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꽃을 보네 15
올봄엔 꽃이 늦게 피어 향도 늦다. 그러나 우리 빌라 화단엔 도착한 향이 있다. 며칠 전, 딸이 부탁한 <새콤달콤>과 맥주를 사러 막 빌라 현관을 나서 화단을 끼고 코너를 돌아서는데 좋은 향이 났다. 수선화는 아직 그 초록색의 창끝에 살짝 꽃의 조짐을 보일 뿐이다. 앞집 화단의 수선화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건가, 킁킁대며 향을 쫓다 보니 막대 사탕처럼 동그랗고 작은 나무 앞에 당도했다.
보자, 이 나무, 이 꽃의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이 두 개다. 천리향과 서향나무. 향이 천리를 간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그 향이 매력적이다. 꽃이 만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향이 짙다. 이름값을 한다. 다들 더디 오는데 혼자 애쓴다. 알아듣지도 못할 테지만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이런 쓸데없는 말뿐임을 알기에 말을 던지고 돌아섰다. 그렇다.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나.
사람이 만든 색은 없다. 사람이 만든 향도 없다. 사람이 제 아무리 잘났어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세상에 없던 향을 만들 수는 없다. 모든 색은 자연으로부터 왔고 사람은 그저 제 마음껏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까마귀는 자신의 털이 검은색으로 불리는지, 백합은 자신의 색이 흰색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그 색의 지음과 부름은 다 사람끼리의 놀음일 뿐이다. 향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 세상에 내뿜는 것이라곤 악취뿐이다. 그나마 좋은 향은 자연의 것을 훔쳐 덮은 것이거나 자연의 것을 제 마음대로 섞어 그럴듯하게 이름 붙인 것이다. 은목서 향이 주 테마인 내가 쓰는 남성 화장품의 이름이 Urban Calming인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만든 색은 이 색과 저 색의 섞음이거나 색 위에 번쩍이고 미끈거리는 뭔가를 덧씌운 것뿐이다. 모든 빛을 흡수한 검정에서부터 가시광선 전체를 반사하는 흰색에 이르기까지, 모든 색은 태양과 지구, 빛과 사물의 만남과 결별 속에 탄생한다. 사람은 그저 볼 수 있는 색만 보며 이름을 붙일 뿐이다. 태초의 인간부터 지금까지 해 온 일이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듯 사람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만든 향에도 이름을 붙인다. 꽃과 바다, 산, 숲, 비, 햇살, 사계절, 이 나라와 저 나라, 열대와 온대, 툰드라와 시베리아와 사막과 늪의 이름을 가져온다. 그거로도 모자라면 형용사를 남발한다. 명사와 형용사의 남발과 그럴듯한 서체와 포장을 통해 향은 겨우 소비자에게 설명된다.
향은 바람을 타고 온다. 제대로 바람을 탄 향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다들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카피라이터 일을 막 시작했을 때, 달리기에 미쳐 있었다. 거의 매일, 십 킬로미터 넘게 달렸다. 당시 혼자 살던 원룸이 부경대학교 정문 앞 동네에 있었는데, 그곳에서부터 광안리 끝자락에 있는 방파제, 거기서도 가장 끝인 등대까지 뛰어갔다 왔다. 그러면 왕복 십 킬로미터 정도인데, 이십 킬로미터를 뛰고 싶으면 거기서 수영강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해운대로 접어들어 파라다이스 호텔까지 갔다 오면 됐다.
그렇게 달리기에 빠져 있는 동안, 당연히 폐활량이 커졌다. 또 달리다 보면 온몸이 간절히 산소를 원하기에 살짝만 숨을 들이마셔도 바깥공기가 훅 들어온다. 그럴 때, 갑자기 담배 냄새가 훅 덮칠 때가 있다. 그러면 뛰던 와중에도 냄새의 진원지를 찾지만 대체로 한 번에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시야가 탁 트인 남천동의 삼익 비치 아파트 옆의 산책로를 달릴 때조차 “범인”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멀리 있다. 백 미터도 넘게, 멀리 떨어져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서 있다. 심지어 걸으면서 점점 멀어질 때도 있다. 그 거리를 건너 내게 냄새가 온 것이다. 냄새는 그렇게 공기에 실려 퍼진다. 자신의 의지는 없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나머진 바람과 후각의 일이다.
자연의 향도 마찬가지다. 꽃과 나무는 향을 만들 뿐 그걸 멀리 퍼뜨릴 생각이 없다. 좋은 향이든, 나쁜 냄새든 맡는 사람만 맡을 수 있을 뿐이다. 둔감하고 무심한 사람에겐 향은 말을 걸 수 없다. 미국에선 스노우 벨이라 불리는 고광나무 꽃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부산시립박물관 뒤편의 돌계단은 부산시립문화예술회관으로, 좀 더 가서 나오는 박물관 사무동 옆에 있는 쪽문은 조각공원으로, 조각공원 길은 다시 유엔묘지 후문과 평화공원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박물관 내부의 산책로는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다.
그 길을 수도 없이 갔을 텐데, 어느 해 5월, 은은한 품위 있는 향이 나를 불러 세웠다. 누구의 향인지 알 길이 없으니 코를 킁킁 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쪽문에서 이어지는 담장 내의 조경수였다. 키도 낮고 잎도 평범하게 생겼다. 그러나 꽃과 향은 특별했다. 꽃은 하얗고 향은 짙었다. 아내의 것 중에 이 향을 닮은 것이 있었다. 그 향에 끌렸던 건 그 향의 특별함이 너무나 익숙한 특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향을 알게 된 후, 5월만 되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 길을 갔다. 바쁜 등굣길에 힘들면 조금 여유로운 하굣길에는 딸을 데리고 일부러 그 길로 갔다. 부녀가 한참을 킁킁 거리며 향을 맡곤 했다. 길 중간쯤에서 라일락의 향기를 맡고 온 부녀가.
일주일 동안 입원하여 항암 주사를 맞고 나오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떨어진다. 약에 눈이 달린 것이 아니니 종양의 싹과 함께 멀쩡한 세포도 괴롭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퇴원하면 일요일까지 뭐 하나 제대로 넘기질 못했다. 넘기질 못하는 딸을 방에서 쉬게 하고 우리는 뭐든 먹었다.
행여나 우리도 굶지 않을까 싶어, 혹시나 조카가 먹고 싶어 하는 건 조금 넘기지 않을까 싶어, 퇴원한 주말이면 처남이 집에 놀러 왔다. 파견이 끝나고 센텀에 있는 본사에 출근하게 되어, 일주일 동안 놀리고 있는 차에 열 좀 내게 한다는 핑계를 대며, 고작 지하철로 세 정거장 떨어져 있는 누나 집에 일부러 놀러 왔다. 놀러 와서 비쩍 마른 몸과 얼굴에, 눈 밑의 그늘이 더 깊어진 조카의 얼굴을 슬쩍 본 뒤, 당연히 못 먹는 걸 알면서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하고 물어봤다. 고개를 가볍게 저으면, 우리 얼굴을 잠시 본 뒤, 자기가 먹고 싶다며 이것저것 주문해서 같이 먹었다. 그렇게 처남은 처남의 방식대로 조카의 투병에 동참했다.
그 주말은 당연하고 다음 주 초에도 체력은 바닥이었다. 집 앞에 있는 편의점까지 갔다 오는 도중에도 두 번이나 쉬어야 했다. 제법 힘들게 보낸 한 주였지만, 토요일에 열린 언어영재교육원 입학식엔 참석했다. 비까지 부슬부슬 오는데, 마음 같아선 그깟 입학식 따위,라고 말하며 집에서 쉬게 하고 싶었지만 딸의 의지는 단호했고 결연했다. 입학식만 했다면 그렇게 마음을 졸이진 않았을 것이다. 입학식 후에 연이어 바로 서너 시간가량 수업이 진행됐다. 중간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선생님께 얘기하라고 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강의실에 들여보냈다. 딸은 그날, 모든 수업을 다 들었다.
아이의 체력은 금방 회복됐다. 한 주 정도 지나자 혈색도 좋아졌고 살도 올랐다. 50킬로그램까지 살을 찌우는 것이 목표였는데, 거기에 이르진 못했다. 그러나 퇴원 직전과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다. 얼굴에 홍조가 돌아왔고 손바닥과 발바닥에도 붉은 기운이 돌아왔다. 팔과 다리 근육은 많이 사라져서, 여전히 딴딴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그야말로 몽실몽실하다. 조만간 학교를 가야 하는데 갈 체력이 되려나. 아내와 난 걱정이 들었다.
지난 토요일, 딸이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같이 가달라고 했다. 빨리 걸으면 5,6분, 천천히 걸으면 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걸었다. 숨찬 기색이 없었다. 오는 길에 슈퍼를 들렀다. 괜찮았다. 집에 와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일요일엔 더 긴 산책을 하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 아내는 모처럼 느긋하게, 이어서 보던 중국 드라마의 새 시즌을 보는 사이, 우린 긴 산책의 채비를 했다. 딸은 발랄하면서도 편하게 차려입고 가발 대신 캡을 썼다. 우리는 박물관과 유엔묘지를 가운데 두고 그 테두리를 이은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집을 나서자 천리향의 향이 다가왔다. 딸을 그 앞으로 데리고 갔다. 향을 맡아보라고 했다. 수선화는 겨우 노란 끝을 보이고 있으니 향의 주인이 아닌 건 딸도 알았다. 딸은 킁킁 거리며 천리향에 다가갔다. 잠시 맡더니 좋다고 했다. 함께 꽃향기를 맡은 뒤 걸었다. 그렇게 40분을 걸었다. 딸은 문화예술회관 앞 공원에 있는 소나무 밑의 작은 바위에 앉아 오 분 정도 쉬었을 뿐이다. 엄마가 부탁한 바닐라 라테와 딸이 주문한 복숭아 아이스티를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천리향이든, 고광나무 꽃의 향이든 설명할 수 없다. TV로 꽃을 보여줄 때와 같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태양의 열기와 천리향의 향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방법은 없다. 4D 영화관은 흉내에 불과하다.
향은 언어의 밖에서 도도하게 존재한다. 우리의 언어는 느낀 것을 박제할 뿐이다. 느낌은 언어 속에서 생명을 잃고 사진처럼 멈춘다. 그제야 겨우 우리는 자신에게도, 또 타인에게도 본 것과 들은 것, 맡은 향과 먹은 맛, 피부에 와닿은 것의 감촉을 설명할 수 있다. 설명하는 순간 감각의 대부분은 언어의 밖으로 퇴출된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 서른 이후 처음,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과 함께 보낸 겨울 동안 나를 엄습했던 불안과 두려움, 분노와 후회, 희망과 절망, 그 모든 감정들의 소용돌이를 안으로 삼켰다. 그래도 욕지기처럼 나오는 뭔가는 글로 달랬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오십이 넘은 남자에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사니까 그나마 살아내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고 새삼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같이 일하는 감독은 자기 집 안일로도 정신없었고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해도 감정의 결을 헤아려 들을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오래 알고 지낸다고 해서 꼭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연락할 만한 이가 몇 사람 떠오르기는 했지만, 말았다. 그들도 다들 나름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자신만의 고통만으로도, 삶의 무게만으로도 충분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었다. 아무하고 말을 할 수 없었던 덕분에, 딸의 곁에서 제법 많은 책을 읽었다.
천리향의 향이 정말 천 리를 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보이면 맡아진다는 건 확실하다. 천리향을 모르는 사람도 그 향을 맡을 수 있을 만큼. 향의 주인인 꽃을 알지 못하면 그 주인을 찾아 킁킁대야 할 것이다. 물론 찾는다고 해도 주인의 이름을 모르니 다음에 같은 향을 맡아도 잊어 먹을 것이다. 나 같은 이라면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는 수고를 하겠지만.
만약 천리향이 담장 안에 숨어 있다면 그 밖에 있는 사람은 향의 주인을 찾을 수 없다. 기껏해야 진한 향수를 뿌린 누군가가 방금 지나갔으려니 생각하고 지나칠 것이고 향은 계속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아니, 향을 맡은 기억도 잊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모든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