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꽃을 보네 13
처음 선물 받은 꽃의 이름을 기억한다.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맞은 첫 봄.
그녀가 날 보러 왔다.
품에 카라를 안고 있었다.
당시, 학교 정문 앞은 어수선했다. 2차선 도로를 두고, 정문에서 1시 방향으로는 남자 고등학교의 정문을 보고 있었고, 그 2차선은 15도 정도의 오르막으로 이어져 그 위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끝났다. 등교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환자와 그 가족들은 4차선 도로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이 2차선 도로를 걸어 올라와야 했다. 때문에 2차선 도로 양쪽으로는 잡다한 가게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었다.
밥집과 술집, 비디오방과 노래방, 약국과 슈퍼마켓이 한겨울 지하철 좌석처럼 어깨를 비비며 자리 잡고 있었다. 노점상도 몇 개 있었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노점상들은 떡볶이와 어묵, 순대, 붕어빵과 국화빵 따위를 팔았다. 오전부터 밤까지 그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자정까지 이어지던 시기였고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야간 대학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혼잡한 길을 나와 정문을 지나면 공중전화 부스가 두 개 있고, 그 뒤를 향나무가 병풍처럼 남자 기숙사를 가리고 있었다. 우리는 정문 옆의 담과 향나무 가로수 안에 옴폭 들어간 곳에 숨어 살고 있었다. 남자 기숙사 경험이 없는 학우들은 거기에 기숙사가 있는지, 졸업할 때까지 몰랐다.
3월말의 어느 날, 정문 앞에 그녀가 카라를 들고 서 있었다. 연한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환하게, 그러나 약간 멋쩍은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사귀기로 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반가움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아마 표정으론 드러났으리라. 그녀는 집에서 만든 약밥을 싸 왔다. 예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한 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봐 왔으니 그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모든 소란과 잡다한 풍경이 사라졌다. 그녀를 닮은 꽃이, 꽃을 닮은 그녀가 거기 있었다. 이십 년 넘게 살면서 여자가 날 보기 위해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 적은 처음이었다. 당시 이미 다른 대학의 4학년이던 그녀는 봄날, 새 학기, 복잡하고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정문의 분위기를 단숨에 제압했다. 그 힘은 우아함이었다.
다니던 중학교는 3층 건물이었다. 3층에 1학년, 2층에 2학년, 1층에 3학년이 있었다. 3학년 때, 1반이었는데, 창 밖에 밋밋한 나무 하나가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어지럽혔다. 개학을 하고 좀 있으니 그 나무에 꽃이 폈다. 하얀 조개 같은 꽃이 천천히 올라왔다. 목련이었다. 내가 목련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전에 어디선가 봤겠지만 “꽃”으로 다가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삼촌, 이모 덕에 알고 있던 노래가 생각났다. <하얀 목련>. 창 밖에 핀 목련을 보며 노래의 가사를 더듬거리며 떠올려 봤다. 슬픈 노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피고 거리에 연인들은 많은데 난 혼자 걷는다는 독백이다. 봄이 되어 꽃이 폈는데 사랑이 떠났던 추억만 생생하다. 마지막 구절은 더 슬펐다.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이때부터 목련과 이 노래를 좋아했다.
우아함은 쓸모의 밖에 머문다. 모든 단어와 사람과 물건이 쓸모를 찾아 분주할 때 우아함은 홀로 있다. 우리가 지리멸렬한 삶과 욕망과 욕구가 앞서는 서툰 사랑과 욕심을 앞세우다 실패하곤 하는 직업과 사업에 지쳐 마음이 황폐해지는 동안, 우아함은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진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무엇으로 인해 한순간 삶이 빛난다면, 우린 지금 우아함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봄바람과 멀리서 들려오는 운동장의 소음을 뒤로하고 파란 하늘에 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3점 슛의 궤적과 림도 건들지 않고 오직 망만 건들며 들어가는 공은 우아하다. 딸이 롱 보드를 타고 큰 S자를 그리며 예술회관의 돌기둥을 유연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은 우아하다. 고급반의 중년 여성이 완벽한 접영을 하는 모습은 우아하다.
김연아의 트리플액셀과 김하성으로 시작하는 6-4-3 병살, 혹은 다르빗슈의 등 뒤를 지나 2루 베이스를 타고 넘어가는 안타성 타구를 잡아낸 뒤 공중에서 잠시 머물며 방향을 바꿔 1루로 정확히 송구하는 플레이는 우아하다. 스테픈 커리의 중앙선 부근에서 던지는 3점 슛의 궤적과 니콜라 요키치가 동료에게 뿌려주는 거의 모든 패스는 우아하다.
에디 히긴스(Eddie higgins)의 <Shinjuku Twilight>의 서두를 장식하는 제이 레온하트(jay leonhart)의 활로 켜는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우아하다. <화양연화>에 나온 양조위의 슈트와 장만옥의 치파오와 그 영화에 나온 냇 킹 콜(Nat King Cole)의 <Te Quiero Dijiste>는 우아하다. 물론 그의 노래 중 가장 우아한 노래는 <Orange Colored Sky>이지만, 그를 좋아했던, 어쩌면 사생활을 제외하면 가장 우아한 미국 대통령일지 모르는,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가 가장 좋아했던 그의 노래는 <September Song>이었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두 버전의 남자 주인공, 1968년의 스티브 맥퀸(Steven McQueen)과 1999년의 피어스 브로스넌(Pierce Brosnan), 둘 다 우아하며, 피어스 브로스넌(Pierce Brosnan)은 역대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중 가장 우아한 제임스 본드다. 우아한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의 가장 큰 실수는 피어스 브로스넌과 함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출연한 것이고.
흰색 옷이 없다. 누군가 패션 철학을 물으면 할 수 있는 대답은 흰색과 검은색 옷은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흰색 옥스퍼드 셔츠가 딱 하나 있는데, 그마저도 대학 시절 산 것이다. 양말은 흰색 양말이 제법 있는데 다 두툼한 스포츠 양말로, 미군 부대 앞에 살던 시절 신던 그런 양말이다. 국내에선 구할 수 없어서 일부러 처제가 미국에서 사다 줬다. 그 외 흰색 옷은 없다.
흰색은 실용성이 없다. 때문에 독보적이다. 쓸모없음이 그 쓸모를 입증하는 색인 것이다. 꽃과 닮아 있다. 꽃은 쓸모없다. 꽃의 쓸모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농부와 식물학자뿐이다. 꽃의 미학은 쓸모와 구조가 아닌 형용사로 표현된다. 소박하고 화려하고 우아하고 다소곳하며 열정적이며 수줍다. 그 외, 우리가 꽃을 볼 때 느끼는 모든 감정들은 쓸모의 합리성을 우회하여 꽃으로 향한다. 우아함처럼.
매화가 핀 집, 건너편 집에 백매(白梅)가 폈다. 역시 막대기 하나에 잔가지들이 겨우 붙어 있는 작은 나무인데 어떻게 꽃들은 용케도 소담하게 붙어있다. 여린 가지들이 버틸, 딱 그만큼 꽃이 피는 건지, 아니면 가지들이 꽃의 무게를 헤아려 더 가지를 굵게 만들 필요가 없는 건지, 길을 사이에 둔 두 매화나무는 그렇게 한결같은 굵기와 크기로 마주 보고 있다. 만족을 넘어 자족이라는 말은 어쩌면 이 두 나무에게만 쓸 수 있는 건지도.
사진 파일들을 넘겨보니 흰 꽃 천지다. 노각나무, 치자꽃, 부추꽃, 목련, 장미, 흰금강초롱, 백매, 백접초, 조팝나무와 이팝나무, 블루베리 꽃, 흰색 세이지, 옥매화, 샤프란, 만첩빈도리와 말바도리, 산딸나무, 수국을 닮은 하얀 설구화까지....... 예전에는 왜 그렇게 안개꽃이 유행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빨간 장미에 안개꽃을 곁들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안개꽃에 빨간 장미를 곁들였던 것인지도.
울산의 작업실 근처엔 작은 꽃집이 있다. 울산대학교와 울산과학대학 부근이라 그런지 꽃집의 크기에 비해 부려 놓은 꽃들의 종류와 차림이 많고 넓다. 이번 주엔 그중 흰 꽃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어 찾아보니 라넌큘러스다. 6차선 도로를 접한 인도에 내 놓인 흰색 라넌큘러스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지하철을 탄 신부 같았다. 영화 <졸업>에서 버스에 올라탄 신부처럼. 도대체 누가 이 꽃들을 사갈까. 누군가 이 우아함을 알아보고 가져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실로 향했다.
덧없음과 싸우고 있다. 저항하고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 더 맞겠다. 아이가 아픈 이후 세 달 넘게 보내면서, 특히 삼주에 한번 꼴로 일주일간 병실에서 밤을 보내면서 우리가 그렇게 집착했던 것들의 덧없음과 마주했다. 간호사들의 스테이션을 두르고 있는 약 이백여 미터의 원형 복도를, 딸을 운동시키기 위해 함께 걸으면서 수많은 환자들과 스쳤다. 같은 환자복을 입고 셋 중 두 명은 딸처럼 머리카락이 없는 암 투병 환자들이었다. 딸이 언젠간 말했듯이 그저 000 환자님으로만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밖에서는 직장과 직함과 지위가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서는 그저 000 환자님이다.
밤마다 병상의 딸을 보면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딸이 견뎌냈던 것들, 참아냈던 것들, 노력했던 것들, 들여온 시간들, 그리고 경쟁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얻어냈던 성과들을 생각했다. 나와 아내의 그런 과정과 결과들도 돌이켜 봤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이 하나의 질병으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실제로 목격했다. 마주했다. 나와 아내의 소망도, 딸의 소망도 오직 딸의 건강, 그것뿐이었고 병원 안의 환자들의 소망 또한 오직 그것뿐이다. 그 외의 것들은 건강에 비하면, 생존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다.
이런 생각 끝에,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까지, 덧없음과 싸우고 있다. 저항하고 견뎌내고 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때나 새로 들어갈 프로젝트를 위해 열심히 조사하고 분석하고 기획서를 쓰다가도 문득 그 “덧없음”이 몰려온다. 책을 읽거나 열심히 수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면한 하루를 전력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과 그 전력의 덧없음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언젠간 이 줄다리기가 끝나리라. 기다리며 오늘도 종일 싸웠다. 물러서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