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그 강도는 각기 달라서 어떤 것은 깊은 상처를, 어떤 것은 긴 홈을 남겼다. 양각과 음각처럼, 만남이 만든 의미는 밖으로, 결별이 만든 의미는 안으로 파고들며 그렇게 한 인간의 고유한 무늬를 만든다. 그 모든 무늬는 결국 한 인간의 선택의 결과다. 만남과 결별이 그렇듯.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선택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산다. 잠시 걸치고 있는 그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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