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시험
“그는 어느 것을 핑게로 피난처를 찾고자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도 인간이었고 그의 애정과 애착도 우리의 그것과 같았다”(부조, 153)
아브라함은 누구나 인정하는 ‘믿음의 아이콘’입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삶의 여정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성을 뒷받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 또한 인간적인 약함을 드러냈고, 두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는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길까 두려워, 그녀를 부인이 아니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 곤경에 처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채, 스스로 그 뜻을 이루려는 마음에 성급하게 첩을 들인 일이었습니다.
내가 위안 삼은 이야기
내가 오늘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아이콘인 그조차도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실수투성이인 나에게는 오히려 위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완벽한 사람은 인간미가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완벽한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아브라함의 삶에서 오늘 내게 위안이 된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이랍니다.
아브라함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은 독자 이삭을 얻었을 때였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겪지 않아도 될 우여곡절과 마음고생 끝에 기적처럼 만난 귀한 아들, 이삭. 그 아이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장막을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부조, 146).
100세의 희끗한 머리칼과 주름진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짓는 아브라함 부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렇게 순탄하고 평화롭게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청천벽력도 이와 견줄 수 없는 가슴 찢어지는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내려졌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이 말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할 수 없는 명령처럼 들렸습니다. 100세에 얻은,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는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과는 한 치도 맞지 않는 주문이었습니다. 제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엄청난 명령에도 아브라함은 조용히, 슬프고 긴 하루를 살아냅니다.
사고나 병으로 자식을 잃어도 고통스러울 텐데,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 앞에서 그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가 인간 아버지로서 감당해야 할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글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흔들리는 믿음, 그리고 의심
이것은, 그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서까지 충성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는 일이었고, 롯에게 화려하고 안락한 도시를 양보한 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나그네의 삶을 선택했던 그의 소신과도 모순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충성과 믿음의 결과가 이토록 처절한 것이라면, 과연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할까? 그의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흐려졌을 것입니다.
여태껏 그를 믿고 묵묵히 따라와 준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 사라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까? 떠나기 전에 모자가 마지막으로 포옹할 수 있도록 해야 할까? 아무것도 모른 채 순종하며 따라올 아들에게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브라함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어졌습니다.
“그는 어느 것을 핑계로 피난처를 찾고자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도 인간이었고 그의 애정과 애착도 우리의 그것과 같았다”(부조, 153).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려는 사탄의 훼방을 속절없이 물리치며, 처음 명령을 받은 곳으로 향했습니다. 절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서성거렸지만, 아무도 그에게 구원의 소식을 가지고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가 올라가면 답도 올라갑니다
아브라함은 일생일대의 문제를 안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이 비극적인 산행 길에서,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이삭의 질문이 들려옵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지 않은 대답을 아들에게 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이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나누는 아버지와 아들의 슬픈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럼에도 아들은, 늙은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주려 애씁니다. 마지막 포옹이 오가고, 아버지의 손이 떨리는 순간…바로 그때, 이 모든 장면을 생생히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아브라함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대답을 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창 22장).
아브라함이 문제를 안고 산을 오르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답을 가지고 함께 오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짊어지고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답을 준비하신 채,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그분은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절박하고 필요한 순간,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는 분이십니다.
이 엄청난 시험 앞에서, 아브라함은 그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자기의 아픈 마음을 구실 삼아 따지지도 않고,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은 채,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무사히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 과연 믿음의 아이콘답습니다.
그를 통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눈물을 멈출 수 없는 슬픈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과 애틋함 또한 시공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감격의 순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