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사명
나는 글을 쓰며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말씀을 읽고, 그 행간에서 깨달아지는 지혜를 거울삼아 나를 비추어 보면, 때로는 예수님 곁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분의 뒤편, 아주 먼 곳에서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여러 책을 읽으며 예수님의 심부름꾼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 순간, 나는 어쩌면 예수님에게서 더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에 착실히 나가고, 예수님께 드릴 헌금을 미리 떼어 놓으며, 군말 없이 교회 봉사에 참여하는 그 순간들— 뒤돌아보면, 오히려 벼랑 끝에 매달려 버둥거리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말씀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16년째 말씀을 나누는 선배 언니, 한국에 있는 친구, 미국에 있는 친구, 교회 소그룹 반 그리고 말씀을 사모하는 동생까지. 이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듭니다.
바로 그 순간, 사탄이 나를 주목합니다.
나의 약점을 건드리고, 내 삶을 더욱 바쁘게 몰아붙이며, 벼락치기 숙제를 하듯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여유를 빼앗아 갑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나를 더 바짝 당겨주셔야 할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부모, 그리고 우리
행위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는, 유대인들이 습관적으로 유월절을 지켰던 그 습성처럼 우리에게도 일종의 안도감을 심어줍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허락하신 그 사랑마저도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지켰던 절기처럼 전락하기 쉬운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매 순간 정체성과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한창 들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과 친지들을 만나니 반가움과 설렘이 가득했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 속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사돈의 팔촌에 대한 소식도 궁금했고 새로 이사한 집의 인테리어와 가구에 대한 이야기, 요즘 유행하는 신상인 옷과 구두 이야기도 나눠야 했습니다. 트렌디한 헤어스타일에 대한 의견뿐 아니라 주식이나 증권에 대한 이야기에도 열을 올려야 했지요. 이번에 명문대학에 입학한 자식 자랑이며 귀여움 충만한 손주의 재롱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유난히 미운 짓 하는 대상에 서로 공감하면 그에 대한 집중 험담도 쏟아집니다. 어쩌면, 요셉과 마리아도 우리처럼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속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사명, 예수님의 생명을 보존해야 하는 그 책임을 등한시했을 수도 있습니다.여행의 흥분과 사교적인 교제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그들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그분을 온종일 잊고 살았습니다. (소망, 82)
그러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허둥대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의 안부가 심히 염려되었습니다.
“하루를 등한히 함으로 그들은 구주를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흘 동안 근심하면서 그분을 찾으러 다녔다”(소망, 83).
예수님을 찾고 난 후, 요셉과 마리아는 오히려 적반하장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나무랐습니다.“왜 거기에 있어서 우리가 찾게 했느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있어야 할 곳에 계셨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세상일에 몰두하여 스스로 예수님 곁에서 멀어져 놓고는, 오히려 큰소리치며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아이고…”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
아무리 세상일이 바쁘고, 아무리 삶이 분주해도,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하며 잊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생과 위안을 얻지만, 묵상과 기도를 등한시하면 그 축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단순히 잃어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받기 전보다 더욱 심한 결핍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소망, 83)
말씀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들. 그때 우리의 삶은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져 갑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어느새 휴대폰을 손에 들고 검색을 시작합니다. SNS를 열어 친구들의 근황을 살펴보고, “곧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넘나들며 필요하지 않은 정보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끝이 없는 유튜브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결국 게임 앱을 클릭합니다.
또는, 먹고사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예수님을 묵상하지 않는 순간들이 우리의 하루 속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점점 잊어갑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후, 그분을 찾기까지 사흘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예수님을 찾는 일은 어쩌면 사흘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생각을 그분께 고정하지 않으면 어느새 나는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불안과 초조함 속에 묻혀버립니다.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그분 곁에 나를 붙들어 매고자 말씀을 더듬습니다. 며칠 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근심하며 다시 말씀을 엽니다. 그리고 그분을 찾아냅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내게로 와 주시고, 나를 안위하시며, 마음에 새로운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