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학교 보건실은 그네들 푸념으로 분주했다. 보건교사로서 어떻게 잘 보살필까를 고민해야 하지만, 때때로 어떻게 잘 외면할지도 고민했다. 그 고민의 최고 중심에는 철희 (남자 중학생, 가명)가 있다.
철희는 학교에서 단연코 1등이다. 부모님, 선생님의 근심 걱정이 그칠 날 없는 말썽꾸러기로 1등. 흡연은 기본이고 싸움, 무단결석, 수업시간 훼방 놓기.
그를 능가할 자 없다.
수업시간이면 교실을 피해 수시로 나에게 들이닥쳤다. 치켜뜬 눈빛으로 한 덩치 하는 녀석이 ‘아픈데 어쩌라구요!!’ 라며 떼를 쓰면 대략 난감이다.
아이들로 북적이던 학교가 휑 해진 지 벌써 한참이다. 3개 학년 중 1개 학년만 등교하다 보니 학교는 텅 빈 듯하다. 보건실에 방문하는 아이들 숫자도 현저히 줄었다. 평소 동료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만 없으면 학교에서 일할 만하지. 암, 그렇구 말구”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분주함을 달래곤 했다.
이제 어쩌다 가끔 만나게 되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어른들 눈빛은 서로에게 애틋해졌다. 전에는 수업에 늦지 않도록 신속하게 습관적인 처치를 해오던 나도 그렇다. 내게 방문하는 아이와 눈을 마주하는 시간이 늘고 대화도 늘었다.
철희는 코로나 난국에도 학교에 오는 날이면 꼬박꼬박 내게 들렀다. 학교 규칙에 항거하던 거친 일상이 줄어서인지, 미운 정이 그리웠던지, 거칠던 눈빛은 한결 순해졌다. 그래도 긴 팔다리와 척추가 느슨하게 사방으로 풀어진 자태는 여전하다.
“선생님, 담배를 피우면 다 암에 걸려요?” 아이가 평소답지 않게 차분하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철희를 향해 의자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갔다. 철희는 흡연을 시작하고 세월이 제법 흐르자 ‘암에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궁금한 것들을 묻고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생각하는 말들을 한다. 아이 말을 진지하게 듣고 공감했다. 이어서 든 생각은 ‘어머나, 얘랑 대화가 되네?’
학교가 멈춰버린 초유의 상황이다. 인터넷에는 온통 부정적 기사로 가득하다.
방치. 고립. 격차. 걱정. 피로. 불화.
마치 절망을 강요당하는 것 같다.
달리 방도가 없다면 암흑 동굴 속 한 줄기 빛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삶은 늘 입체적이다. 부정적인 단편만 있는 건 아니다. 실컷 절망했으니 이제는 희망도 말해야 할 때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뭔가를 어떻게 늘 조치해줘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다. 물론 쉽사리 나태하고 엇나가고 빠지고 방황하고, 반성하지 않는다. 그래도 때로는 어른보다 더 잘 사랑하고, 행복하고, 꿈꾸고, 용감하고, 공감하고, 배려할 줄도 안다.
친구를 못 만나고 놀지 못하는 시절을 지내는 아이들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집에 갇혀 밤낮을 뒤집어 게임과 폰에 빠져 허우적대는 ‘화상’들을 견뎌야 하는 부모 심정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나도 꽤 '겪어봐서' 조금은 아니까. 말이 얄밉다면 죄송.)
사랑. 관심. 기다림. 믿음. 모범. 대화. 이런 식상한 단어들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없어 유감이다.