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하늘 그 자체도 이보다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믿으라.
나는 늘 예수님과 함께인가?
항상 그분을 사랑하는가?
걱정거리가 생기면 가장 먼저 그분께 아뢰는가?
순간마다 그분께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을 늘 사랑하고 싶다.
그런데 아직도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면 내가 먼저 그 해결책을 강구하며 실의에 빠지는 것을 보니 입으로만 사랑하는가 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직 내게 남아 있다.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내 입은 “예수님! 사랑해요”라는 고백을 하고 있지만 마음에는 예수님보다 나를 아끼고 중요시 여기고 더 사랑하는 거 같다.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예수님 언저리에 서성이는 나를 본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는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누구나 다 부족한 인간이라고,
나머지는 주께서 채워 주실 거라고,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다 아신다고 말할 것이다.
예수님은 고민하는 이 순간도 이미 그대의 모든 마음의 동기를 알고 계신다고 말할 것이다.
부족함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명 그렇게 말은 할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양으로 묘사한다. 자칫 순결하고 순종하는 순한 양으로 보이지만 양의 특성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양의 특성에는 좋은 면이 많이 있지만 단점도 그만큼 많다.
고집이 세고 잘 속고 눈도 나쁘고 방향 감각마저 없어서 아무나 잘 따라간단다.
게다가 중심을 못 잡고 잘 넘어지기도 하며 연약해서 누군가가 공격해오면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딱 미련한 우리 인생과 닮았다.
이런 양에게도 장점은 있다.
염소처럼 뿔이 있지만 염소와는 달리 양은 그 뿔로 남을 공격하지 않는다. 또한 방향감각이 없어서 갈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다가도 목자의 음성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순종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 속에 살더라도 진짜 나의 목자이시고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음성만은 구별해야 한다.
고집불통인 내가 그나마 인생의 주인을 내가 아닌 예수님으로 바꾸고 싶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까?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신 것도 아마 이와 같은 관계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곁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심에서, 연약한 양을 호시탐탐 노리는 들짐승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시고 눈도 나빠 제 길을 못 찾더라도 우리의 곁을 지켜주는 목자가 되시기 위함이다.
목자이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그대의 슬픔을 견디었으며 그대의 투쟁을 경험하였으며 그대와 같은 유혹을 당하였다.
나는 그대의 눈물을 안다.
나도 역시 울었다.
인간의 귀로 차마 들을 수 없는 극한 슬픔을 나는 안다.
그대는 고독하고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지 말라.
그대의 고통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의 심금도 울리지 못할지라도 나를 바라보고 살아라” (DA, 483).
세상 연약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목자가 양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더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아버지로서 자녀를 사랑하듯 사랑하신단다.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하늘 그 자체도 이보다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믿으라.” (DA, 483)
미련한 인생을 향하여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날려주실 수 있으신 유일한 분이시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이가 내 아버지라는 사실이 든든하게 믿어지는가? 그 기적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그것을 믿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외롭고 무서운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 직접 어린양이 되셔서 오늘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한 나를 케어하신다.
이 땅의 삶이 폭폭 할수록 인생을 걸고 매달려야 할 말씀은 바로 이 말씀이다. “그러므로 믿으라”
나를 위한 그 사랑을 감지했다면 “네, 그리하겠습니다.”라는 망설임 없는 대답이 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